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검언유착 녹취록 오보’에 관여해 기소됐던 KBS 기자와 제보자로 지목된 신성식 전 검사장에 대해 8월27일 무죄가 선고됐다. 2020년 7월 한동훈 당시 검사장이 KBS 기자들과 간부들, 제보자를 검찰에 고소한지 약 5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과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지 2년 8개월여 만에 나온 판결이다.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3단독 한정석 판사는 KBS A 기자와 신 전 검사장에게 제기된 공소사실은 범죄로 성립되지 않고,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 판결했다. A 기자에 대해 재판부는 “KBS 법조팀장으로서 법조팀 다른 기자들과 함께 중요한 취재원인 신성식을 상대로 취재를 하고 그의 발언에 관해 진실확인 작업을 한 끝에 보도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고 보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검사가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이 피고인이 보도 내용이 허위라는 점을 인식했다는 점을 증명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KBS는 2020년 7월18일 한동훈 당시 검사장과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과 관련해 이 전 기자의 구속에 결정적인 ‘스모킹건’이 된 건 두 사람의 대화 녹취였다고 보도했다. 이 전 기자가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게 힘이 실린다며 유시민 관련 취재 필요성을 언급하고, 한 검사장은 이를 돕겠다고 했으며, 보도시점에 관해서도 얘기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해당 녹취에 그런 내용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나자 KBS는 보도 다음 날 사과방송을 하고, 해당 기사를 온라인에서 삭제했다.
그러나 보도 직후 한동훈 당시 검사장은 KBS 기자들과 간부들, 제보자로 지목된 신 검사장을 고소했고, 검찰은 2년여의 수사 끝에 2023년 1월 신 전 검사장과 KBS 법조팀장이었던 A 기자를 불구속 기소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때였다. 검찰은 또 다른 KBS 기자 2명은 보도에 관여한 정도와 역할, 지위 등을 고려해 기소유예 처분했고, KBS 간부들은 불기소 처분했다.
재판부 “일부 허위이나, 허위 인식 또는 비방 목적 있다 보기 힘들어”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해당 보도 내용 중 일부가 허위의 사실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보도에 나온 △한 전 장관의 취재를 돕겠다는 의미의 발언 △보도시점에 대한 이야기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면 윤석열 총장에게 힘이 실린다는 발언 등에 대해 “녹취록에 들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 내용이 기재되어 있는 것처럼 보도해 허위보도”라고 판단했다. 다만 한 전 장관이 이 전 기자에게 ‘유시민이 더 이상 정치인이 아니어서 수사하더라도 정치적 부담이 크지 않다’는 취지로 발언했다는 보도 내용에 대해선 “허위의 보도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법조팀 기자들이 신 전 검사장의 발언 내용을 진실이라고 믿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며 신성식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여러 정황들, 특히 서울중앙지법의 구속 영장 발부 결정과 발부사유 등이 보도 내용이 진실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 계기라고 봤다. “보도 내용 중 일부는 허위이지만, 피고인이 허위의 사실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보도를 한 것은 아니고, 피고인에게 비방할 목적도 없었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신성식은 채널A 사건 수사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서울중앙지검 고위 관계자로서 실제로 여러 차례에 걸쳐 KBS 법조팀에 채널A 사건 수사 내용을 알려줘 KBS 법조팀의 입장에선 신성식이 상당히 중요한 취재원일 수밖에 없다”며 “채널A 사건 수사팀이 이 전 기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선례가 드문 사건에서 법원의 판단이 어떠할지 각 언론사의 취재 열기는 고조됐고, 신 전 검사장은 KBS 기자들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계속 제시했다. 결국 예상대로 구속영장이 발부됐고 신 전 검사장이 수사기록을 실제로 봤다고 하자 기존 발언이 사실일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강도높은 수사에 정신과 치료도… “사과까지 했는데 기소한 저의, 아직도 의문”
사건이 발생하고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5년여가 흘렀지만, KBS 기자들에겐 아직 소송이 여럿 남아 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당시 KBS 기자, 간부 등 5명에 총 5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제기해 1심 재판이 아직 진행 중이다. 2023년 1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던 KBS 기자 2명이 그해 3월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기소유예처분 취소 사건도 남아있다.
검찰의 기소 처분 당시에도 “기자들의 취재행위 자체를 극도로 위축시킬 무리한 기소”라며 “명예훼손 당사자이자 고소인이 현직 법무부 장관이 아니었다면 과연 기소까지 했겠느냐는 의구심도 든다”는 KBS 기자들의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 당시 2년여 간의 검찰 수사와 압수수색 과정에서 문제적 장면들이 있었다는 당사자 기자들의 지적도 나온다. A 기자는 “신성식 전 검사장과는 아예 일면식도 없었고 검찰에서 제 휴대폰을 다 뒤졌지만 문자나 통화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음에도 공소장을 보면 순차적으로 공모했다고 써 놨다”며 “기가 막히면서도 보도에 대해 사과 방송까지 했는데 굳이 공모로 엮어서 기소까지 한 데 대한 검찰의 저의가 무엇이었는지 아직도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여러 차례 조사 과정에서도 담당 검사가 직접 조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조서가 확정된 적이 없었다. 윗선에 검토되는 시간이 따로 있었고 또 추가 질문이 내려오는 과정을 거쳤다”며 “명예훼손 사건임에도 참 이례적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던 B 기자는 검찰로부터 강도 높은 수사에 시달리기도 했다. B 기자는 압수수색과 검찰 조사까지 총 8번을 검찰에 다녀왔다. 2021년 2월 수사가 중단됐다가 윤석열 전 대통령 취임 이후인 2022년 6월30일 수사가 다시 개시되며 B 기자는 갑작스레 압수수색 영장을 받게 됐다.
B 기자는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는 공간이 입주민이 왔다 갔다 하는 아파트 1층이었다. 당시엔 정신이 없어 인지를 못했는데 당시 아버지가 살아계셨었는데 ‘너 망신 주려고 했던 거 아니냐’는 얘기를 하셔서 참 속상했다”고 회상했다. 또 검찰 조사 과정에 대해서도 “당시 제가 연차가 제일 어려서 그런지 압박이 유달리 심했다. 취재원을 밝힐 수 없다고 하니 ‘나이가 어려서 이 상황의 심각성을 잘 모르나 본데 중범죄를 저질렀으면서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취지로 말했다”며 “너무 몰아붙이니 그 앞에서 울음을 터트렸고, 중간에 조사가 중단된 적도 있다. 수사 받고 나서 그 스트레스가 너무 커 기사를 쓰는 게 무섭고, 자판에 엔터키가 어디 있는지 까먹을 정도로 적응장애를 겪어 한동안 정신과 약을 먹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B 기자는 “해당 기사가 오보인 건 맞고, 검찰 취재 관행에서 벗어날 필요는 있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무리한 수사와 기소였다는 점을 법원이 정확히 판단을 해 준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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