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 총알은 피했지만 긴장 늦출 수 없다"
[27일 아침신문 한·미 정상회담 보도]
대체로 '선방' 평가… 이 대통령 '칭찬 외교' 주목
트럼프 '오해' 부른 '마가' 인사 관리 필요성도 제기
숨 가쁜 일정으로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이 마무리됐다. 23일 일본을 시작으로 3박6일간의 순방길에 올랐던 이재명 대통령은 필라델피아에서의 일정을 끝으로 26일 저녁(현지시각)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엔 28일 도착 예정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지난달 말 한·미 관세협상 타결 직후 급박하게 추진됐고, 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변수가 이어지며 우려가 컸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일본을 건너뛰고 미국으로 건너갔고, 대통령실 안보·정책실장에 이어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3실장’이 총출동하는 이례적인 상황에 회담 전망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왔다.
급기야 이번 회담의 ‘호스트’인 도널트 트럼프 미 대통령이 회담을 약 3시간 앞두고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며 ‘숙청과 혁명이 일어나는 한국에선 사업할 수 없다’는 취지의 글을 올리면서 긴장감은 더 고조됐다. 한국 시각으로 25일 자정을 지나 이번 회담이 이뤄진 탓에 26일자 신문(배달판 기준) 상당수에도 이런 긴장과 우려가 반영됐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 분위기가 달라졌다. 27일자 전국 단위 종합일간신문 대부분은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악수하거나 서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사진을 1면에 실으며 대체로 ‘선방’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일단 큰 고비는 넘겼다는 면에서 신문들의 평가는 큰 차이를 찾을 수 없었고, “외교적 참사”라는 ‘제1야당’ 국민의힘 논평은 전날 ‘반탄’ 장동혁 의원을 당 대표로 선출한 것과 맞물려 중요하게 다뤄지지도 않았다.
27일 대다수 신문은 한·미 정상회담을 1면 머리기사로 올린 것은 물론, 4~7개의 지면을 통으로 할애해 회담에서 다뤄진 주요 의제, 배경, 의미 등을 다뤘다. 1면 기사 제목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반영됐는데, 경향신문과 동아일보는 상호간 ‘신뢰’를 구축했다는 데 의미를 뒀고, 한국일보는 ‘한반도 평화’의 불씨를 살렸다고 평가했다. 조선일보는 ‘첫 허들’은 넘었다는 표현을 썼고, 한겨레는 ‘민감한 청구서’를 늦췄다며 경계를 풀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26일 자사 주최로 열린 ‘CSIS 포럼 2025’에서 나온 “총알은 피했다”는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 석좌의 총평을 정상회담 기사와 나란히 1면에 실었다.
다음은 27일 주요 신문 1면 제목이다.
경향신문 <이 대통령, ‘김정은·조선업’ 엮어 트럼프와 신뢰 구축>
국민일보 <트럼프 움직인 실용외교…안보·통상 안정화 첫걸음>
동아일보 <李-트럼프 신뢰 첫발…“한비 관세합의 유지”>
서울신문 <李 “안미경중 못 한다”…미국 우선 외교>
세계일보 <트럼프 “김정은 만나고 싶다” 李 “APEC서 추진”>
조선일보 <‘한미동맹 시험대’ 첫 허들은 넘었다>
중앙일보 <북·미회담 띄우자 트럼프 받았다>
한겨레 <트럼프 띄운 이 대통령, ‘민감한 청구서’ 늦췄다>
한국일보 <북미대화 띄워 ‘한반도 평화’ 불씨 살렸다>
조선일보도 주목한 이 대통령 ‘대화의 기술’
상당수 신문이 이재명 대통령의 ‘칭찬 외교’에 주목했다. 동아일보는 <“황금색 집무실 美번영 상징” 칭찬외교, 트럼프 매복 공격 피해> 제하의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 대통령을 당황시킬 ‘매복 공격’을 감행하지 않았다. 칭찬을 좋아하고 인정 욕구가 큰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감안해 이 대통령이 내놓은 발언들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단 분석이 나온다”고 전했다.
노벨 평화상 수상을 원하는 트럼프에 이 대통령이 피스메이커(peace maker) 역할을 부탁한 게 대표적이다. 동아는 또 “이 대통령은 이날 의자 앞부분에 앉아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트럼프 대통령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역시 상대에 대한 ‘존중’을 최대한 보여주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2면에 ‘정상회담 풀어간 대화의 기술’을 분석한 기사를 머리기사로 싣고, 5면에서도 “우려가 컸지만 선방했다”는 전문가 평가를 담았다. 이 기사에서 이화여대 박원곤 교수는 “대통령실의 국가안보실장뿐만 아니라 비서실장, 정책실장이 워싱턴 DC에 집결하고, 외교부 장관은 한일 정상회담을 건너뛰고 급히 방미, 최악의 외교 참사가 거론되던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선방했다”고 평가했다.
