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생중계로 이뤄진 TV토론회에서 성폭력을 묘사해 비판이 잇따르는 가운데 이를 보도하는 언론도 이 후보의 발언을 제대로 걸러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성폭력 가해 도구를 내세워 이번 일을 이름 짓고 기사 제목에까지 노출해 주의가 요구된다.
29일 조간신문에서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는 전날 이 후보가 한 문제의 발언을 ‘젓가락 발언’ 혹은 ‘젓가락 논란’으로 명명하고 제목에 썼다. 조선일보는 6면에서 이 후보의 발언을 날것 그대로 옮겨 적었다. 동아일보는 4면에 기사를 싣고 이 후보 발언 중 단어 하나를 가렸다. 중앙일보는 1면에 보도하고 발언은 “저속한 성적인 내용이었다”고만 설명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한국일보는 달랐다. 이들 모두 1면에 이 후보를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 그러면서 이 후보의 발언은 ‘성폭력 발언’ 혹은 ‘언어 성폭력’이라고만 적었다. 지상파와 종편 방송사들도 ‘여성 혐오 인용발언’ 혹은 ‘여성 신체 발언’으로 전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쓰지 않았다. TV조선만 앵커가 ‘젓가락 발언’을 언급했다.
문제의 발언은 이 후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가족을 비판하기 위해 꺼냈다. 이 후보 아들은 2021년 인터넷에 음란성 댓글을 써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이 후보는 이재명 아들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댓글에 적힌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꾸고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를 지목해 혐오에 해당하는 발언이 맞느냐고 물은 것이다.
남지원 경향신문 젠더데스크는 “속보 대응을 하던 현장 기자들이 지침을 달라고 먼저 요청해 왔다”면서 “가해 도구와 이를 사용한 행위가 기사에 등장하는 건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후보 발언이 뭐였는지 생략하면 기사가 사실관계를 제대로 설명해 낼지 고민은 했다”며 “그럼에도 혐오를 언론이 재생산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국기자협회가 2018년 여성가족부와 함께 만든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을 보면 언론은 “가해행위를 자세히 또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묘사”하면 안 된다. 가해행위를 묘사하면 가해자가 받아야 할 관심이 반대로 피해자에게 돌아가는 데다 피해자를 부정적인 인상에 가두고, 비슷한 피해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는 다시 굴욕감을 느끼게 한다.
김수아 서울대 교수는 “젠더기반 폭력은 재현이 상세할수록 오히려 본질에서 멀어지는 문제가 있다”며 “언론을 통해 확산하고 공적 담론장에서 반복될 때 이 문제가 더욱 커지기 때문에 언론이 차단할 필요성이 독자가 호기심을 충족할 이익보다 훨씬 크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중이 이 후보의 발언을 정확히 알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독자나 시청자가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데 그건 찬반 논쟁이 가능한 일에 한정되는 경우”라며 “이 후보의 발언이 여기에 속하는지 심히 의심스럽다”고 설명했다.
이번 TV 토론회에서 사회자는 후보들의 발언 시간만 통제할 뿐 이 후보의 발언을 제지하거나 발언이 끝난 뒤 시청자를 위한 설명은 덧붙이지 않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는 이번 토론회 주관방송사인 MBC를 징계해 달라는 민원이 700여건 접수됐다. MBC는 온라인 다시보기에서 이 후보 발언이 나오는 1분가량을 묵음으로 처리했다. 방심위는 MBC를 심의해야 할지 결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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