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불공정거래' 정조준, 기자·언론사 직원도 못 피한다
[이슈 분석] 기자 '주식 선행매매' 파장
현직 기자 포함 20여명 수사 받아
진상조사 요구에도 실효성 회의적
언론윤리강령 구체화·명확화 시급
7월4일, 전·현직 기자 20여명이 금융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와 언론계에 충격을 줬다. 이날 KBS ‘뉴스9’는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기업 내부 정보로 주식을 사들이고 호재성 기사를 쓴 뒤 주가가 상승하면 파는 방식으로 수익을 챙긴 전·현직 기자들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앞서 3월 모 경제신문 기자가 비슷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사실이 알려졌을 때만 해도 일부 기자의 ‘일탈’로 여기는 시선이 있었으나, 이번엔 현직 기자까지 포함해 무더기 적발이 이뤄지면서 사안의 심각성도 커지는 분위기다.
KBS 보도에 따르면 이번 수사 대상엔 일간지, 경제지, 인터넷 언론사 등 여러 회사가 포함됐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혐의가 뚜렷한 일부 기자와 해당 언론사 등을 압수수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KBS 등 언론 보도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 의결정보 등을 종합하면 해당 기자들은 자신이 매수한 종목에 대해 호재성 기사를 직접 작성·보도한 뒤 주가가 상승하면 높은 가격에 매도하는 방식으로 부정거래 행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자본시장법 제178조에서 금지하는 ‘부정한 수단, 계획 또는 기교를 사용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일부 기자들은 공모 흔적도 포착됐으며, 심지어 배우자까지 동원된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금 입·출금 분석, 인적 연계성 등을 통해 공범 관계를 입증했다고 설명했다.
4일 KBS 첫 보도 이후 금융당국이 기자들 선행매매가 의심되는 ‘특징주’ 100여개를 추려 들여다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수사 대상이 확대될 수 있다는 후속 보도가 나왔다. 그뿐 아니다. 이번 사안을 연속 보도한 송수진 KBS 기자는 “금감원뿐만 아니라 금융위원회도 나서서 기자와 언론사 구성원에 의한 불공정행위를 살펴보고 있다”며 “금융당국이 합동으로 이번엔 제대로 들여다볼 거라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자본시장의 불공정 거래를 뿌리 뽑지 않고선 ‘코스피 5000’ 시대로 갈 수 없다는 사회 분위기와도 맥이 닿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융위는 SBS 모 직원이 넷플릭스와의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이라는 미공개 내부 정보를 활용해 주식거래에서 차익을 얻은 것으로 보고 15일 SBS를 압수수색했다. SBS는 지난해 12월20일 파트너십 체결 사실을 공식 발표했고 코스피 상장사인 SBS 주가는 거래일 이틀 연속 상한가를 쳤다. 해당 직원은 당시 거래로 9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은 정황이 포착됐다. 압수수색이 이뤄진 당일 SBS는 해당 직원을 면직 처리했다. 금융위 직원들이 영장을 들고 들이닥치자, 직원이 곧바로 사직서를 냈고 회사가 즉각 수리했다고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는 당시 상황을 전했다. SBS본부는 17일 성명과 22일 노보를 통해 ‘꼬리 자르기’ 면직이라 거듭 비판하며 “무너진 윤리의식 제고를 위한 육참골단의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이들은 “금융당국 등 수사기관에서 먼저 SBS 직원의 추가적인 불법 주식거래 의혹을 찾아낸다면 끝장이란 생각으로 자체 진상조사에 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선행매매 건으로 고발된 기자들이 속했던 언론사 안팎에서도 진상조사 요구 목소리가 일부 나오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수사 대상 기자들이 대부분 이미 퇴사한 뒤라 회사로선 조사를 강제할 방법이 없기도 하다. 이에 검찰 수사를 지켜보면서 기자들을 상대로 특별교육을 하는 식으로 나름의 재발 방지책을 찾는 곳도 있다.
송수진 기자는 현재로선 윤리강령을 구체화·명확화 하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송 기자는 “지금처럼 ‘취재 중 알게 된 정보를 사적 이익 추구에 사용하지 않는다’ 수준이 아니라, ‘취재 과정 중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해 금융상품 매매를 하지 않는다’ 혹은 ‘취재 과정을 통해 알게 된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금융상품 투자를 하지 않는다’ 수준으로 구체성과 명확성을 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는 ‘편집행동 강령’에서 “법적으로 금지되지 않는 경우에도, FT 직원과 프리랜서 기고자는 일반 공개에 앞서 입수한 금융 정보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송 기자는 “이번 기회에 기자협회 윤리강령이 이 정도 수준으로 올라와야 할 것 같다”면서 “무엇보다, 기자가 우리 스스로를 전문가 집단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율적으로 이런 기준들을 지켜나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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