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심한 사회에서 '실용'이 가지는 의미

[언론 다시보기]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이재명 정부의 초반 인사에 대해 언론과 정치 평론가들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허니문 기간 때문만은 아니다. 불법 계엄과 전임 대통령의 파면으로 망가진 국가를 빠르게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 통합적 인물보다는 대통령과 손발이 맞는 친명 그룹 혹은 국회의원 중심의 인사가 필요하다는 분위기다. 최초의 70년대생 대통령비서실장의 탄생이 주목받거나 대통령에 쓴소리할 정무수석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외교 관련 동맹파와 자주파를 동시에 중용하는 인사도 마찬가지다. 이런 이재명 정부 초반 인사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실용’이다. 일이 되게끔 하는 게 최우선이라는 거다.

이재명 정부 5년의 국정 운영 청사진을 제시할 국정기획위원회(위원장 이한주)가 16일 현판식을 시작으로 첫발을 뗐다. 국정기획위는 이재명 대통령 공약 등을 구체화할 예정인 가운데 정부 조직 개편과 관련해 별도의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할 예정이다. 사진은 국정기획위원회가 출범한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뉴시스

“먹사니즘이 유일한 이데올로기”라던 이재명 대통령과 양안 관계에 대해 “셰셰”라던 이재명 대통령 그리고 마지막 선거유세에서 “트럼프 가랑이 밑도 길 수 있다”라던 이재명 대통령이 말하는 지점도 같다. 실용. ‘실질적인 쓰임새를 따른다’라는 점에서 노선 자체를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차별이 심한 사회에서는 문제가 된다. 한국 사회의 이야기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기획위원회가 16일 출범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참모로 불리는 이한주 민주연구원장이 위원장직을 맡았다. 국정기획위원회는 어떤 조직인가. 이재명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를 정리하고 과제별로 정책을 추진하는 시점과 목표 등을 정해 ‘국정과제 5년 계획’을 마련하게 된다. 언론에선 ‘이재명 정부 5년의 밑그림을 그리는’, ‘이재명 정부의 향후 5년간 국정운영의 뼈대를 세우는’ 등의 수식을 붙인다. 한국 사회의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조직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국정기획위원 55명의 명단이 공개되면서부터 논란이 벌어졌다. 여성의 비중이 12명으로 21.8%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논란은 국정기획위원회 현판식 사진에서 두드러졌다. 무채색의 옷을 입은 중년 남성들이 100% 차지한 사진은 참으로 오랜만에 본다는 평가들이 나왔다.


이재명 정부는 억울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당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또한 34명의 위원 중 여성은 6명(17.6%)에 그쳤다. 윤석열 정부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 ‘특정 성별의 60% 초과를 금지’한 양성평등기본법 제21조(정책결정과정 참여)에 저촉된다는 비판이 그때도 제기됐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과거’의 일이라는 거다. 그사이 많은 성평등 관련 지표들이 발표됐다. 4월 여성가족부는 2023년 국가성평등지수를 65.4점이라고 밝혔다. 조사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후퇴한 점수였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의 ‘2025 성별 격차 지수 보고서’에서 한국은 148개 국가 중 101위를 기록했다. 주목할 부분은 한국의 성별 격차가 벌어진 건 국회의원이나 장관직 성별 비율 등 ‘정치적 권한 부여’ 부문에서 기인했다는 점이다.


실용만 따지다 보면 거꾸로 ‘일이 못 되게끔’ 만들기도 한다. “차별금지법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 “자칫 성장기의 어린이·청소년에 그릇된 인식을 줄 수 있다.” 누구의 말일까?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의 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명한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식과 유사하다. 김 후보자 또한 개인의 성적지향을 “분위기에 휩쓸려 택할 수 있는” 것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드러냈고 “(동성애를 비판하는) 종교적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궁금하다. 이재명 정부에서 퀴어축제에 불참을 선언한 안창호 위원장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을까.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여성 실종’이라고 비판받았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정책 자문단인 ‘성장과 통합’ 또한 주요 보직자 65명 중 여성은 5명에 불과해 여성 전문가가 극소수라고 지적받은 바 있다. 이재명 정부 초반 인사에서 여성이 배제되고 있는 건 그 연장선상에서 봐야 할 문제다.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우는지가 왜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상태에서 국정기획위가 그릴 한국 사회의 밑그림이 걱정되는 이유다. 이럴 때마다 나오는 변명도 있다. “의도하진 않았다.” 한국 사회가 불평등한 차별적인 사회라고 생각한다면, 제발 ‘의도’를 가져달라. 차별이 심한 사회에서 ‘실용’적이라는 건 소수자에 대한 배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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