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성위 개최 4차례 요구에도... 박장범 사장 '거부 일관'

실무자 측 편성위원들 "박 사장, 무엇이 두려운가"
처벌 규정 신설됐지만... 방통위 규칙 핑계로 개최 미룰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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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범 KBS 사장이 전체 편성위원회 개최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계속 거부할 경우 강력한 수단을 동원해 대응할 것”이라는 KBS 구성원의 경고가 나왔다. KBS 기자협회와 PD협회 등 직능단체들은 최근 총 4차례에 걸쳐 편성규약에 따른 편성위 구성과 개최를 요구했다. 편성위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이 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이어 1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데 따른 것이다. 다만 사측은 새 방송법 공포 이후 논의하겠다는 입장만 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KBS 편성위 실무자 위원들은 18일 성명을 내어 “박장범 사장은 더 이상 사규를 위반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냈다.

박장범 당시 KBS 사장 후보자가 지난해 11월1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18일 전체 편성위 실무자 위원 측은 ‘KBS 전체 편성위 개최 요구서’를 사측에 발송했다. 안건은 △전체 편성위 위원 상견례 △전체 편성위 운영 관련 제 세칙 개정 △제작비 삭감 및 전체 편성 조정에 대한 건 △부문별 편성위 운영 활성화 방안 △방송법 개정안 관련 대응 방안 등이다.

7일에도 실무자 측은 전체 편성위 개최 요구서를 보냈다. 하지만 사측은 11일 회신에서 “방송법 개정안 관련 편성위 구성 요구건은 국회를 통과한 방송법 취지에 부합하도록 새롭게 편성위가 구성된 이후 논의돼야 할 것이며, 현행 편성규약에 따라 분야별 편성위를 개최할 수 있으며, 여기서 조정이나 해결되지 않은 사안은 전체 편성위에 상정할 수 있다”며 개최를 무산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 앞서 7월22일과 30일 KBS 기자협회와 PD협회는 두 차례 공동성명을 내어 지난해 말부터 파행 운영되고 있는 편성위의 재구성을 박장범 사장에게 요구했다. 하지만 사측은 “전체 편성위 재구성은 방송법 개정이 완료되면 개정 법률안의 내용을 숙고해 편성규약에 반영할 예정”이라는 이유를 들며 거부했다. 이에 KBS 직능단체들은 실무자 측 편성위원만 먼저 구성한 상태다. KBS 방송편성규약엔 ‘대표노조가 없거나 단체협약이 실효된 경우, 전체 편성위의 취재 및 제작 실무자 위원은 보도와 TV, 라디오 편성위 대표 3명으로 구성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거듭되는 사측의 편성위 개최 거부에 실무자 측 편성위원 7명(교체위원 2명 포함)은 18일 성명을 내어 “회사는 몇 주가 될지, 몇 달이 걸릴지도 모르는 새 방송법 공포와 방통위 규칙 제정을 핑계로 대고 있다”며 사측이 주장하는 거부 사유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실무자 측 편성위원들은 “박장범 사장은 마치 회사에 전체 편성위가 존재하는 것처럼 답변하고 있다. 박장범 사장에게 묻는다. 지금 회사에 전체 편성위가 있는가”라며 “전체 편성위는 지난해 말 이후로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전체 편성위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부터 새 방송법의 실질적인 시행 시작 전에 발생하는 사안은 어디서 누구와 의논하겠다는 것인가”라며 “심지어 MBC와 SBS, EBS 등 새 방송법이 적용될 회사들은 전체 편성위를 통해 방송법 개정 이후 발생할 문제들에 대한 협의를 이미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될 KBS의 상황은 어떠한가. 편성규약에 따른 전체 편성위 실무자 위원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박장범 사장과 사측은 일체의 논의를 외면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말 이후 전체 편성위 한 번도 안 열려

방송법 제4조 4항에 따라 2001년 제정된 KBS 편성규약엔 내외의 부당한 압력이나 간섭으로부터 자율성을 보호하고 취재 및 제작 실무자의 권한을 보장하기 위해 편성위를 구성해 운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분야별로는 보도본부, 제작본부, 라디오센터에서 각각 ‘보도편성위’, ‘TV편성위’, ‘라디오편성위’를 운영해야 하는데 각 분야별 편성위는 방송의 공정성 및 공익성 훼손 논란, 제작 자율성 침해 논란 등의 사항이 생기면 책임자 측과 실무자 측이 협의하고 이견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간 사측은 제작 자율성 침해 사태가 거듭 발생했음에도 분야별 편성위 개최마저 거부해 내부 반발이 여러 차례 나왔다. 앞서 3월 추적60분 <극단주의와 그 추종자들> 편이 급작스레 ‘편성 순연’ 통보된 일이 있었는데, 당시 KBS PD협회는 긴급 TV편성위를 열 것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편성 책임자의 고유 권한인 방송 편성권에 해당”하는 사안이라며 공방위나 편성위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KBS 추적60분 <극단주의와 그 추종자들>의 한 장면.

또 KBS 기자협회는 6월 대선 보도 종합 평가 관련 정례 보도편성위 개최를 요구했으나 이때도 사측은 “시기가 이르다”는 등의 이유를 들며 안건을 거부해 무산된 바 있다. 하지만 편성규약상 편성위의 안건은 ‘일방’의 요구에 의해서도 채택된다. 더군다나 편성규약에 명시된 ‘국장임명동의’ 역시 전임 박민 사장 체제에 이어 박장범 사장 체제에서도 사측에 의해 무력화된 지 오래다.

성명 발표 이후 실무자 측 편성위원들은 21일 개최 요구일을 명시하고 사측의 회신을 기다리는 중이다. 방송사업자와 종사자 대표가 참여하는 편성위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이 1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시행·공포됐지만, 이 역시 사측이 시간을 끌 가능성이 제기된다.

방송법 개정안엔 편성위를 구성하지 않은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는 처벌 규정이 신설됐다. 하지만, 해당 처벌 규정의 유예 기간은 6개월이고, 현재 방송통신위원회가 이진숙 위원장 ‘1인 체제’로 안건을 의결할 수 없는 상태에서 개정된 방송법엔 '종사자의 범위 및 종사자 대표의 자격요건은 방통위 규칙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이를 핑계로 사측이 계속해서 편성위 개최를 미룰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무자 측 편성위원들은 이날 성명에서 “지금까지 누적된 분야별 편성위 및 전체 편성위의 현안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전체 편성위에서 논의할 사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며 “사규를 위반하는 사장에게, 회사를 이끌 자격은 없다. 만약 계속해서 사측이 전체 편성위 개최를 거부할 경우, 우리 전체 편성위 실무자 위원들은 강력한 수단을 동원해 이에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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