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방송통신위원장의 독립성

[언론 다시보기]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전체주의의 기원>(1951)에서 한나 아렌트는, 극단화된 사람들의 특징으로 이데올로기적 사고체계를 꼽는다. 특정 이데올로기에 빠져들수록 다른 발상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이 믿는 바를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강요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데올로기에 빠져든 사람들은 이 세계를 적과의 대립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이 대립은 생사를 건 전쟁이기에 갈등 상황에서 결코 물러서선 안 되며 반드시 승리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이런 이유로 공적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고 자신이 목적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요즘 이런 이데올로기적 발상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으며 주목받는 인물이 있다. 임명 전부터 극우로 비판받던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다. 알려진 사실을 돌려 말하진 말자. 이진숙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가 방송장악을 위해 임명한 인물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아래에서 시도했던 MBC 민영화 밀실 추진과 MBC 노동조합에 대한 불법적인 사찰과 적대적인 탄압 이력은 왜 윤 정부가 이 위원장을 선택했는지 잘 보여준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대통령 직속 중앙행정기관이지만, 방송의 특성상 그 독립성을 보장받는다. 더하여 위원회 결정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주요 안건을 위원장 1인을 비롯해 상임위원 4인이 합의하여 결정하는 합의제 기구다. 통상 이런 기구에서 정당한 결정은 총위원 절반 이상의 참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지난해 7월31일 취임 당일 ‘2인 체제’로 회의를 열어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6명(총원 9인)을 임명하고, KBS 이사 7인(총원 11인) 추천안을 의결했다. 야권 추천 몫 이사들은 아예 추천도, 임명도 하지 않았다. 방송장악에 필요한 다수 체제를 임명 당일 두 시간 남짓한 회의에서 83명의 지원서를 순식간에 검토(?)하며 만들어 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후보자들에 대한 검증이나 논의, 면접은 전혀 없었다.


이처럼 윤 정부가 시도한 방송장악의 선두에 섰던 이 이 위원장이 정권이 바뀌자 방통위의 독립성을 내세워 자신의 임기 보장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그 임기 보장 방식이 기이하다. 대통령과 방통위원장의 임기를 맞춰달라는 것이다. 윤 정부 시절의 임기는 덤인 셈이다.


여기에다 방통위의 독립성을 위해 1인 체제인 ‘독임제’가 더 낫다는 언급을 대통령에게 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이재명 정부에서 새로 임기를 받아 자기 혼자서 마음대로 하는 게 방통위의 독립성이라는 말이다.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도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이 말이 더 말 같지 않은 이유는 대통령 직속 중앙행정기관에서 독임제 기구의 ‘장’은 대통령이 의지에 따라 언제든 교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버티는 와중에 이 위원장은 또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 6월27일 방통위가 업무용 PC 130여대를 절차를 어기고 폐기하려다 적발됐다. 제대로 작동하는 모든 국가와 그 기관은 자체 활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체계적으로 보관하며, 즉시 혹은 정기적으로 공개한다. 그 기록은 짧게 보면 특정 정부의 활동에 대한 평가, 길게 보면 한 국가의 공식적인 활동의 기록으로서 공인된 역사의 토대가 된다. 이런 이유로 국가기관의 모든 장비는 법적 절차에 따라 폐기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를 모를 리 없는 방통위가 절차를 무시하고 폐기에 나섰다. 폐기 업체와 계약서도 쓰지 않고, 대금도 지급하지 않은 상태였다. 관계자들이 윤 정부 시절의 업무 기록을 없애려는 시도로 의심하는 이유다.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이 위원장은 2023년 6월 한국자유총연맹이 개최한 토론회에서 “MBC를 국민에게 돌려주려면 중도적·중립적 인물이 사장으로 오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이들에게 중립적 세계란 없음을 잘 보여준다. 특히 이 위원장 같은 극우의 세계에선 자신들을 제외하곤 모두가 왼쪽일 뿐이다. 이들에게 독립성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의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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