“첫 단추 잘 끼웠지만, 언제 어떤 청구서 제시될지 몰라”
사설에서도 대체로 첫 단추는 잘 끼웠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다만 후속 협상 등 남은 과제가 만만치 않다는 점도 일깨웠다. 국민일보는 <선방한 첫 한·미 정상회담… 디테일 채워가는 숙제 남았다> 사설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우려했던 돌발 상황 없이 원만하게 마무리됐다”면서 “최대 성과는 외교의 상식을 뒤엎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에서 긍정적인 첫 단추를 끼웠다는 점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곧이어 “잔뜩 긴장했던 것에 비해 밋밋하다 싶은 결과는 오히려 향후 이어질 후속 논의를 낙관하기 어렵게 한다”면서 “발표문도 기자회견도 없었던 데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매우 가변적인 터라 언제 ‘청구서’가 제시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큰 틀의 협력·동맹 관계를 다진 이면에 미처 채워지지 않은 ‘디테일’을 어떻게 다뤄가느냐가 이재명정부 실용외교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앙일보도 <첫발 잘 뗀 이재명 정부 대미 외교, 본 게임은 이제 시작> 제하의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당일에도 디지털 규제국에 추가 관세 방침을 밝힐 정도로 통상 압박은 현재진행형”이라며 “농축산물 추가 개방이나 방위비 분담금 증액 문제도 잠복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한겨레 역시 <큰 고비 넘긴 한-미 정상회담, 후속 논의도 잘 이어가야> 사설에서 “대북 정책에 대한 공감대를 매개로 두 정상이 새롭게 친밀감과 유대를 형성했다는 점이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성과였다”고 평가하면서도 “이번 회담의 핵심 의제였던 △한-미 경제통상 안정화(관세 협의 마무리) △동맹 현대화 등에서 지금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명확한 합의가 나오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결국 이번 회담은 총론은 만족스럽지만, 각론에선 많은 문제를 다음으로 넘긴 셈”이라며 “큰 고비를 넘겼지만 ‘트럼프 리스크’는 해소되지 않았다. 트럼프 시대의 한국은 외교안보·통상에서 어느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밝혔다.
회담 직전 트럼프 ‘돌발’ 발언… ‘MAGA 영향력’ 대비 필요
이번 회담이 돌발 상황 없이 끝나긴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숙청-혁명’ 등 발언을 단순한 ‘오해’나 ‘해프닝’으로 넘길 사안이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세계일보는 6면 머리기사에서 “미국 극우세력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인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의 정치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장면인 동시에 트럼프 시대 대미 외교에서 특별히 주의해야 할 부분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고 전했다.
세계일보는 “오해는 불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전 ‘폭탄 발언’이 그의 핵심 지지층, 즉 마가 인사들의 인식에 영향을 받은 측면이 있다는 점은 주목되는 지점”이라고 강조했다. 기사에 따르면 극우 인플루언서 로라 루머는 6월 이 대통령 당선 직후 SNS 엑스(X·옛 트위터)에 “공산주의자들이 한국을 접수해 오늘 대선에서 승리했다”고 언급했고, 한국의 탄핵 반대 진영과 긴밀히 소통해 온 강경 반중 성향의 고든 창 변호사는 SNS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 제발 이재명(대통령)에게 그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을 멈춰야 한다고 말해주세요”라고 쓰기도 했다. 이들 마가는 미국 내 사안뿐 아니라 외국 정치에 개입하며 글로벌 우파 연대 형성에도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일보는 “트럼프 대통령이 하필 정상회담 직전에 이 같은 메시지를 올린 것은 협상력 제고 차원이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마가 자체의 영향력도 결코 작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내년 중간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마가의 조직적 힘이 필요하다”면서 “정부가 향후 국내 탄핵 반대 진영에서 마가를 원군으로 활용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마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을 고려한 사전 대비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오는 이유”라고 전했다.
조선일보도 2면 <트럼프 귀 붙잡은 ‘매가’ 인사들… 관리 필요성 제기> 제하의 기사에서 “트럼프의 이날 발언은 해프닝으로 마무리됐지만, 이와 비슷한 일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면서 외교 소식통을 인용, “이들의 주장이 근거 없다고 무시만 할 게 아니라, 대사관 등에서 매가 인사들을 적극적으로 접촉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여론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보도했다.
국민일보 “순복음교회 압수수색 거론, 안타까운 일”
한편, 국민일보는 트럼프의 이번 발언과 관련해 “특검의 절제”를 촉구하는 사설을 실어 눈길을 끌었다. 국민일보의 이날 <트럼프도 우려한 교회 압수수색… 특검은 절제해야> 사설은 “특검의 여의도순복음교회 압수수색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거론된 것은 민망하고 안타까운 일”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교회 이름을 적시하지는 않았으나 특검이 지난달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의 당회장실과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한 것을 문제삼은 것은 분명하다”면서 “특검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사지 않도록 절제된 수사를 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특검이 압수수색한 교회는 여의도순복음교회만이 아니라 통일교 본부 등이 있는데, 국민일보는 순복음교회만 콕 집어 언급한 것이다.
신문은 “내정 간섭이라는 지적이 있을 수도 있지만 기독교 신앙을 내세워 건국된 미국의 대통령으로서는 당연한 행동”이라면서 “이 대통령의 해명 이후 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돼 다행이지만 특검 수사가 정상 외교의 걸림돌이 되는 일은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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