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AI에만 고통 털어놨을까… 자살예방 보도, 위기의 배경 묻다

한국기자협회·생명존중희망재단 '2026 사건기자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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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위기의 징후를 어떻게 포착하고, 위기에 놓인 독자에게 어떤 도움을 안내할 수 있을까. 4일 제주 오션스위츠 제주호텔에서 열린 ‘2026 사건기자 세미나’에서 기자들은 자살 위기 신호를 추적하고, 위기를 겪은 이들의 회복 과정과 독자가 이용할 수 있는 지원 정보를 기사에 담은 경험을 공유했다. 한국기자협회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과 함께 마련한 이번 세미나에는 전국 언론사 사건팀 기자 등 90명이 참석했다.

4일 제주 오션스위츠 제주호텔에서 열린 '2026 사건기자 세미나'에서 기자들이 토론을 경청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

지난해 전체 자살률이 3년 만에 감소했지만 10대 자살률은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7.8명으로 전년보다 4.7% 감소했다. 반면 10대 자살률은 같은 기간 8.0명에서 8.6명으로 7.5% 올랐다.

이처럼 청소년 자살률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가운데 이날 첫 발제를 맡은 김판 국민일보 이슈탐사팀장은 인공지능(AI) 챗봇 이용자의 자살 위기 사례를 취재한 경험을 공유했다. 김 팀장은 AI 챗봇과 대화 후 자살한 국내외 사건을 심층 분석한 ‘AI와의 위험한 대화’, ‘AI와 대화, 그 후’ 시리즈 보도로 제2회 정신건강 우수보도 기자상을 수상했다.

김 팀장은 취재 아이템을 찾던 중 “10대 자살은 왜 늘어나고 있고, 정부 정책은 왜 다른 연령대와 다르게 먹히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미국에서 AI 챗봇과 대화를 나눈 뒤 자살로 숨진 이용자의 유족이 소송을 제기했다는 외신 보도를 접하고, 국내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살피기 시작했다.

김판 국민일보 이슈탐사팀장이 'AI와의 위험한 대화'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

김 팀장은 취재 과정에서 위기에 놓인 사람이 AI 챗봇에만 고통을 털어놓으면 가족이나 친구가 그 위기를 알아차리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가 인터뷰한 한 유족은 딸이 숨진 지 약 5개월이 지나 챗봇 대화 기록을 열어보고서야 딸이 수개월간 AI에 자살 충동을 털어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 팀장은 “AI와의 대화에만 집중하다 보면 현실 세계에서 증상이 은폐되는 특징을 보인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했다.

김 팀장은 AI 챗봇 이용 과정에서 드러난 위험을 알리는 기사라면, 위기에 놓인 독자가 도움받을 곳도 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그는 “외신 기사를 보면 자살 보도준칙상의 안내 문구를 아주 상단에 크게 강조를 많이 했다”며 “이를 참고해 지원기관 안내를 기사 상단에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토론자들이 '생명존중 보도의 가치와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주제로 토론을 하고 있다.(왼쪽부터) 임춘한 아시아경제 기자, 김민재 순천향대학교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박형민 법무정책연구원 본부장, 이인 제주기자협회장, 이현옥 경남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부센터장. /한국기자협회

이어진 토론에선 이인 제주도기자협회장은 자살 사건을 보도할 때 사건이 발생한 배경과 제도적 허점까지 살피는 해설 기사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협회장은 “자살 사건과 관련해 경찰 발표를 토대로 사실을 전달하는 속보도 중요”하지만 “사건의 배경을 들여다보고 어떤 시스템을 고쳐야 할지” 짚는 보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AI가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민재 순천향대학교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아동·청소년 등 취약한 이용자를 보호할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면서도 “진료받는 환자 중에도 AI와 고민을 나누고 감정을 정리하며 도움받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어 “자살 위험이 있거나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돕기 위한 생성형 AI 개발도 이뤄지고 있다”며 “이런 활용에 관한 연구가 더 활발해지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보도준칙 넘어… 자살예방 기사엔 무엇을 담아야 하나

김소영 동아일보 기자가 '2026 사건기자 세미나'에서 '자살을 보도하면서 어떻게 자살을 예방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

두 번째 발표를 맡은 김소영 동아일보 기자는 독자가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지원 정보를 기사에 담는 일을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보도의 한가지 방법으로 꼽았다. 보건복지부를 4년간 출입하며 정신건강과 자살예방 문제를 취재해 온 김 기자는 자살을 막기 위해 애쓰는 이웃의 이야기와 위기에 놓인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도움을 함께 담은 연재 ‘죽고 싶은 당신에게’로 2023년 3분기 생명존중 우수보도상을 받았다.

김 기자는 보도준칙을 지키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사가 자살을 예방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희망’과 ‘이해’, ‘정보’라는 세 가지 기준을 세웠다고 했다. 그가 말한 ‘희망’은 자살 위기를 겪고 일상으로 돌아온 사람과 자살을 막기 위해 애쓰는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그는 자살 위기에서 회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해외 연구를 접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일상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도 자살 보도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해’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개인의 의지 문제로 보는 편견을 줄이고, 치료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설명하는 것이다. ‘정보’는 위기에 놓인 당사자가 어디서 상담이나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가족이나 친구가 어떤 말을 건네고 어디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지 등 독자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을 뜻한다.

김 기자는 세 가지가 자신이 취재 과정에서 세운 기준이라며, 기자마다 자살예방 보도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그 기준이 있으면 우리가 기획을 하든 취재원을 만나든 기사를 쓸 때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좀 더 명확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2026 사건기자 세미나' 참가자들이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기자협회

이현옥 경남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부센터장도 이날 토론에서 회복과 희망을 전하는 ‘치유의 저널리즘’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이 부센터장은 “청년의 고립과 실업, 노인의 돌봄 공백과 사회적 관계 단절 등 자살 위기와 맞물리는 사회적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면서 “상담전화 번호를 안내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사에서 다룬 문제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독자가 어디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면 좋겠다”고 했다.

자살예방 기획 보도를 늘리려면 데스크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1월 ‘보이지 않는 아이들’ 보도로 생명존중 우수보도상을 받은 임춘한 아시아경제 기자는 “자살예방 기획을 데스크에 올리면 ‘이거 다 아는 얘기 아니야?’라는 반응이 돌아와 지면에 싣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지면에 싣기 어렵다면 온라인으로라도 내보내 달라고 요청해 온라인에 게재한 기사가 많았다”면서 “기자들도 보도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봤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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