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기자협회와 PD협회가 박장범 사장에게 ‘KBS 방송 편성규약’에 따라 편성위원회를 재구성할 것을 요구했다. 박민 전 사장에 이어 박장범 사장 체제에서도 편성위원회가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고, 심지어 노사 단체협약상 편성위원회 기능을 대신했던 ‘공정방송위원회’마저 단체협약이 효력을 잃으며 지속적인 파행 운영이 예상돼 실무자 대표로 이뤄진 위원회 재구성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KBS 기자협회와 PD협회는 22일 공동성명을 내어 “전체 편성위원회 역할을 했던 ‘공정방송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이후 반년 째 열리지 않고 있다”며 “편성규약에 따르면 편성위원회의 안건은 ‘일방’의 요구에 의해 채택되지만, TV편성위원회에서 실무자측이 원하는 ‘안건’이 여러 차례 책임자 측의 거부로 인해 채택되지 못했다. 매월 정례적으로 열리게 되어 있는 편성위원회가 전체·분야별 막론하고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현재 상황을 전했다.
두 협회는 편성위원회의 잘못된 운영은 사측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더군다나 편성규약에 명시된 ‘국장임명동의’ 역시 박민 체제 이후, 사측에 의해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따지고 바로잡아야 할 ‘전체 편성위원회’ 역시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이러한 ‘편성위원회’의 잘못된 운영이 본부(센터)별 판단이 아닌 회사 수뇌부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는 강한 의심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KBS 방송 편성규약’은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명시한 방송법 제4조 4항에 따라 2001년 제정됐다. 편성규약은 내외의 부당한 압력이나 간섭으로부터 자율성을 보호하고 취재 및 제작 실무자의 권한을 보장하기 위해 ‘편성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분야별로는 보도본부, 제작본부, 라디오센터에서 각각 ‘보도편성위원회’, ‘TV편성위원회’, ‘라디오편성위원회’를 운영해야 한다. 각 편성위원회는 방송의 공정성 및 공익성 훼손 논란, 제작 자율성 침해 논란 등의 사항이 생기면 책임자 측과 실무자 측이 협의하고 이견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간 사측은 제작 자율성 침해 사태가 거듭 발생했음에도 편성위원회 개최를 거부해 내부 반발이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지난 3월 추적60분 ‘극단주의와 그 추종자들’ 편이 급작스레 ‘편성 순연’ 통보된 일이 있었는데, 당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임시공정방송위원회 개최를 요구하고 KBS PD협회도 긴급 TV편성위원회를 열 것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편성 책임자의 고유 권한인 방송 편성권에 해당”하는 사안이라며 공방위나 편성위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두 협회는 “교섭대표노조였던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와 사측의 단협이 지난해 6월3일 실효됐고, 올해 3월11일 사측은 노조별 개별교섭을 선언하며 KBS엔 교섭대표노조도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편성규약엔 교섭대표 노동조합이 구성하는 공정방송위원회가 전체 편성위원회의 기능을 대신한다고 나와 있다.
이들은 이어 “편성규약에 따르면 ‘대표노조가 없거나 단체협약이 실효된 경우, 전체 편성위원회의 취재 및 제작 실무자 위원은 분야별 편성위원회 대표 중 1인이 호선으로 맡고, 나머지 분야별 편성위원회 대표 2인은 당연직 위원이 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며 “이 규정에 따라 KBS의 전체 편성위원회는 보도위원회 실무자대표인 기자협회장, TV편성위원회 실무자 대표인 PD협회장, 라디오편성위원회 실무자 대표인 PD협회 라디오 부회장을 위원으로 삼아 다시 구성돼야 한다”고 밝혔다.
성명을 발표한 이후 두 협회는 사측의 회신을 기다리는 중이다. 다만 현행 방송법엔 편성규약 위반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징계 요구권이 명시됐던 단협도 실효된 상황이라 사측이 이들 단체의 요구를 받아들일 지 지켜봐야 한다.
이들 협회는 성명에서 “분야별 편성위원회를 중심으로 전체 편성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은 ‘편성규약’에 따른 당연한 절차다. 이를 회사가 거부하는 것은 ‘편성규약’ 위반에 해당한다”며 “KBS의 제작자율성을 되살리고 사내 각종 공정방송장치들의 복원을 위해 함께 연대해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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