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칸이 사랑했던 거장 켄 로치 감독의 ‘지미스 홀’과 벤 킹슬리의 연기가 돋보였던 ‘줄스’. 1930년대 잉글랜드의 실존 인물 지미 그랄튼을 다룬 지미스 홀은 마을 주민과 함께 자유롭게 춤추고 노래하고 예술과 교육, 정치적 의견을 나누고자 꿈꾸었던 지미가 보수적인 교회와 지주 세력의 탄압에 부딪혀 끝내 추방당하는 과정을 담백하게 보여준다. 줄스는 주연배우에 끌려 우연히 본 영화인데, 개인적으로는 세상에서 상처받아 완고해진 노년의 연기를 그만큼 훌륭하게 소화하는 연기자가 없다고 생각한다. 컴퓨터그래픽을 최초로 영화에 도입한 인물 조르주 멜리에스를 모티브로 삼은 영화 ‘휴고’에서도 그렇고, 가족과 인간관계에서 서툴렀던 주인공이 우연히 만난 외계인과 벌이는 해프닝을 다룬 줄스에서의 연기도 마찬가지다. 두 영화는 이처럼 메시지는 물론 장르나 시대적 연관성도 크지 않은 영화였지만 모두 타운홀 미팅 관련 소재가 중요하게 다뤄져서인지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타운홀 미팅 이후 연달아 생각이 났다.
형식도 전개도 신선했던 타운홀 미팅은 6월 말 광주에서 처음으로 개최됐다. 행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튜브로 생중계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처리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봐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시간이 조금 흘렀는데, 그사이에 마치 원본을 본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됐다. 거의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관련 뉴스와 동영상 클립이 당시 타운홀 미팅의 분위기와 쟁점을 충분히 전달해 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광주에서의 타운홀 미팅은 현안을 꿰뚫고 일 잘하는 대통령의 자신감 넘치는 아우라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취임 한 달을 기념해 열린 첫 기자회견의 성공을 예견하듯 광주의 타운홀 미팅도 디테일을 잘 아는 대통령이 시종일관 논의를 주도했다.
일 잘하는 유능한 대통령을 확인하는 작업은 행복한 일이다. 국민주권시대, 대한‘국민’을 강조하는 이재명 정부가 국민과 투명하게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데다 참여를 끌어내는 데 유리한 것으로 평가되는 타운홀 미팅을 대국민 소통의 주요 방식으로 채택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일 것이다.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17세기 뉴잉글랜드 지역의 타운미팅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진 타운홀 미팅은 1977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대화형 집회를 개최한 뒤 ‘타운홀 미팅’이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알려진다. 이후 닉슨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 등을 거치며 대중적인 소통방식으로 정착해 미국 대선 캠페인의 주요 이벤트로 자리를 잡게 된다. 우리나라에선 정치 영역보다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에서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는 소통방식으로 활용돼 왔는데 온라인 소통이 활발해진 이후 지리적·시간적 한계를 극복해 구성원의 참여기회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투명성과 참여기회의 확대를 강조했던 이재명 대통령이 타운홀 미팅에 주목한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문제는 타운홀 미팅의 후일담이 계속되면서 이상한 부작용(Side effect)이 지역 내에서 확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호남의 마음을 듣는다’를 주제로 열린 광주 타운홀 미팅에선 군공항 이전 등 지역의 오랜 미해결 현안이 주요하게 다뤄졌는데 오랜 행정 경험으로 현안의 집행 과정을 꿰뚫고 있는 대통령의 날카로운 질문에 지자체장이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면서 엉뚱하게 광주와 전남이 ‘미래 전략이 없는 곳’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과 맞물리면서 지자체장에 대한 예비 면접을 본 셈이라는 미확인 ‘썰’(?)까지 가세해 지역 정가가 몸살을 앓기도 했다.
이상한 것은 지자체장에 대한 부정적 후일담을 먼저 듣고 타운홀 미팅의 풀 버전을 나중에 시청한 내가 보기에는 유튜브 댓글이나 세간의 평처럼 지자체장이 현안마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무능력자로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복잡하게 얽힌 현안의 특성상 모든 사안을 다 공개할 수 없다는 정황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그래서 토론을 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낳게 했던 지난 대선후보 TV 토론 이후의 생각과 유사한 고민이 들었다. 당시 논란이 됐던 3차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준석 후보가 토론을 가장 잘했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세 차례 토론을 모두 시청한 나는 말싸움에서 기세에 밀리지 않는 것, 치고 빠지는 솜씨가 뛰어난 기술이 곧 토론을 잘하는 것인지 무척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의미에서 타운홀 미팅의 평가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분석하고 싶은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타운홀 미팅이 이해당사자들의 질적인 참여와 숙의로 이어질 때 진정한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그것만이 형식만 앙상하게 남아있던 영화 줄스의 타운홀 미팅과도 다르고, 참여자들의 갈등만 증폭시켰던 오바마 대통령의 타운홀 미팅과도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한선 호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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