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증원과 사법권 침해 논란

[이제야 헌법을 읽는다] ⑷ 사법권 독립

헌법은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도록 국가를 강제하는 문서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는 헌법을 몰라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국가가 헌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헌법으로 국가가 아닌 국민을 통제하기도 했다. 그러다 군사정부가 무너지고 시민들이 헌법을 새로 썼다. 이 헌법으로 우리는 국가를 통제해 왔다. 그런데 지금 시민이 만든 헌법이 무력화하고 있다. 헌법을 지키려면 헌법을 알아야 한다. 언론인 출신 헌법학자 이범준 서울대 법학연구소 연구원과 함께 헌법을 읽는다. [편집자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4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현재 14명인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뉴시스

비법률가 출신 최고재판소 재판관

일본 최고재판소 재판관 회의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즈미 도쿠지 재판관의 저서(私の最高裁判所論-憲法の求める司法の役割)를 번역해 출판한 일이 계기가 됐다. 회의실은 재판관 15명이 사건을 토론하고 합의하는 곳인데 의자가 15개가 넘었다. 회의 탁상 뒤편으로 작은 의자가 여럿 있었다. 한국 대법원의 재판연구관 격인 조사관이 배석하는 자리라고 했다. 재판관 가운데 비법률가들이 조사관에게 법률적 조력을 받는다고 했다. 2025년 현직 중에도 주유엔대사 출신 이시카네 기미히로(石兼公博) 재판관이 사법시험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다. 이시카네 재판관은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시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담당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사람이다.

최고재판소 재판관 자격에는 별다른 제한이 없다. 사법시험 출신이거나 법학 교수 출신인 사람이 15명 가운데 10명만 넘으면 된다. 재판소법은 “최고재판소 재판관은 식견이 높고 법률소양이 있는 40세 이상의 사람 중에서 임명하고, 그중 적어도 10인은 … 사람이어야 한다(제41조 제1항).”라고만 정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사법시험을 거친 사람만 대법관이 된다. 법원조직법이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20년 이상 다음 각 호의 직에 있던 45세 이상의 사람 중에서 임용한다(제42조 제1항).”라고 정하고, 판사·검사·변호사 등을 들고 있다. 게다가 판사와 검사 같은 재조를 거치지 않은 변호사 출신이 지금까지 김선수 대법관 1명뿐인데, 일본에서는 현직 재판관 가운데만 4명이다.

최고재판소 재판관은 취임 직후부터 국민 신임투표를 정기적으로 받는다. 과반이 파면을 결정하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국민투표이므로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 일본국헌법은 “최고재판소 재판관 임명은 임명 후 처음으로 시행되는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국민 심사에 회부하고, 그 후 10년을 경과하여 처음으로 시행되는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다시 심사에 회부하며 그 이후도 이와 같다(제79조 제2항).”라고 정하고 있다. 아직 파면된 재판관은 없지만, 최고재판소 재판관이 국민의 신임과 통제 대상임을 밝히고 있다. 한국에는 대법관을 신임하거나 통제하는 제도가 없다.

이처럼 한국 대법원은 법률가로만 이뤄진 폐쇄적인 조직이면서, 국민의 민주적 통제는 받지 않는 무소불위 권력 기관이다. 이러한 대법원의 통제 불가능성은 세계적으로도 보수적이라고 비판받는 일본 최고재판소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헌법이 정한 것은, 법관 독립이 아닌 재판 독립

우리나라 헌법은 법관 독립이 아니라 재판 독립을 보장한다.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고 정하고 있는데, 이 조항이 보장하는 독립은 사법권이다. 사법권이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법적 분쟁을 해결하는 권한을 뜻한다. 사법권 독립의 최종 목표는 재판 독립이며, 법원 독립이나 법관 신분보장도 재판 독립을 위한 것이다(이효원, 대한민국 헌법강의, 2024). 달리 말하자면, 법관 독립이나 법원 독립은 재판 독립을 이루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뉴시스

