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서 취재하다간… 감옥 간다?

형집행법 개정, 위반시 징역·벌금
비녹음 취재도 근거없이 전면제한

  • 페이스북
  • 트위치

“취재목적 접견금지. 위반시 징역 1년 이하 또는 벌금 1000만원 이하”


3월 세계일보 기자들은 서울남부구치소에서 이런 팻말을 보고 돌아 나와야 했다. 구속된 서부지법 폭도 30대 남성과 인터뷰가 약속돼 있었다. 결국 인터뷰는 변호인이 질문지를 전달받아 ‘원격으로’ 진행했다. 교정시설이 변호인 접견은 거부할 수 없지만 이때도 변호사 자격이 없는 언론인은 동행할 수 없다.

이들 기자가 본 팻말의 근거 법령은 형집행법이다. 2019년 개정된 형집행법은 “소장의 허가 없이 교정시설 내부를 녹화·촬영한 사람”을 처벌한다고 규정돼 있다. 특정 장소에서의 촬영 자체가 곧장 범죄가 되는 몇 안 되는 법규다. 군사기지법에는 없는 미수범 처벌 규정까지 있다. ‘국가중요시설’인 교도소에 카메라를 숨겨 들어가기만 해도 처벌하겠다는 뜻이다.


이 법 조항을 새로 만든 건 정부가 언론인들을 처벌하기 위해서였다. 2015년과 이듬해 법무부는 몰래카메라를 사용해 수용자를 인터뷰한 SBS와 MBC PD 등 10명을 무더기로 고발했다. 건조물침입과 공무집행방해 혐의였지만 대법원에서 무죄가 잇따라 확정됐다. 담을 넘는 등 ‘침입’한 건 아니고 교도관들을 속였을지라도 일을 못 하게 방해한 것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입법은 언론계가 모르는 사이 이뤄졌다. 2018년 2월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은 국회에 나와 “법률안은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성안했다”고 보고했지만 언론계 의견수렴은 없었다.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실은 수용자를 취재한 보도가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어 입법이 타당하다고 보고했다. 의원들은 촬영과 녹화의 뜻이 구분되는지만 물은 뒤 찬반 토론 없이 검토를 마쳤다.


문제는 일선 교정시설에서는 이 법을 근거로 촬영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취재까지 금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자협회보가 유권해석을 요청한 결과 법무부는 접견실에서 모든 취재를 막는 법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접견 중 기자가 수첩에 취재 내용을 적는 모습을 본 교도관이 접견을 중지시키는 등 취재 금지가 마땅한 법적 근거 없이 이뤄지고 있다.


규정에는 교도소장이 허가하면 촬영이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홍보용 보도가 아니라면 허가가 이뤄지지도 않는다. 서울지역 한 구치소 관계자는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미결수용자는 취재 대상이 아니”라며 3심 판결 전까지는 취재 신청을 일률적으로 불허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소자에게는 법정 밖에서의 장외변론도 중요한 방어권 행사라는 하급심 판례도 있다.


2017년 검찰이 SBS <그것이 알고싶다> PD들에게 징역을 구형하자 전국언론노동조합은 당시 “언론은 알권리와 취재의 자유에 근거해 교정시설을 방문하고 취재할 권리가 있으며 시설안전이나 질서를 해칠 우려가 없는 한 이를 보장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12·3 비상계엄 직후에는 내란 주동자들이 구속된 탓에 이들에 대한 직접 취재가 막힌 언론은 수사기관의 발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SBS PD들을 변호했던 송봉주 변호사는 “입법 목적이 시설 안보라고 하지만 접견실은 제한적인 공간인 데다 취재는 상대의 얘기를 들으려는 것이지 방송에서 시설을 노출하는 것도 아니”라며 “법무부에서는 수용자가 언론 접촉 뒤 심리적 동요로 내부에서 사고를 일으킬까 봐 관리하려는 데 방점을 둔 듯하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또 “취재를 일률적, 기계적으로 거부하는 건 행정 편의주의적이고 언론의 자유와 비례성이 맞지 않다”며 “취재를 허용할 수 있는 하위 규정을 만들든지 합리적인 취재 관행을 위해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취재가 막혔던 세계일보 취재팀은 ‘당신도 음모론에 빠질 수 있다’ 기획으로 5월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장한서 세계일보 기자는 “서신 왕래로는 질문 취지가 제대로 전달되기 어려운데 상대를 직접 만나 심정을 듣고 분위기와 표정을 살피는 것도 중요한 취재”라며 “재판에 영향을 준다지만 휘둘리지 않고 판결하는 것은 재판장의 일”이라고 말했다.

박성동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