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스트를 '구독'하는 시대

[언론 다시보기] 임석봉 다이렉트미디어랩 대표

임석봉 다이렉트미디어랩 대표.

미국 서브스택을 이용하는 구독자가 3000만명을 넘어서면서 저널리즘의 지형도 바뀌고 있다. 언론사라는 조직의 틀을 벗어나 저널리스트 개인이 뉴스레터와 구독 플랫폼을 통해 독자와 직접 연결되는 현상이 ‘서브스택(Substack)’과 ‘고스트(Ghost)’ 같은 플랫폼을 중심으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가속화되면서, 독자들은 이제 언론 브랜드가 아닌 ‘신뢰하는 저널리스트’를 구독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지난 수년간 주요 언론사에 대한 신뢰는 세계 곳곳에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퓨리서치(Pew Research)의 올해 조사에 따르면 “뉴스를 신뢰한다”고 답한 미국인은 전체의 32%에 불과했다. 이 같은 불신은 정치적 편향, 플랫폼 알고리즘 변화, 광고 중심 수익모델의 한계 등 복합적 요인에 기인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독자들은 뉴스를 조직 브랜드가 아닌 저널리스트 브랜드를 통해 소비하기 시작했다.


이 흐름의 중심에는 뉴스레터가 있다. 뉴스레터는 SNS처럼 특정 알고리즘에 휘둘리지 않고, 언론사처럼 편집권의 제한을 받지도 않는다. 독자들은 이메일로 정기적으로 전달되는 뉴스레터를 통해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저널리스트의 의견과 분석을 ‘구독’하게 된다. 특히 미국의 뉴스레터 플랫폼인 서브스택은 이 흐름을 상징적으로 대표하고 있다.

서브스택은 올해 기준 약 30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다. 그중 유료 구독자는 10% 수준인 3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전직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기자를 비롯해 정치 분석가, 기술 전문가, 금융 칼럼니스트 등이 이 플랫폼을 통해 독립 저널리스트로서 활동하고 있다. ‘Platformer’의 케이시 뉴튼(Casey Newton), ‘Not Boring’의 패키 맥코믹(Packy McCormick) 같은 대표 저널리스트들은 수만 명의 유료 구독자를 확보해 연간 수억 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들은 단순한 글쓰기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뉴스레터 외에도 유료 구독자 대상의 줌(Zoom) 세미나, 팟캐스트, PDF 리포트, 인터랙티브 Q&A 등을 결합한 ‘멀티채널 저널리즘’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최근에는 고스트(Ghost)와 같은 오픈소스 플랫폼을 활용해 자신의 도메인과 회원제를 구축하는 독립 저널리스트들도 증가하고 있다.


뉴스레터를 통한 활발한 저널리스트의 활동은 언론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확대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특정 저널리스트가 기술, 국제정치, 환경, 의료 등 한 분야에 특화된 고급 정보를 꾸준히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언론사 조직 구조에서 비인기 분야로 소외되었던 영역이나, 지역 기반 창작자들이 기성 미디어를 거치지 않고도 독자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는 점에서 ‘저널리즘의 민주화(대중화)’라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편향성과 검증 문제는 여전히 큰 과제로 남는다. 언론사와 달리 독립 저널리스트들은 팩트체킹 시스템이나 데스킹 구조가 없는 경우가 많아, 정보 오류나 주관적 해석이 사실처럼 전달될 위험이 있다. 또한 독자 기반의 후원이 커질수록 특정 집단의 입맛에 맞는 콘텐츠만 생산될 수 있다는 ‘에코챔버’ 우려도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 저널리스트의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일부 저널리스트는 전통 언론사에서 다룰 수 없었던 내부 고발이나 고위험 정치 사안을 독립 뉴스레터에서 공개하면서 대중의 주목을 받기도 한다.


한편 유럽과 캐나다에서는 이러한 뉴스레터 기반 독립 저널리스트를 제도적으로 보호하거나 지원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정부나 언론재단이 플랫폼 중립적 저널리즘 지원금을 책정해 콘텐츠의 질과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관련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뉴스레터와 서브스택 기반의 독립 저널리스트는 뉴스 생산·유통·소비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흐름이다. 이는 그동안 언론사가 독점하던 뉴스 공급 권한이 전문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개인 브랜드로 이동·확대되면서 새로운 공론장을 형성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의 저널리즘은 ‘조직과 플랫폼’이 아니라 ‘사람과 커뮤니티’에 의해 더 크게 움직이게 될 것이다.

임석봉 다이렉트미디어랩 대표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