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이자 역사학자였던 후석(後石) 천관우(千寬宇·1925~1991) 탄생 100주년 기념 추모식과 강연회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원로 언론인·사학자들이 마련한 행사는 80여명이 참석할 정도로 성황이었다. 참석자들은 천관우 선생을 기리고 언론인, 역사학자, 민주화 운동가로서 천 선생의 삶을 돌아봤다.
김중배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천 선생은 언론에 역사의식을 융합시킨 분”이라며 “죽음 뒤에 삶이 있는 분들, 우리 속에 살아 있는 분들 가운데 한 분으로 늘 기억한다”고 했다. 천 선생의 외동딸 천문주 여사는 “아버님을 이렇게 기억해주시는 것에 무한한 기쁨과 감사함을 느낀다. 아버님이 평생 바친 한국사 연구, 민주주의 수호 정신을 잊지 않고 이어가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장성원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전 국회의원)은 강연 <우리 시대의 언관(言官) 사관(史官) 후석 천관우 선생>에서 천 선생이 걸어온 언론계 이력을 되짚으며 “선생의 언관 사관 정신은 우리 시대뿐 아니라 후세에도 면면히 언론과 언론인의 정도를 깨우쳐주는 가르침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1971년 4월 발족한 최초의 재야운동 조직 ‘민주수호국민협의회(민수협)’ 결성에 당시 천관우 선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증언했다. 이 이사장은 “민수협의 성명들은 대부분 천 선생의 손에서 작성되었는데, YMCA 빌딩 사무실에서 거구의 문장가가 등사판 유인물로 직접 성명서를 찍어 발표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선생 댁을 민수협 본부로 내어준 적도 있었다”고 했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숙명여대 명예교수)은 천관우 선생의 실학·역사 연구에 대해 강연했다. 이 전 위원장은 “천 선생의 서울대 사학과 졸업논문 ‘반계 유형원 연구’는 실학의 역사적 위치에 대한 맥을 짚어줌으로써 뒷날 실학시대가 ‘자본주의의 맹아기’이며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을 향해 ‘내재적 발전’을 강조할 수 있는 학문적 근거를 얻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이부영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은 <후석 천관우 선생의 통일사상 ‘복합국가론’>을 주제로 강연했다.
천관우 선생은 1951년 대한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들어와 한국일보, 조선일보, 민국일보, 서울일일신문, 동아일보에서 일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조선일보·민국일보·동아일보의 편집국장을 지냈고 세 신문의 논설위원이었으며 서울일일신문과 동아일보의 주필을 지냈다.
그는 역사학자로서도 많은 저술을 남겼다. <한국사의 재발견>, <근세조선사 연구>, <인물로 본 한국 고대사>, <한국 근대사 산책>, <한국 상고사의 쟁점>, <고조선사·삼한사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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