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감시의 눈 날카롭게, 진실 향해 나아가자"

[한국기자협회 창립 61주년 / 박종현 한국기자협회 회장 기념사]

1964년 8월17일, 뜨거운 열기 속에서 군사정권이 밀어붙이던 ‘언론윤리위원회법’을 막아내기 위해 선배 언론인들이 한곳에 모였습니다. 그날 선배들은 펜이 칼보다 강하고, 진실의 무게가 권력보다 무겁다는 점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한국기자협회는 그 결연한 의지로 태동했습니다.


“우리는 언론자유의 수호와 조국이 요구하는 민주주의의 발전에 우리의 용기와 지혜를 집중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 자신의 인간적인 자질향상과 권익옹호를 위해서 힘을 모을 것이다.”


기자협회가 당시 채택한 창립선언문의 일부입니다. 언론인의 자질향상, 언론자유 수호, 기자의 권익옹호, 국제교류 강화 등 4대 강령이 제시됐습니다. 훗날 평화통일과 민족 동질성 회복이라는 가치를 추가해 5대 기둥을 세웠습니다. 이 기둥들은 61년 역사를 이어왔으며, 우리는 강령에 따라 세월의 바람에도 꺾이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선언문의 내용을 이행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군사정권 시절 집행부가 구속되고, 기자협회보는 두 차례 강제 폐간의 칼바람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이후에도 언론에 불어닥친 어둠과 언론인 체포의 수갑은 과거의 잿빛 사진 속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정부 시절에도 민주주의의 등불은 위태롭게 흔들렸습니다. 헌정질서를 뒤흔든 불법 비상계엄, 언론사 압수수색 등 악행이 자행됐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건전한 상식을 지닌 국민과 시민사회의 힘을 배경으로 민주주의라는 성채를 보다 튼튼히 하려는 노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방심 속에서 무너집니다. 극단적인 목소리가 강해지고, 정치 사회적 위기에서 이득을 취하려는 무리가 늘어날 때 민주주의의 강둑엔 홍수철의 토사물처럼 오염물질이 범람하게 됩니다. 기록하는 자의 손이 멈추고, 묻는 자의 눈이 감길 때 범람상태는 지속되게 됩니다.


창립 61주년을 맞은 2025년, 생각해 보면 물질과 기술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는 할지언정 자유를 대신해 주지는 못합니다. 취재 제한, 기자를 향한 폭력, 비상식적인 언론사 운영, 권력과 정치세력의 비합리적 억압 풍토는 언제든지 우리 사회를 옥죌 수 있습니다. 확증편향 기조가 판을 치면 언론의 건전한 역할마저 부정당하게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창립선언문을 생각해야 합니다. 언론자유는 법전에 갇힌 문장이 아니라, 매일의 기사에서 숨 쉬는 생명입니다.


불법 비상계엄의 파고를 함께 넘은 뒤 출범한 이재명 정부 등장 이후, 언론 관련 법과 제도의 변화가 예고된 상태입니다. 우리는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새벽 눈처럼 명징한 시선을 지녀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어려운 이웃과 시민사회에는 따뜻한 눈길을 보내야 합니다. 한국기자협회는 정치세력엔 감시의 눈을 더욱 날카롭게 세울 것이며, 진실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우리의 손은 진실을 쓰고, 우리의 기록은 민주주의 자양분이어야 합니다. 창립 61주년을 맞이한 기자협회의 발걸음은 진실과 민주주의 강화라는 100년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길에 회원 여러분이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이 순간에도 밝은 세상을 위해 발로 뛰고 계신 회원 여러분께 경의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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