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배터시서 본 韓 미래… 이재명 정부, 기후 갈등 시험대에

[이슈 인사이드 | 환경] 황덕현 뉴스1 기후환경전문기자

황덕현 뉴스1 기후환경전문기자.

영국 런던 템스강 남쪽, 택시 ‘블랙 캡’ 창문 너머로 거대한 붉은 벽돌 건물이 시야를 사로잡는다. 대조되는 네 개의 하얀 굴뚝이 하늘을 찌르듯 솟아 있고, 벽면엔 수십 년 묵은 산업혁명 흔적이 남아있다.


배터시 발전소, 한때는 흉물처럼 방치됐던 석탄화력 발전소였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내부에는 스타벅스와 현대차 제네시스 쇼룸이, 옥상 굴뚝엔 ‘리프트109’라는 이름의 전망대가 들어섰다. 하루 수천명이 몰리는 런던의 명소이자, 에너지 전환이 남긴 도시재생의 상징이다.


배터시는 1930년대 런던의 절반 넘는 지역에 전력을 공급했던 발전소였다. 그러나 1983년 폐쇄 이후 30년 넘게 방치됐다. 몇 차례 개발 시도는 보존단체와 주민 반발, 자금 부족 등으로 무산됐다.


런던시와 와즈워스 구청은 주민 의견 등을 수렴해 철거 대신 ‘기억을 품은 보존’을 택했다. 말레이시아계 자본을 받아들여 약 14조원 규모의 복합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외관은 그대로 두고 내부를 상업·문화·주거 공간으로 탈바꿈한 이곳은 지금 테이트 모던과 함께 런던을 대표하는 전환 사례로 꼽힌다.


한국은 같은 질문 앞에 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열병합 화력발전소는 시설 현대화를 넘어 1기 추가 건설 계획까지 포함되며 지역사회의 수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LNG 열원을 내세운 정부 방침에 대해 주민들은 “탄소중립 시대에 왜 여전히, 또 마포 뒷마당에서만 연료를 태우냐”는 반응이다. 화석연료 기반 시설을 유지·증설하려는 흐름에 ‘지방 수용성’이라는 사회적 합의 구조가 빈약하다.


비슷한 논란은 폐기물 처리시설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마포구 자원회수시설에 대해 정작 마포의 동의 없이 인근 자치구와 공동이용 협약을 강행했다. 이 시설은 난지도 매립지, 당인리 화력발전소, 수소발전소 등과 함께 마포에 집중된 대표적 기피 시설이다. 환경 부담이 편중된 지역에 대한 반복적인 일방 행정은 피로를 넘어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민주권’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 이재명 정부의 묘수가 필요한 때다. 민주당 정부는 앞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0%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발전 부문은 여전히 한국 전체 배출량의 35%를 차지한다. 문제는 ‘수치’가 아니라 ‘구조’다. 수용성 없는 재생 확대, 주민이 배제된 정책 추진, 과거 방식의 반복은 감축을 이행 불가능한 선언으로 만들 수 있다.


국제적으로는 이미 탄소세 논의가 본격화됐고, EU는 탄소국경조정제도를 통해 수출국의 감축 책임을 현실화하고 있다. RE100 등 기업 주도의 재생에너지 수요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나, 국내 기업들은 정작 재생에너지 전력 구매 비용과 접근성 문제로 참여에 어려움을 겪는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공급 자체만이 아니라, 지역, 산업, 소비자 모두가 수용 가능한 시장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유럽 국가들은 전환 과정에서 지역 주민을 주체로 참여시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이란 갈등으로 에너지 안보가 다시 부상하고는 있지만 풍력발전 지분 공유와 전기요금 감면, 커뮤니티 발전소 설계 등 다양한 방식을 활용했다. 배터시의 전환도 단순한 재개발이 아니었다. 수십 년간의 무산과 조율, 참여 끝에 얻어낸 재생이었다.


이재명 정부는 탄소중립이라는 ‘돌아갈 수 없는 길’을 이끌고, 또 설득해야 한다. 선언이 아닌 설계로 증명해야 한다. 흉물이 상징이 되기까지 설득의 시간이 필요하다. 배터시나 마포에서 시작된 질문은 단지 특정 지역의 민원에 그치지 않는다. 그 질문은 지금 한국 사회가 감당해야 할 전환의 진정성과 방향성을 묻고 있다. 이제는 단지 ‘줄이자’가 아니라, 누구와 어떻게 함께 바꿀 것인가를 묻고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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