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어김없이 나오는 질문이 있다. AI 종말론에 관한 질문이다. 요즘 부쩍 불거진 AI 종말론은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사람이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한 AI가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우려다. 공상과학(SF) 영화 같은 이야기이지만 앤트로픽을 비롯해 오픈AI, 구글 등 대표적 AI 기업들이 이런 우려를 먼저 한다. 앤트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CEO)는 “지금의 AI 개발 속도를 감안하면 6개월에서 1년 뒤 AI가 인터넷 전체를 장악할 수 있다”며 “AI가 사람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도록 개발 속도를 조절하자”고 제안했다.
물론 반론도 만만찮다. 메타나 엔비디아 등은 기술로 AI를 안전하게 제어할 수 있으니 굳이 개발 속도를 늦출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앞선 나라와 이들을 추격하는 나라는 입장이 다르다”며 AI 개발 속도를 제한하자는 주장에 반대 의견을 냈다.
12일 방한한 얀 르쿤 뉴욕대 교수의 기자간담회 때에도 AI 종말론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르쿤 교수는 AI 개발의 초석이 된 딥 러닝 연구로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통하는 튜링상을 받은 AI 분야의 석학이다. 그는 “AI는 인류를 지배할 만큼 똑똑하지 않다”며 “AI가 세상을 점령하는 것은 SF”라고 AI 종말론을 일축했다.
AI 종말론을 걱정하는 의견을 들어보면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다. 문제는 방법이다. 당장 개발 속도를 제한할 기준이 문제다. 아모데이 CEO는 AI를 군사적 위협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는 중국보다 3~5년 정도 앞선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것을 개발 속도의 기준으로 내세웠다.
그렇다 보니 당장 중국에서 반발한다. 중국 외교부는 AI 개발 속도 제한 주장에 대해 “악의적 경쟁을 유발하는 위협”이라며 정치적 음모로 간주했다. 중국이 AI 개발 속도를 제한하지 않겠다는데 다른 나라나 기업들이 동참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AI 개발 속도 제한을 주장하는 업체 중 어느 한 곳도 먼저 나서서 개발 속도를 늦추겠다는 곳이 없다. 그러니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을 수밖에 없다. 중국 주장처럼 잠재적 경쟁자들이 치고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한 속셈 아니냐는 것이다.
AI 종말론 논쟁을 보면 영화 ‘벤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1959년에 만든 영화 ‘벤허’를 보면 유명한 마차 경주가 등장한다. 주인공 벤허의 원수인 로마 군인 메살라는 목숨을 건 마차 경주에서 벤허를 이기려고 말에게 가차 없이 채찍을 휘두른다. 그런데 메사라의 채찍은 그의 말이 아니라 벤허의 말을 향한다. 말이 폭주하며 마차가 뒤집어져 벤허가 죽기를 바란 것이다.
어쩌면 AI 종말론은 메살라가 상대에게 휘두르는 채찍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나는 그럴 생각이 없으나 너는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망할 수 있다는 위협은 오히려 상대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중국 정부도 악의적 경쟁을 유발하는 위협이라고 표현했다. AI 종말론을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속도가 문제가 아니다. AI로 금융업체들을 해킹하고 군사적 목적에 활용하는 것을 보면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각국 정부와 기업 모두 쓰임새를 제한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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