[특별기고] 대통령 탄핵 TV방송 내용 분석 언론학회 보고서 관련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탄핵방송 연구’의 정치적 무의식

국민다수 공감 무시한채 여야간 합법적 정쟁으로 단정





선배·동료들의 작업에 코멘트 달기란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평상시 학문에 임하는 자세에 신뢰를 두고 교감을 이룬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본인은 최근 언론학회의 <대통령 탄핵 관련 TV방송 내용 분석>에 대해 몇 마디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보고서가 한국 방송 전반, 미디어 개혁의 행방, 그리고 대통령 탄핵에 대한 집단기억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학회가 무책임한 방송위원회로부터 연구를 맡게 된 곡절, 그 과정에서 본인이 개인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던 점, 30일로 예정된 위원회의 심의 절차에 대한 시민사회운동단체 일원으로서의 관심 등은 여기서 논하지 않을 것이다.

그 보다는 기다렸다는 듯이 1면과 사설을 할애 해 보고서를 오버하게 다루면서 ‘대다수 언론학자들은 연구 결과에 동의 한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보수신문들에 대해 그렇지 않음을 밝히고자 한다. 다른 판단이 분명 존재한다.

무엇보다 본인이 보고서에 동의할 수 없는 점은 그 내재된 인식의 행방이다. 연구자들은 탄핵을 야당과 열우당 사이의 ‘합법적 쟁점, 정치적 갈등’으로 읽는다. 그렇게 의견을 같이 할 수 있다고 인정하자.

그러나 그게 모두의 뜻은 될 수 없다. 많은 시민들은 탄핵을 ‘민주와 반민주’, 나아가 ‘보수정치권 대 민중 일반’의 위기적 충돌로 감지했다. 이 다수의 공감은 무시한 채 연구자들은 사태를 여·야간 ‘합법적’ 정쟁으로 단정한다. 보도의 ‘공정성’을 따지는 방법이 자연스레 채택된다. 탄핵을 사회적 위기 혹은 ‘일탈적’ 사건으로 볼 것인가, 정상적 정치과정으로 볼 것인가? 후자를 취하면 지난 보도는 ‘공정성’의 규칙을 어긴 ‘편파 방송’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본인처럼 전자의 입장을 택한다면, 여전히 동일한 잣대가 적용되고 따라서 같은 결과가 나왔을까? 연구자들의 가치 판단이 틀렸다고 비난할 의사는 없다. 다만 다중의 또 다른 공통감각들은 왜 배제해 버렸는지,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방송과 시민을 바라보는 태도에서도 연구자들은 일관된 정향성을 내보인다.

나는 그것을 연구자들의 ‘정치적 무의식’이라고 본다. 우선 연구자들은 한국 TV를 “진보/좌파적 방송”이라고 평한다. 과연 정확한 진단인가? 내게 방송은 여전히 보수적이기만 하다.

아무튼 방송이 권력의 이념기구로 작동하고 있다는 연구자들의 진단은 탄핵사태 중 텔레비전이 “약자와 강자의 대립구도를 미리 설정해 놓고” 정권을 위해 작동했다는 암시로 이어진다. 실제로 그랬다면 정말 불량방송이다.

그러나 국가와 자본, 시민사회세력 등 권력배치의 다양한 양상을 고려할 때, 방송사 내부의 복잡다단한 역학 관계를 판단할 때 너무 단순한 이해의 틀이 아닐까?

시민에 대한 연구자들의 태도 또한 매우 가치 편향적이다. 연구자들이 보기에 ‘국민’은 방송이 “잘못” 설정한 틀에 놀아난 꼴이 된다. 편파 방송에 “동원”된 셈이다. 자주적으로 판단하고 자발적으로 거리로 모인 시민에게 얼마나 설득력을 지닐까? 사회변동을 통해 체득된 다중의 주체적 판단능력을 너무 얕본 게 아닌가?

연구의 전제와 해석, 결론에 깔린 이념성에 기본적으로 공감할 수가 없다. 방법(론)이 문제가 아니다. 출발이 다르면 아무리 동일한 방법을 써도 결과가 다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연구란 현상에 대한 특정 이념을 배태한 그럴듯한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는가? 타자의 이념성을 분석코자 하면서 막상 자신의 ‘무의식적 정치성’은 깊이 성찰치 못한 점이 이번 연구의 심각한 약점이다.

본문 어디에도 자신의 한계점을 밝히지 않고 개방된 토론, 논쟁을 격려하지 않는다. 탄핵 사태와 방송, 시민에 대해 일정한 시각을 드러낸 이번 보고서는 닫혀 있다.

지금처럼 소란스럽고 감정적으로 논쟁이 진행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이 발견한 의미를 진실로 내세우고 타자의 경험을 “잘못”으로 단정하는 인식론적 오만, 보수신문의 들뜬 보도태도도 이를 이어받고 있는 게 아닌지 답답하다. 특별기고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