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 개정안 우려… "징벌손배 대상서 권력자 빼야"
[정치자본 권력의 악용 어떻게 막나]
보도의 진실성·고의·중과실까지
언론이 입증책임 지는 쟁점 대해
현업단체서 여러 제언·요구 나와
더불어민주당이 9월 중 처리를 목표로 언론중재법 개정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현업 기자, 언론 단체에서 지속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언론의 주 감시 대상인 정치자본 권력의 ‘악용’을 막을 방안, 보도 진실성과 고의·중과실 여부의 ‘입증책임’을 언론이 지는 변화 등 핵심 쟁점에 대해 여러 제언이 나오며 숙의 요구가 이어지는 상태다.
1일 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가 주최한 ‘언론보도 피해자 보호 강화를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 방안 마련 토론회’에서 토론자 이준형 전국언론노동조합 전문위원은 “정치인, 공직자, 대기업 등을 징벌적 손해배상제 적용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밝혔다. 언론보도에 대해 ‘징벌적’ 또는 ‘배액’의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경우 언론 위축효과를 노린 공적 인물들의 전략적 봉쇄소송 남소(소송남발)를 야기할 수 있는 만큼 법 제정 시 고려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보도 진실성과 고의·과실 여부를 언론이 입증토록 하는 변화도 쟁점이 되고 있다. 앞선 손배제에 입증책임이 더해질 경우 권력비리에 대한 탐사보도, ‘미투’ 폭로나 공익제보 보도 등이 즉각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동훈 녹취록 오보’ 사태 등을 겪은 후 법조팀을 기피하는 내부 분위기를 전한 이승철 KBS 기자협회장은 이날 토론에서 “예전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의 폐수방류 사건을 보도한 적이 있는데 보도 관련 자료를 형사 절차처럼 요구하게 되면 앞으로 이런 보도는 못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민주당 언론특위 소속 의원들은 “피해자 구제 절차는 늦고, 배상액은 비현실적이며, 모든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비정상적 구조”(최민희 언론특위 위원장)를 지적하며 “오보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 때문임이 인정된다면 배상액을 높이는 게 정의”(노종면 언론특위 간사)라고 법안 마련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언론보도 피해자 보호 강화”엔 언론계도 동의하지만 자칫 급하게 마련된 법안이 언론 본연 역할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날 “언론의 권력화에 대해선 많은 이들이 동의하겠지만 권력 그 자체인 정치의 언론통제가 곧바로 정당화되진 않는다”는 이준형 위원의 발언 취지가 대표적이다.
앞서 언론 현업 10개 단체는 8월29일 공동성명에서 “언론의 사회적 책임 강화·시민 피해 구제 확대에 공감한다”면서 “평범한 시민에게 심각한 피해를 끼친 악의적 허위보도에는 무거운 책임을 물되 언론에 부여된 본연의 책무가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단체들은 윤석열 정권 당시 언론탄압을 언급, “징벌적 손해배상제까지 있었다면 ‘바이든-날리면’ 보도나 김건희씨 관련 의혹보도는 거액의 배상 위협 속에서 차단됐을 것”이라며 정치인과 공직자, 대기업 등에 대한 적용 제외를 촉구했다.
이날 시민 피해 구제, 언론개혁 필요성을 강조한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피해자가 손해액을 입증하면 법원이 일정 배수를 산정하는 배상배액제를 제안했다. 언론중재위원 위촉권을 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방송통신위원회로 이관하는 방식도 언급했다. 입증책임과 관련해선 원칙적으로 언론사에게 부과하되 피해자는 개연성 수준에서 피해사실을 입증하고, 언론은 자료제출 등 의무를 지는 방식도 주장됐다. 그는 “‘입증책임 전환’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 공정한 ‘입증책임의 분배·조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논의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정치·경제 권력자가 제기하는 소송에 대해서는 예외”라고 했다.
현재 민주당에서도 ‘정치자본 권력의 적용 배제’와 관련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노종면 민주당 의원은 이날 일률적 배제는 반대하지만 “권력자들은 반드시 언론중재위원회를 거쳐야만 징벌적 손배를 할 수 있도록 설계를 하고, 언론중재 단위 또는 하급심에서 조정결정이 나오면 그것을 수용하지 않을 권리를 법으로 제약”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언론중재위에 집행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도 했다.
아직 법안도 마련되지 않았는데 9월 중 처리를 위해 속도전으로 추진되는 상황에 언론단체들은 “개정의 목적이 시민 권익 보호에 있다면, ‘언론 자유 위축’과 ‘권력 감시 약화’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정교한 설계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정교한 논의와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논의의 장을 마련한다면, 적극 참여해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권력의 남용을 차단하는 실질적 해법을 함께 찾아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실제 이날 천용길 전 뉴스민 대표는 “시민의 언론 자유 보장을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 방향 취지에 대체로 동의하는 바”라면서도 “지역과 지방이라는 스케일로도 논의가 필요하다”며 폭넓은 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지역 스케일에선 지방정부 권력 감시에 대한 위축효과를 더 키울 수 있다”며 구조 개선을 제언했다. 또한 “언론중재법, 정부광고법,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을 연동해 제대로 된 공론장에 언론 참여를 유도”하고 “언론사 고충처리, 피해구제 제도 의무화·정교화, 신속한 피해구제 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 등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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