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각' 부재… 미국보다 더 미국적

혈맹에서 반미까지 전환기의 한미관계 보도

'반미정서’니 ‘반미운동’이니 하는 말들을 언론을 통해 접하는 일은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다. 언론이 한창 현안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도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문제다.



혈맹에서 반미까지 다양한 시각



이같은 양상 속에서 미국의 패권주의나 강대국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선 남북관계를 둘러싼 한미공조 유지, 반미정서 확산에 우려를 표명하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언론의 시각 차는 특히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관계에서 더욱 첨예하게 드러나고 있다. 미국의 대북 인식이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 혹은 비판의 근거로 거론되기 때문이다.

‘혈맹 보도’에 머무를 수는 없지만, 절연의 길로 들어설 일도 아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한미 정상회담이 흔히 ‘동반관계 강화’ ‘안보태세 재확인’ 식의 기사로 정리되던 때와는 다른 양상이다. 언론은 미국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이른바 탈냉전 이후 미국과의 관계, 가깝게는 의정부 여중생 사망사건, SOFA 개정 문제,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 등이 맞물리면서 한미관계 보도의 점검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김태효 외교안보연구소 교수에 따르면 “군사정권 때야 한미공조는 당연시 된 것으로 문제제기의 여지가 없었고 일종의 주종관계에 기인해 반미문제도 불거질 소지가 없었다.” 때문에 보도 역시 혈맹 중심, 안보태세 강화 기조가 유지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 90년 당시 노태우-부시 대통령 정상회담도 ‘긴밀한 안보협력 재확인’ ‘주한미군 기본역할·방위공약 불변’ 식의 보도가 주를 이뤘다. 이른바 보수언론으로 지칭되는 언론사들의 경우 특히 남북관계에 있어 확고한 한미공조 필요성을 강조하거나 북의 경수로와 관련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는 미국 내 강경파들의 주장을 지속적으로 전달해왔다.

이런 류의 보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례로 지난 97년 한미 자동차협상 결렬 이후 미국이 슈퍼 301조 발동 방침을 밝혔을 때 언론은 ‘미국 난타’라는 평가를 들을 만큼 일제히 비판에 나섰다. ‘람보의 총 휘두르는 미국’ ‘미 이익만 고집 불공정 처사’ 등의 보도가 그러했다.

또 지난 92년 ‘윤금이씨 피살사건’ 등 주한미군의 주요 사건 사고 때에는 불평등 관계 해소와 SOFA 개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미군의 인권침해나 미사일방어망(MD) 구축 등 군사방침에 대한 비판과 함께 ‘반미’의 목소리가언론을 통해 전해진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였다.

혈맹으로 상징되는 일관한 보도경향에서 보다 다양한 시각들이 조명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비판도 미국언론 통해” 한계



다양한 보도양태를 이루었다는 점은 그 자체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보도의 편차를 보여주는 데에서 그칠 일인가. 기자들에게 이같은 문제는 고민거리로 남는다.

한 국제부 기자는 “일례로 주한미군 사건은 통상 ‘사회면 기사’로 다루다보니 입체적인 접근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국제뉴스 역시 어학이나 연수자 대부분이 미국에 편중돼 있어 미국에 대한 비판도 미국 언론을 통해 전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특파원 문제도 그렇다. 국내 언론사 워싱턴특파원은 1~3명 안팎. 일본의 교도통신은 현지 스트링거를 포함해 20명 안팎의 특파원이 활동한다. 한 워싱턴특파원은 “사람이 있어야 스트레이트 외에 박스도 쓰고 해설도 쓴다. 이런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다각적인 접근은커녕 미국언론 베끼기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취재 시스템 개선을 거론했다. 정연주 한겨레 논설주간은 “미국 중심적 경향이 여전한 데에는 몇몇 언론사 자체가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이 심하다는 문제도 있다”면서 “기자 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터넷 등을 통해 미국 편중에서 벗어나 다양한 정보를 입수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자들의 이같은 고민과 문제 제기에도 불구, 한미관계 보도의 문제점들은 여러 방면에서 지적되고 있다. “그때그때 국민정서에 영합해 근본적인 해법 모색에 나서지 못했다”는 등 한미관계를 바라보는 시각과 전문성 문제, 지속적인 관심 미비 등을 거론하는 목소리들이다.

SOFA의 경우 언론은 주한미군 관련 사건을 다룰 때마다 개정 필요성을 거론했지만 지속적인 관심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현안으로 떠오른 재판권 이양 문제도 일본에 그 사례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곳은 언론이 아닌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주미본)에서였다. 이소희 주미본 사무국장은 “미군 사건사고 보도의 문제는 항상 일회성에 그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우리시각 정립 전문성 확보 과제



한미관계와 긴밀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는 북한 문제가 거론되면 보도 양상은 시각 차를 넘어 극명한 대립 양상을 보였다. 김태효 외교안보연구소 교수는 “남북관계에서 문제가 불거지면 햇볕정책에 긍정적인언론사들은 미국의 강경정책에, 비판적인 언론사들은 정부의 한미공조 훼손 혐의에 그 무게를 둔다”고 분석했다.

올 1월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의 경우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은 사설을 통해 미국과 한국 정부의 대북 시각 차가 현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됐다고 비판하며 한미공조에 우려를 표명했다. 반면 한겨레는 미국의 군사위협 비판에 힘을 실었고, 국민일보 경향신문 한국일보 등도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경계, 햇볕정책 유지를 위한 남북한 미국의 3자 대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해교전 때에는 북방한계선(NLL)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었음에도 불구, ‘북한의 NLL 월선 증거를 갖고 있다’는 미국의 주장이 강경대응의 근거로 이용되기도 했다. 미국의 이같은 입장이 어떻게 나온 것이며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지, 이에 따른 대응방안은 무엇인지 등 정작 ‘우리 관점’은 빠져 있었다. 미국의 대북 강경책과 서해교전 이후 ‘단호대처’를 촉구하는 우리 언론의 요구 사이에 ‘뭔가 고민의 여지는 없는가’라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악의 축’ 발언의 경우 발언 근거를 실증적으로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각자 입장에 따른 해석이 대부분이었다”고 평가했다. 정 대표는 “언론이 대미관계 관련 정보나 자료에 근거해 접근하지 않으면 결국 많은 쟁점들이 ‘친미냐 반미냐’ 식의 논란으로 흘러버릴 것”이라며 “대미관계에 대한 전문성과 우리 시각의 확보라는 문제는 언론 전반의 과제”라고 덧붙였다.

국내 언론 보도에 대한 미국의 인식은 논외로 치더라도 ‘확고한 한미공조 틀 유지’라는 입장에서 ‘미국보다 더 친미적’이라는 비판까지 한미관계 보도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혼재하고 있다. 한미관계 보도를 둘러싼 평가나 인식이 이처럼 여러 지점에서 문제를 노정하고 있는 현실은 무엇보다 주권국가로서 ‘우리 관점’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물론 중론이 반미나 친미로 모아질 필요는 없다. 다만 미국에 대한 언론의 시각과 태도가 새로이 정립될 필요가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김상철 기자 ksoul@journalist.or.kr 김상철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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