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피해 적극 구제하되 공적인물 소송 남발 막아야"

1일 민주당 언론특위 주최 언론중재법 토론회
배액배상, 입증책임 두고 언론단체 등과 격론
"숙의 시간 갖고 최대 공약수 찾는 과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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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현업단체는 언론중재법이 권력 비판과 감시 억제책이 아닌 시민 피해 구제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갖고 있다.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에 따라 입증책임이 (언론에 돌아가는 걸로) 전환되는 문제에 대해 굉장히 유의해야 하고, 원칙적으로 반대한다. 특히 정치자본 권력에 대해선 징벌적 손해배상제 적용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이준형 전국언론노동조합 전문위원)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언론보도 피해자 보호 강화를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방안 마련 토론회'에서 발제자, 토론자 등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 간사,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 이승철 KBS기자(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KBS지회장), 이준형 전국언론노동조합 전문위원, 이준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협회장, 장철준 단국대 교수, 천용길 뉴스민 전 대표, 허진민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한국기자협회

더불어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가 주최한 1일 ‘언론보도 피해자 보호 강화를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 방안 마련 토론회’에서 현업 기자, 언론 단체가 법안에 대한 여러 우려와 제언을 내놨다. 민주당이 9월 중 처리를 목표로 언론중재법 개정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피해구제의 방법인 ‘배액배상’, 피해 구제 과정에서 ‘입증책임’ 주체, 언론의 주 감시 대상인 ‘정치인·대기업의 악용’ 등 쟁점을 필두로, 충분한 숙의를 거칠 필요가 있다는 게 대표적 의견이다.

언론중재법 개정과 관련한 의견수렴 성격의 이날 토론에서 이 위원은 징벌적 손배제 도입 시 “공적 인물에 의해 더 적극적으로 이용되고 심지어 남소(소송남발)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놨다. 앞서 이뤄진 발제에 2023년 언론중재위원회 통계가 인용돼 전체 손해배상 청구 건수 중 정치인이 10.05%, 공직자는 7.69%를 차지, 언론계 우려만큼 공적 인물의 손배 청구가 많지 않았고 승소율도 일반인보다 낮았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이에 대한 반박 차원이다.

이 위원은 “전체 국민 중 공적 인물의 비율이 극히 적은 점을 고려하면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다. 이미 이 분들은 언론중재법을 활용하고 있단 걸 보여주는 것”이라며 “승소할 가능성이 낮은데도 공적 인물들이 언론의 위축 효과 등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소를 제기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편이 더 타당해 보인다. 전략적 봉쇄소송의 실질적 위협이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진실하지 않은 보도를 할 경우” 입증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 언론단체들이 우려해온 부분도 재론됐다. 이 위원은 “한국 사회에서 언론의 권력화에 대해선 많은 이들이 동의하겠지만 권력 그 자체인 정치의 언론통제가 곧바로 정당화되진 않는다”며 “언론의 입증 책임을 강제하게 되면 ‘미투’ 보도나 공익 제보자를 활용한 보도 등은 제한될 우려가 매우 크다. (향후 법 제정 시) 취재원 비닉권(취재원을 밝히지 않을 권리) 보장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그는 “전략적 봉쇄소송 우려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선 정치인, 공직자, 대기업 등을 배액배상제 예외로 두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라며 "대단히 중차대한 문제인 만큼 짧은 시간에 처리하겠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기보단 집중적 사회 논의와 숙의 시간을 갖고 최대 공약수를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언론 현업 단체들도 적극 협력하겠다고 말씀드린 바 있다"고 부연했다.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언론보도 피해자 보호 강화를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방안 마련 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발제문 ‘시민의 언론 자유를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의 필요성과 방향’에서 현재 언론보도에 의한 피해 구제제도가 ‘실질적 피해회복보다 상징적 배상에 머물고 있고’, ‘법원 판결로 언론의 사회적 책무와 공적 관심사 균형을 형성할 수 있으며’, ‘전통 언론 중심 손배체계가 유튜브 등 신 매체를 포섭하지 못하고 있다'며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채 교수는 입증책임과 관련해 언론단체들과 다른 입장을 밝혔다. 정보 불균형이 큰 언론-시민 간 관계에선 시민에게 언론의 고의성과 중대 과실을 직접 입증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무리인 만큼 원칙적으로 언론사가 입증 책임을 지도록 전환하는 게 피해구제 실효성을 담보하는 길이란 논지다. 구체적으론 피해자에게 ‘증명’이 아닌 ‘개연성’ 수준에서 입증 책임을 부과하되 언론사는 관련 자료 제출 및 협조 의무를 강화하는 방식이 제안됐다.

그는 “입증책임을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 어느 한쪽에만 부과하는 것은 시민의 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동시에 위축시킬 수 있다”며 “‘입증책임 전환’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 공정한 ‘입증책임의 분배·조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논의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만 “정치·경제 권력자가 제기하는 소송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어 원고에게 입증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발제문에선 피해자의 권리 회복, 언론의 허위·조작보도 억제 차원에서 현행 손배제를 배상배액제로 전환시킬 필요도 거론했다. 피해자가 손해액을 입증하면, 법원이 일정 배수(예: 3~5배)로 산정하는 방안이다. 채 교수는 언론자유가 언론개혁에 대한 전략적 봉쇄담론으로 기능했다고 지적하며 “언론중재법은 시민들의 구제를 통해 언론의 책임을 확장하는 것이고 언론이 시민에 대한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게 발제의 취지”라고 밝혔다.