우리 헌법에는 독립이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온다. 사법권 독립을 정한 제103조 외에는, 대통령의 의무를 정한 제66조 제2항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가 유일하다. 따라서 헌법이 국가 제도를 만들면서 독립을 보장한 것은 사법권뿐이다. 사법권 독립의 목표는 법관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것이고, 궁극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입법권과 행정권은 집단적이고 추상적인 민주적 의지여서,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권력 주체인 국민으로부터 인권 주체인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 사법권 독립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헌법은 국회나 정부가 재판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국회가 법원이나 재판부를 상대로 국정감사나 국정조사를 할 때도 재판 자체에는 간섭할 수 없다. 정부 역시 어떠한 방법으로도 재판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 국가를 상대로 하는 행정소송에서도 정부는 당사자로 소송에 참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법원의 권한이나 소송절차를 정하는 것은 국회의 권한이다. 이는 국회가 권력분립 원리에 근거한 것으로, 법원의 독립을 침해하는 게 아니다(정종섭, 헌법학원론, 2018).

오히려 사법권 독립은 사법권 한계와 함께 다뤄진다.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사법권은 독립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국회가 군법회의 확정판결의 효력을 상실시키는 법률을 제정·시행한 적이 있는데, 이를 두고 대법원 스스로가 사법권 독립 침해가 아니라고 판결했다(63수3).

사법권 독립 보장 이유는 소극성을 보호하기 위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국회가 대법관 수를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냈다. 이 대법관 증원안을 두고 사법권 침해라 대법원 등에서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헌법은 제5장에서 법원의 구성, 조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사항을 국회가 법률로 정하도록 했다. 대법원은 다만 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소송에 관한 절차, 법원의 내부규율과 사무처리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을 뿐이다(제108조). 그렇기에 법원의 조직과 구성에 관한 문제인 대법관 증원이 어떤 이유로 사법권 침해가 되는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며 민주당의 대법관 증원법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헌법이 사법권 독립을 보장하는 목적은 기본권 보호가 사명인 사법권의 소극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사법권이 소극적 작용인 이유는 구체적 사건과 분쟁이 발생한 때에야 비로소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권한이기 때문이다. 이는 법을 형성하는 입법이나 법을 집행하는 행정이 적극적, 선제적인 것과 다르다. 참고로 대한민국 검찰이 세계에 유례가 없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준사법기관이라는 기괴한 단어를 개발해 독립을 주장한 것도, 민주적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이유였다. 검찰 독립은 말 자체로 모순이었고, 마침내 윤석열이라는 괴물을 낳은 주장이었다.

민주화 이후 입법권과 행정권이 사법권을 견제하지 않은 결과가, 2017년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건이다. 법관 인사권을 비롯한 사법행정권을 이용해 대법원이 재판 독립을 침해한 사건이다. 즉 법원 독립이 재판 독립을 침해한 셈이다. 대법관 증원은 조직에 관한 것이다. 법원조직법은 "대법관의 수는 대법원장을 포함하여 14명으로 한다(제4조 제2항).”라고 정하고 있는데, 이를 고치는 것이다. 이것이 사법권 침해라면, 각급 법원 판사 정원법이 해마다 바뀌고, 현행 제1조에서 “법원조직법 제5조 제3항 본문에 따른 각급 법원 판사의 수는 3,584명으로 한다.”라고 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왜 사법권 침해가 아닌지 궁금하다.

헌법은 대통령이 국회 동의를 받아 특정인을 대법관으로 임명하도록 정하고 있다(제104조). 대법관 증원이 사법권 침해라고 주장하는 대법원이, 이를 시비하지 못하는 이유는 헌법 조항이라서만은 아닐 것이다. 사법권 독립을 위해 대법원장이 차기 대법원장을 임명하고 14명 대법관도 임명하자고 주장할 수 없는 이유는, 대한민국 사법이 사법공화국의 사법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사법이기 때문이다.


[필자 소개] 이범준
헌법학 박사. 서울대 법학연구소 연구원. 저서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거의 모든 것(2022)>,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2009)> 등이 있다. 기자 시절 대법원 사법농단 비리, 검찰 디지털 개인정보 무기한 저장, 대법원 전자법정 입찰 비리 등을 보도해, 국제앰네스티,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협회 등에서 기자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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