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이 브리핑룸에서 질문하는 기자를 비추는 카메라를 도입한 가운데 ‘좌표찍기’ 우려와 함께 좋은 질문을 하면 신뢰를 회복할 기회가 될 거란 기대가 나온다. 하지만 대통령실의 공보 체계부터 질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형식적 수준에 불과한 브리핑 제도라면 애초 좋은 질문이 나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24일부터 KTV로 브리핑 생중계를 전격 시작했다. 기자들에게는 예고되지 않았다. 그동안 시민들은 기자들 얼굴을 빨리 공개하라며 아우성 치는 반응이었다. 불편한 질문으로 정권의 심기를 건드리는 기자는 공격하겠다는 의도도 있고, 결론에 맞춰 답을 유도하는 질문이나 근거 없이 의혹만 옮기는 질문을 골라내겠다며 좋은 질문을 하라는 요구도 섞여 있다.
취재 결과물인 기사뿐만 아니라 그 과정인 질문 노출은 저널리즘 관점에서도 적절하다. 박성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2017년 논문에서 BBC는 질문 내용과 답변을 함께 담은 보도의 비중이 높다는 점에 주목했다. 언론은 정치와 시민의 쌍방향 소통인 만큼 이의를 제기하는 기자의 질문은 단순한 ‘공방 중계’를 넘어설 수 있어 오히려 치우치지 않는 장치가 된다는 것이다.
대통령 한마디하면 기자 움츠러드는 문화 바꿔야… “도전적 질문 허용을”
질문 수준을 높이려면 대통령실부터 나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언론의 질문이 어떠해야 하는지 규범을 수년 동안 연구해 온 김사승 숭실대 교수는 대통령과 저널리즘 사이 대화는 당연히 공개돼야 한다면서도 “질문은 기자가 놓인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어떤 질문인지보다 어떤 브리핑인지, 주도권은 어디에 있는지 먼저 논의하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갈등의 최전선인 대통령과 언론의 대화는 최고의 질문이 필요한데 절대적으로 공격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말할 수 있는 ‘판 깔아주기’, ‘홍보용 질문’에 그치지 않으려면 기자의 역량과 별개로 도전적 질문이 허용돼야 한다. 그는 “대통령이 한마디 하면 기자가 기죽는 문화에서 카메라만 도입하면 부작용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기자회견과 대변인 브리핑 때 질문은 ‘1인 1질문’으로 사실상 제한돼 있다. 후속 질문으로 문답 과정을 깊이 있게 만들기 불가능한 구조다. 제공 정보가 풍부해야 심화 질문도 가능하겠지만 브리핑은 대통령의 동정이나 소회를 2분 동안 발표하는 정도다. 어느 정권이든 매일 열겠다던 브리핑이 정권 후반에 가면 손에 꼽게 줄고 이마저 서면으로 대체되는 일도 흔하다.
대통령실을 출입했던 한 기자는 “지난 정부 때 브리핑은 부대변인이 주로 했고 강인선 대변인은 브리핑룸에 잘 내려오지도 않았다”며 “어쩌다 질문을 받아도 2~3개로 제한했고 민감한 질문에는 ‘모르겠다’며 답을 피했다. 기자들의 전화번호도 잘 저장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브리핑은 부실한데 정작 수석들도 사적 인연이 없으면 기자들의 전화는 받지 않는 게 보통이다.
이재명 정부 대통령실을 출입하는 다른 기자는 브리핑 때 발표가 끝나면 영상기자가 퇴장한 상태에서 비실명 질의응답으로 ‘빽블’(백브리핑)이 진행되고 민감한 질문은 브리핑이 끝난 뒤 질문하는 ‘빽빽블’로 밀린다고 설명했다. 이미 경직된 분위기 탓에 자유롭게 질문하기 어려운데 비판적인 질문은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이날 첫 공개 브리핑에서도 나타났다. 이스라엘-이란 전쟁에 관해 국무회의 때 발언이 나왔는지 질문에 강유정 대변인은 “외교, 안보 관련 내용은 중계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답을 드리겠다”고 답했다. 브리핑을 마친 뒤에는 ‘다른 방식’이 뭔지 설명 없이 떠났다. 질의응답은 12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한 번 질문한 기자는 그만해 달라며 기회를 막기도 했다.
백악관과 청와대의 브리핑 제도를 비교 연구한 문영은 애리조나주립대 크롱카이트 저널리즘스쿨 연구원은 2022년 논문에서 “악조건을 갖추고 기자들에게 왜 미국 기자들처럼 질문하지 않느냐고 타박한다면 공허하다”며 “품격 있는 정치 저널리즘이 언론사나 기자들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백악관은 거의 매일 브리핑을 열고 매번 한 시간 안팎의 질의응답을 한다. 대변인은 의사결정의 과정과 배경을 상세히 설명하고 기자들은 낱낱이 묻고 따진다. 전문가나 담당 실무자도 브리핑에 자주 동석한다. 문 연구원은 한국 대통령실이 특정 분야 정책을 설명하겠다면 해당 분야 취재기자도 1일 출입권을 발급해 주고 브리핑에서 질문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문 연구원은 홍보실 행정관들이 국방, 경제 등 분야별로 담당을 나눠 정책을 숙지하고 취재에 응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기자들은 기자실 외에는 업무공간 출입이 금지돼있고 행정관 사무실 전화번호조차 공개되지 않은 게 현실이다. 문 연구원은 브리핑과 공보 체계가 약화하면 이른바 ‘핵관’을 통해 대통령의 의중을 짐작하는 취재만 남는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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