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바이든-날리면' 제소 첫 사과… 언론계 "진상 규명해야"

[조현 외교장관 21일 취임사서 사과]
현업단체들 "사과로 끝나선 안 돼"
다수 기관 동원, 조직적 탄압사례

  • 페이스북
  • 트위치

전 국민 듣기평가 논란이 벌어졌던 이른바 ‘바이든-날리면’ 사태에 대해 외교부가 공식 사과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21일 취임사를 통해 “외교부가 MBC를 제소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며 “외교부를 대표해 MBC에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2022년 9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속어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지 약 3년, ‘희대의 소송’이라 불린 정정보도 청구 소송이 제기된 지 2년7개월만에 나온 공식 사과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21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조 장관은 취임사를 통해 ‘바이든-날리면’ 보도와 관련 외교부가 MBC에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한 건 잘못이라며 정부 차원으로 첫 공식 사과의 뜻을 밝혔다. /공동취재

조 장관은 앞서 1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이 사건의 부적절성을 인정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외교부가 대통령실로부터 팔 비틀려 대리 소송에 나선 것”, “굳이 소송을 한다면 대통령실에서 하는 게 맞다”고 지적하자 모두 동의한 것이다. 조 장관은 “사실 어느 직원이 자발적으로 이런 일을 했겠나. 저는 매우 안쓰럽게 생각한다”며 “외교부 장관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면 사과를 포함한 모든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고 이 일을 매듭짓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MBC는 2022년 9월 윤석열 대통령이 유엔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난 뒤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X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발언했다고 최초 보도했다. 이 발언은 삽시간에 논란이 됐고 대통령실은 보도 13시간 만에 ‘바이든’이 아닌 ‘날리면’이라 해명하며 MBC가 오보를 했다고 반박했다. 이후부턴 정부여당 차원의 보복이 시작됐다. ‘국익 훼손’과 ‘왜곡 보도’를 두 축으로 MBC를 비판하는 발언이 쏟아졌고, MBC 사장과 취재기자에 대한 고발도 진행됐다.


대통령실 역시 가만있지 않았다. 그해 11월 동남아 순방을 이틀 앞두고 MBC 취재진에 전용기 탑승을 불허하더니 관련해 MBC 기자가 항의하자 출근길 문답마저 중단해버렸다. 12월엔 외교부가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MBC의 사실과 다른 보도로 우리 외교에 대한 국내외 신뢰에 부정적 영향이 있었다”는 이유였다.

이 소송은 시작부터 논란이 됐다. 비속어 발언의 당사자는 윤 대통령인데, 정작 보도에선 언급도 없는 외교부가 정정보도를 청구할 수 있는지 ‘당사자 적격성’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여 만인 지난해 1월 1심은 외교부의 청구 자격을 인정하며 “이 사건 보도는 허위라고 봄이 타당”하고 “MBC가 정정보도를 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바이든’과 ‘날리면’을 두고 음성 감정인조차 판독 불가 결정을 내렸는데도 허위라고 단정한 것이다.

MBC는 정정보도 선고가 나오자 즉각 항소했다. 항소심은 지난해 7월 시작됐는데, 재판부가 대통령실 홍보수석을 지낸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 진술의 신빙성을 낮게 평가하며 1심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이 생겼다. 김 의원은 진술서에서 논란이 있던 당일 윤 대통령이 자신의 발언이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얘기하며 ‘미국 의회’와 ‘한국 국회’를 구분해 말하는 평소 습관을 설명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열린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 특검법 관련 질문을 받고 미국의 특별검사 제도와 비교하며 ‘미국 의회’가 아닌 “미국 국회”를 반복해 언급했다.


2심 재판부는 일단 이 사건을 조정에 부치기로 했다. 외교부가 MBC에 공식 사과하며 22일 열린 2차 조정기일에서 조정 및 소 취하 가능성도 점쳐졌지만 일단 이날은 결론이 나지 않았다. MBC 관계자는 “2심이 조정으로 정리된다 치더라도 1심 결과는 남아 있고, 향후 정권이 바뀐 후에 1심 패소를 문제 삼을 수도 있기 때문에 외교부가 사과했다고 해서 바로 합의하고 넘어갈 사안은 아닌 것 같다”며 “조정 문안이 오면 면밀히 검토해 판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바이든-날리면’ 사태는 단순한 정정보도 소송을 넘어 여러 정부기관이 동원된 언론 탄압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국세청 세무조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등을 통해 MBC를 끈질기게 괴롭혔고, 특히 방심위는 해당 보도와 관련해 과징금 3000만원이라는 최고 수위의 법정제재를 의결했다. 정부는 또 감사원과 방송통신위원회를 동원,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을 해임하며 사장 교체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MBC는 “당시 대통령의 발언과 대통령실 관계자의 해명 과정, 그리고 이후 조치에 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기자협회 등 8개 언론현업단체들도 22일 공동 성명을 내고 국정기획위원회 등 관계 당국을 향해 “‘바이든-날리면’ 사안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이들은 “단지 외교부 장관의 사과 한 마디로 이 사안이 마무리되어선 안 된다”며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정권 차원의 기획과 집행 여부를 명백히 밝혀내고,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아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