현업기자인 이승철 KBS 기자(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KBS지회장)는 소송이 언론사, 기자에 상당한 심리적 위축효과가 있고, 향후 ‘징벌적 손배제’ 등이 도입됐을 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했다. ‘한동훈 녹취록 오보’ 사태 등을 겪은 후 내부 분위기를 언급한 그는 “법조팀 기피 현상이 있어 일하겠다는 기자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의무복무하듯 1년 단위로 돌리거나 경력기자를 채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논의되는 법안에 대해서 그는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3배, 5배 안이 논의되고, ‘허위 입증’과 ‘반복’이 요건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허위 입증이라면 방송금지 가처분 결정인지, 민형사 1심 판결인지 정밀한 논의를 해야할 것 같다. 당사자 보도 반복인지, 인용보도도 포함인지 반복의 기준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특히 입증책임과 관련해 언론중재위 제소, 가처분, 소송을 당하면 언론사는 이미 최소한의 진실성, 상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방대한 자료를 제출, 입증하고 있다면서 그는 “예전에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의 폐수방류 사건을 보도한 적이 있는데 (보도 바탕이 된) 이런 자료를 형사 절차처럼 요구하게 되면 앞으로 이런 보도는 못하게 될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도 했다.

천용길 전 뉴스민 대표는 “시민의 언론 자유 보장을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 방향 취지에 대체로 동의하는 바”라면서도 “지역과 지방이라는 스케일로도 언론중재법 개정 방향의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탰다. 그는 시민의 언론 자유권을 1)필요 정보를 언론을 통해 획득할 권리 2)다양한 언론을 선택할 권리 3)언론의 사생활·인격권 침해 등으로부터 자유롭고 구제받을 권리 4)언론을 통해 사회 공론장에 참여할 권리로 구분하며 현재 언론중재법 개정 논의가 3)에 한정돼 있는 상황을 지적했다.

그는 “시민의 입장에서는 사후적인 손해배상보다 언론사가 빠르게 오보를 인정하고 정정·반론 보도를 하도록 하는 것이 1차적으로 중요하다”며 “지역 단위 스케일에서 이뤄지는 오보, 왜곡 보도는 변화한 미디어 생태계에서 정치적 공방이 이뤄지면서 확대 재생산되기보다는 구체적인 사람 대 사람 관계, 특정한 집단 내에서 인격권 침해로 방치되기 더 쉽다”고 했다.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언론보도 피해자 보호 강화를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방안 마련 토론회'에서 발제자, 토론자 등이 발언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

특히 대구경북 지역언론 사례를 들어 천 전 대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위축 효과가 지역 스케일에서는 지방정부 권력 감시에 대한 위축효과를 더 키울 수 있다”며 “소송 중심의 억제책이 아닌 구조 개선 방향을 중심으로 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따라 “언론중재법, 정부광고법,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 연동을 통해 제대로 된 공론장에 언론을 참여시킬 수 있는 방향”, “언론사 내 고충처리, 피해구제제도를 의무화·정교화하고, 피해구제를 신속하게 했을 때 인센티브를 부여할 수 있는 방안”의 고민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언론개혁특별위원회 간사)은 토론회에서 ‘정치자본 권력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적용 제외’ 등이 여러차례 언급되자 현재 준비 중인 일부 법안 취지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노 의원은 “(일률적인 배제는 반대하지만) 지금 민주당에서 고민하고 있는 안은 소위 권력자들의 청구권은 일정한 제약이 필요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며 “권력자들은 반드시 언론중재위원회를 거쳐야만 징벌적 손배를 할 수 있도록 설계를 하고, 언론중재 단위에서 또는 하급심에서 조정결정이 나오면 그것을 수용하지 않을 권리를 법으로 제약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그는 “이걸 좀 더 확장하면 권력자들이 다이렉트로 소송 거는 걸 못하게 하는 것도 고민할 수 있다. 동의가 된다면 실질적으로 언론계에서 지적하는 ‘남발’도 제언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이를 위해선 반드시 언론중재위에 행정적 집행을 담당하는 일종의 센터 같은 집행기구가 설치돼야 한다. 이런 것도 고민을 하고 논의를 해야 좀 더 생산적일 수 있다고 보고 사회자임에도 말씀을 드렸다”고 했다.

보다 근원적인 차원에서 미디어 비평 확대에 대한 고민도 제시됐다. 이승철 KBS 기자가 “언론이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서로 비판을 하지 않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언론이 언론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방송사업자 허가 기준에 미디어비평 의무화, 매체비평 교육 프로그램 및 언론단체에 대한 지원 등을 제안하자 노 의원은 “언론사 간 매체 비평 확장은 민주당 내에서도 지금 제도를 고민하고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으로 다 해결할 순 없겠지만 또 다른 차원의 논의가 없지 않고 하나씩 해결하려는 과정이란 점을 말씀드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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