뙤약볕이 내리쬐는 21일, 한적한 경기 분당 메모리얼 파크엔 모처럼 사람들이 북적였다. 향년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故이용마 MBC 기자의 6주기를 추도하기 위해서였다. 뜨거운 햇살에 사람들은 연신 땀과 눈물을 훔쳤지만 추도식은 마냥 슬픈 분위기로 진행되진 않았다. 이날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MBC 지배구조 개선을 골자로 한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생전 고인이 그토록 염원했던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이 첫 걸음을 뗀 날, 추도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개운한 얼굴로 이 사실을 알리며 남은 과제 또한 완수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추도식엔 이재명 대통령이 메시지를 보내 고인을 기렸다. 이 대통령은 “2012년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치열한 투쟁이 펼쳐졌던 MBC 파업 현장. 그는 언제나 선두에 서서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웠다”며 “해직의 시련을 겪으며 몸과 마음이 지쳐갔음에도 굴복하거나 고개 숙이지 않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병마와의 사투 속에서도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을 포기하지 않고 정치권력으로부터 공영방송이 독립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기고자 마지막까지 부단히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어 “당신이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 오늘 우리에게 찾아왔다”며 “살아생전 이 순간을 마주했다면 누구보다 기뻐했을 모습이 눈앞에 선명히 그려진다. ‘세상은 바꿀 수 있다’는 그의 말을 다시금 되새기며 어떠한 어려움을 마주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다져본다”고 전했다.
박종현 한국기자협회 회장도 “MBC를 넘어 한국 언론, 한국 사회가 이용마 선배가 생각했던 언론의 자유, 약자를 위한 세심한 눈빛을 유지해야 할 것”이라며 “우리 언론인들이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또 카메라와 펜으로 현장을 지키면서 그 역할을 온전히 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추도식에 참석한 MBC 선후배들은 이용마 기자를 그리워하며 그의 유지를 받들겠다고 다짐했다. 전성관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장은 고인이 2012년 170일 파업 때 들고 다닌 슬로건을 들어 보이며 눈물을 글썽였다. 전 본부장은 “선배가 170일 파업 때 이 띠가 정말 지저분해지도록 들고 다녔다”며 “‘MBC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다’는 문구를 되새기며 이용마 선배께 부끄럽지 않은 후배가 되겠다. 질기고 독하고 당당하게 MBC 조합의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박성호 방송기자연합회 회장도 “옛날 같으면 ‘이런 날이 오는구나. 정말 영화 같은 날이구나’ 하며 당장 여의도의 허름한 호프집에 달려가 왁자지껄하게 맥주잔을 부딪치며 감격을 주체 못할 날”이라며 “그 축배를 부딪치는 자리 내 앞에 이용마가 있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생각해봤다. 특유의 꼿꼿한 말투로 ‘선배 이것으로 끝났다고 보지 않아요. 앞으로가 더욱 중요하다고 봐요. 제도도 제도지만 결국은 운영이고 결국은 사람이 문제일 겁니다.’ 이용마의 유지는 그래서 오늘 이 시간으로 다 실현된 게 아니라 앞으로 더 잘 지켜가야 할 우리의 나침반이 될 것이며, 그 일은 남은 우리가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용마와 함께 꾸었던 꿈, 약속 지키겠다”
추도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날까지 통과된 방송법과 방문진법 개정안을 출력해 이용마 기자의 빈소 앞에 놓아두기도 했다. 이호찬 언론노조 위원장은 “후배로 지켜봤던 이용마는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공정방송이란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정말 질기고 독하게 싸웠다”며 “해고 이후 복막암의 고통 속에서도 삶의 마지막까지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야위어가는 몸을 이끌고 광장에 나와 기력을 다해 ‘공영방송은 국민에게,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외쳤다”고 전했다.
이어 “방송법에 이어 방문진법까지 통과됐다”며 “이용마 기자의 마지막 소망이 그 법에 담겼다. 물론 선배는 아직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 부족함은 저희 후배들이 현장에서 질기고 독하고 당당하게 싸워가며 채워가겠다”고 울먹이며 다짐했다.
언론노조 MBC본부도 이날 추모 성명을 내고 “마침내 이용마가 꿈꾼 세상으로 나아간다”고 밝혔다. MBC본부는 “‘공영방송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씨앗이 이제 싹을 틔우고 있다”며 “‘세상은 바꿀 수 있다’는 그의 간절한 믿음이, 믿지 않았던 사람들조차 어깨 겯고 함께 나아가게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용마와 함께 꾸었던 꿈, 이용마와 함께 했던 약속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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