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배? 허위정보 막고 언론자유는 지키려면

언론법학회 '위기의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 세미나
"규제 남용·악용 막으며 헌법적 정당성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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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3일, 잊을 수 없는 그날 밤, 난데없는 ‘비상계엄’ 속보를 접하고 ‘가짜뉴스’라 타박한 사람이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모든 게 ‘사실’이었고, 이후로도 한참 동안 ‘가짜뉴스’ 같은 일들이 이어졌다. 헌법에 따른 대통령 탄핵을 저울질하는 동안 그 헌법이 보호하는 표현의 자유를 시험하기라도 하듯 거짓, 조작과 음모론 등이 판을 치기도 했다.

반년이 지나 새로운 정권이 출범했고, 새 대표 체제를 꾸린 집권 여당은 이 ‘가짜뉴스’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천명했다. 당 대표가 중심이 되어 ‘전광석화 같은 언론개혁’을 주문하며 언론보도와 유튜브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가짜뉴스 통제’와 ‘언론의 고의적 왜곡 및 허위정보에 대한 책임’을 강조했다.

가뜩이나 디지털 환경의 발달과 함께 허위정보가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계엄과 탄핵을 거치며 우리 사회는 이것이 공동체의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걸 몸소 경험했다. 헌법에 기초한 민주정·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그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표현의 자유에 일부 제한을 가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런 시점에 21일 한국언론법학회 주최로 열린 학술세미나에선 ‘위기의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계엄, 탄핵, 그리고 허위정보 규제’를 주제로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됐다. 공통된 건 규제의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남용 또는 악용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주문이었다.

한국언론법학회가 2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위기의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계엄, 탄핵, 그리고 허위정보 규제’ 학술 세미나를 개최했다. /김고은 기자

김가희 이화여대 법학연구소 연구원은 허위정보에 대한 국가 개입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김 연구원은 “허위정보 문제는 디지털 정보환경의 구조적 변화 속에서 민주주의의 건전성, 공공의 안전, 사회 전반의 신뢰 기반을 위협하는 중대한 도전으로 자리 잡았다”면서 “허위정보 규제는 정보환경의 신뢰성을 확보하고 수용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필수 과제”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헌법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기준 하에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제는 표현의 자유와 구조적으로 긴장 관계에 있으므로, 정의와 요건이 모호하거나 과도할 경우 제도의 남용, 합법적 비판의 위축, 정치적 악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제는 보호법익이 무엇인지, 규제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하고, 침해 최소성 원칙과 절차적 보장을 확보해야 헌법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 유튜브 등 온라인상 허위정보 규제를 목적으로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상당수가 허위조작정보의 정의부터 “광범위하고 추상적”이어서 “표현의 자유와 정보 접근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위험”이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김 연구원은 더불어민주당이 도입하려는 징벌적 손배 등 이른바 ‘언론개혁’ 입법에 대해서도 “브로드한(광범위한) 안보다 정치하게 치밀한 설계를 통해 규제를 잘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이재욱 MBC 기자도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방향성에 공감하고 “규제의 필요성은 필연적”이라고 하면서도 “입법 취지대로 편파, 악의적 보도를 일삼은 언론 횡포를 줄이는 순기능만 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편파, 악의적 보도라는 규정 자체도 몹시 주관적이며, 그 자의적 규정으로 권력 감시 보도에 대해 악의적으로 대응할 가능성도 다분하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사라진 ‘자율규제’ 논의 되살릴 방법은

최근 규제 관련 입법에서 ‘자율규제’ 논의가 빠져 있다는 것도 한 특징이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이날 발제에서 규제 논의가 정치 논리에 휩쓸리며 자율규제와 ‘정치적 독립성’ 고려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이는 애초에 이재명 대통령 공약에 포함됐던 ‘방송미디어 자율의 허위조작정보 심의기능 강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 강화’ 등의 방향과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단적인 게 김현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시청각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법’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형식상 민간 독립기구인 현재의 방심위는 시청각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로 개편, 위원장이 국회 인사청문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무직 공무원이 되는 등 행정기관화 된다. 사실상 ‘국가 검열 기구화’를 의미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방송심의는 물론 정보통신망법상 유해정보 심의, 온라인 콘텐츠 내용의 건전성 관련 심의 등 권한과 기능도 확대된다. 그러나 내용 심의는 필연적으로 표현의 자유 침해 등 위헌성 논란을 동반한다. 행정규제 확대만이 아닌 자율규제 강화를 통한 공동규제의 ‘협치’를 심 교수가 강조한 이유이기도 하다. 자율규제기구가 주어진 법령의 범위에서 사전적으로 폐해를 방지하고 사후적으로는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하는 ‘규율을 통한 자율규제’ 원칙도 제시했다.

그는 그러면서 “자율규제는 행정규제보다 ‘제재 수준이 낮아야 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더 높은 윤리적 도덕적 기준을 통해서 자율적인 정화 노력을 수행함으로써, 행정기관을 비롯한 외부로부터 ‘언론의 자유’가 침해받거나 통제받지 않도록 실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미디어의 ‘자율적인 실천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언론 자율규제에 다소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다. 정철운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은 자율규제가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현재의 징벌적 손배제 도입 국면이 자율규제에 실패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여기서 다시 자율규제를 강화하자는 주장은 솔직히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결국 4년 전 예고대로 최악의 규제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면서 언론 스스로 ‘언론보도 피해구제 현실화’를 포함한 ‘효과적인 자율규제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율규제는 규제 폐지가 아닌 사회적 책임을 부여하는 방법’이라는 주장을 설득할 주체는 다시 언론”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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