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기사에서 신고자 이름을 빼고 ‘아이가 다니는 병원의 의료진이 신고했다’고 쓰면 신고자를 보호할 수 있을까. 피해 아동의 얼굴을 가렸더라도 거주지와 나이가 기사에 나오면 이웃들은 아이를 알아보지 못할까.
5일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아동권리보장원이 주최로 제주 오션스위츠 제주호텔에서 열린 ‘2026 사건기자 세미나’에서 약 90여명의 전국 언론사 사건팀 기자들은 아동학대를 정확히 알리면서도 보도로 인한 2차 피해를 막고 신고자를 보호할 방법을 논의했다.
이날 발표를 맡은 김지영 동국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과 대우교수(이투데이 기자)는 어린 아동일수록 스스로 학대를 신고하기 어려운 만큼 교사나 의료인 등 신고의무자의 신원을 보호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신고자의 신원이 드러나면 당사자가 보복을 당할 수 있고, 다른 신고의무자도 신고를 주저하게 된다”면서 “신고자의 직책이나 소속을 밝히지 않고 주변인이라고 표현할 것”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2022년 발표한 ‘아동학대 언론보도 권고기준’ 제정에 참여했다.
신고나 입건 단계에서 학대가 확인된 것처럼 보도하는 관행도 지적했다. 학대 의심 신고가 이뤄진 시설의 이름과 직종을 함께 밝히면 종사자 수가 적은 곳에서는 수사 대상자가 특정될 수 있고, 시설을 이용하는 다른 아동의 부모도 자기 아이가 피해를 입었을까 불안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제보를 받았다거나 신고가 접수됐다는 사실만으로 실제 학대가 있었는지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피해 아동을 보호하려면 학대 장면을 얼마나 자세히 전할지도 따져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여러 언론사가 학대 장면이 담긴 홈캠 영상의 캡처 화면을 기사에 사용한 사례를 들며 “유사한 피해를 겪은 사람들은 이를 보고 안 좋았던 기억이 다시 떠오를 수 있다. 이것도 2차 피해”라고 짚었다.
이어진 토론에서 도현석 한국아동보호전문기관협회 홍보협력위원장은 피해 아동의 이름과 얼굴을 가린 뒤에도 기사에 남은 정보를 살펴야 한다고 당부했다. “블라인드 처리를 하더라도 소규모 지역이나 농촌 등에서는 부수적인 정보가 결합되면 아이를 유추하고 특정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기사에서 이름을 빼더라도 아동이 사는 마을과 나이, 사건 경위가 함께 나오면 사정을 아는 이웃은 어느 아이인지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 위원장은 “언론 보도는 한 번 나가면 마무리되지만, 아이들은 계속해서 그 지역에서 성장해 나가야 하고 현장의 사례 관리와 지원은 지속된다”면서 “아동은 그 지역에 계속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염두해 달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취재기자는 피해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기사에서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남겨야 할까. 성화선 JTBC 기자는 지난달 한 초등학생이 짜장면을 주문하는 척 112에 전화해 집 안의 폭력 상황을 알린 사건을 예로 들며, 자신이 그 기사를 다듬는다면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당시 보도에는 아이와 동생의 나이, 사는 지역, 주거 형태가 함께 담겼다.
성 기자는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별거 아닌 평범한 정보로 보이지만, 이걸 합치면 이웃들은 ‘그 아이가 누구였고, 그 집에서 이런 일이 있었구나’라고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이와 동네를 지우고 개인정보를 지우더라도 ‘짜장면’이라는 단어 하나가 있기 때문에 아이는 나중에 커서도 자기 이야기라는 걸 알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짜장면 신고’를 빼면 아이가 들키지 않으면서 스스로 도움을 청한 과정도 흐려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성 기자는 “어떤 점에서는 아이도 이렇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주체라는 걸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아이가 겪은 고통을 자세히 묘사하기보다 신고 이후 보호체계가 어디서 작동했고 어디서 작동하지 못했는지 구체적으로 취재해보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성 기자는 이 과정에서 기사에 세부 정보를 남길지 판단할 때는 “이 사건의 이 디테일이 없으면 독자가 이해하거나 행동하지 못하는가”를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송경재 상지대 지역혁신행정학과 교수는 아동학대 언론보도 권고기준을 제정할 때 아동 인권에 대한 인식을 언론계에 확산하는 데 가장 큰 비중을 뒀다고 설명했다. 송 교수는 “언론이 앞장서서 아동 권익을 향상하고 인식을 개선하는 사회 문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아동의 권리를 고려한 보도는 “기사 본문뿐 아니라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제목과 영상에도 적용된다”고 송 교수는 강조했다. 본문에서 학대가 장기간 방치된 경위를 짚었더라도, 숏폼 영상에 학대 장면만 담아 올리면 독자는 사건의 맥락 없이 피해 장면만 접하게 된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기자가 소셜미디어에 올릴 영상이나 이미지를 고를 때도 어떤 장면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지, 자막만으로도 사건의 핵심이 전달되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동학대, ‘사건’ 아닌 ‘구조적 문제’로 바라봐야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아동학대 사건 그 자체에서 벗어나, 학대가 어떤 여건에서 발생했고 보호와 지원은 어디서 작동하지 못했는지 살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김희송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검사과 박사는 “아이가 학대나 방임에 놓이기까지 가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보호와 지원이 왜 닿지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부모가 어떻게 대처하지 몰랐고 주변에서 도움을 받지도 못해 20개월 아기가 방임으로 사망한 사건을 언급하며 “부모가 ‘악한’ 것이 아니라 ‘약해서’ 비극이 발생하기도 한다”면서 “보호자가 겪은 양육의 어려움과 가정에 필요한 지원이 닿았는지까지 취재해 달라”고 당부했다.
피해 아동을 보호하려는 권고기준의 취지를 지키면서도 학대가 발생한 배경을 어디까지 다룰지 기자들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청소년 방임을 다룬 기획 ‘사각의 사각’으로 제3회 아동학대예방 우수보도 기자상을 수상한 이예림 세계일보 기자는 가해 부모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피해 청소년의 경험이 묻히지 않도록 고민해야 했다고 밝혔다.
이 기자는 “왜 부모는 아이를 방치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살피면 지원의 공백을 드러낼 수 있지만, 부모의 사정이 앞서면 피해 청소년의 경험이 묻힐 수 있다고 봤다. “가해자 서사 위주로만 가다 보면 학대 자체의 이야기가 묻힐 수 있기 때문에 균형점을 잘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지원의 공백을 설명하면서도 피해 청소년의 경험을 중심에 둘 수 있을지는 기자들이 고민해야 한다”면서 “(이런 문제를 두고) 기자들끼리도 이야기를 많이 해봤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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