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이해승 청주MBC 기자



외국 영화 배우들 이름 기억하는데 젬병인 제가 한 남자배우, 캐빈 코스트너를 오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난 90년 아카데미 7개 부문상을 수상한 영화 ‘늑대와 춤을’으로 미국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배우, 가장 ‘미국인다운’ 스타로 꼽히는 배우로 발돋움했다는군요.

제가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느날 TV 토크쇼에서 내뱉은 인상적인 한마디 때문입니다.

‘래리킹 라이브’였을까요?

수줍은 모습으로 의자에 앉은 캐빈 코스트너는 인생과 영화, 사랑과 이별에 대해 자연스러우면서도 자못 진지한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토크쇼가 끝나갈 무렵, 사회자는 코스트너에게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농담식의 질문을 던집니다.

흠. 1억7천만 달러라는 천문학적 제작비를 바다에 쏟아 부었다느니, ‘늑대와 춤을 춘’ 자만이 빚어낸 재난 영화 1호라느니 비난을 한 몸에 받긴 했지만, 그래도 영화 ‘워터월드’에서 어설픈 물갈퀴를 사용해 여러 방의 액션을 보여준 용감한 사나이 캐빈 코스트너, 그는 과연 무엇을 가장 무섭다고 말할까?

호환일까? 마마일까? 음란 불법 테이프일까? 아니면 유치찬란하게 바퀴벌레? 뱀? 여자?

잠시 생각하는 제스처를 취하던 캐빈 코스트너는 그러나 전혀 뜻밖의 대답을 던집니다.

“변하지 않는 것, 숨막히게 확고 부동한 것, 내가 가장 무서워하고 또 싸워 부수고 싶어하는 것은 이것 뿐입니다.” (영어로 말했기 때문에 해석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의미는 일치한다고 볼 수 있음)

일요일, 모처럼 쇼파에 누워 감자 스낵을 까먹던 저는 “짜식 제법인데…”하며 눈을 부릅떴습니다. 악어 껍질보다 두꺼운 기득권의 외피를 뒤집어쓰고 절대 변하지 않는 것, 숨이 막힐 정도로 확고부동해서 타협이나 조정의 여지가 없는 것. 그것을 부수기 위해선 무한 대립의 고단한 삶을 살거나 결코 만나지 못할 숙명을 피할 수 없는, 기차 레일의 고통스런 아득함을 맛봐야 하는 것.

아, 생각해보니 요즘 그런 것들에 대해 환멸을 넘어 공포의 수준까지 도달하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이해승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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