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위기라는 말은 늘 있었지만, 오늘날의 위기는 차원이 다르다. 언론에 대한 태도가 단순한 불신을 넘어 ‘언론 혐오’라는 극단으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기자가 단지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취재 현장에서 괴롭힘과 위협에 시달린다. 권력자가 불편한 질문을 대놓고 무시하거나 공공장소에서 폭행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이 부정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사태의 배경에 언론계의 책임이 일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기술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경제적 위기에 빠진 많은 언론사들이 정확한 정보 전달보다 흥미 위주의 기사를 쓰고 갈등 해결 대신 증오의 확산에 열을 올리며 불신을 키웠다. 하지만 언론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혐오 수준까지 커진 데는 정치권력의 적대적 태도가 결정적이었다. 비판 언론에 ‘가짜 뉴스’ 프레임을 씌우고 취재에서 배제하는 노골적인 언론 탄압이 지난 정권 내내 이어졌다. 특히 대통령을 필두로 한 권력자들이 언론을 비난하는 모습은 ‘기자를 공격해도 무방하다’는 신호로 작동했다. 실제 국경없는기자회(RSF)는 한국 언론자유지수가 2022년 43위에서 올해 61위로 18계단 추락했다고 밝히며 “포퓰리즘적 정치 경향이 기자들을 향한 증오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6월 대선은 언론 환경을 개선할 중요한 전환점이 돼야 한다. 새 정부의 리더가 언론을 동반자로 인식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일 때 사회 전체의 언론 인식도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선 후보들이 지금껏 보여준 언론관은 기대보다 우려가 앞선다. 일례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언론 대신 개인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직접 소통을 선호한다며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과 경계를 드러냈다. 자신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왜곡’이나 ‘가짜 정보’로 일축하며 대응하는 패턴도 반복되고 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역시 최근 선거 캠프 주요 인사가 부정선거 음모론을 지지하는 보수 성향 유튜버들과 별도 간담회를 진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을 빚고 있다.
주요 대선 후보들의 이런 언론관은 변화가 필요하다. 국정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열망이 있을 것이다. 그런 큰 뜻을 제대로 펼치려면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을 짚어주고 때로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언론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언론이 불편하고 때로는 싫겠지만 건강한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중요한 일부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뉴욕타임스 회장 겸 발행인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는 “자유로운 언론이 없다면 정부가 국민을 위해 일하는지, 지도자들이 진실을 말하는지, 국민의 자유가 유지되고 보호되는지 알 수 없다. 견고하고 독립적인 언론은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위대함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새 정부가 소통을 중시하고 비판을 수용하는 성숙한 리더십을 갖추고 언론이 공정한 보도로 국민 신뢰를 회복할 때 한국의 민주주의는 한 단계 더 성숙해질 것이다.
새 정부의 과제는 산적해 있지만 언론에 대한 적대감을 해소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새 정부는 언론의 취재권을 보장하고 기자들이 안전하게 취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보도를 이유로 언론인에 가해지는 괴롭힘과 차별, 불신 조장 등 모든 폭력을 근절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단순히 언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알권리와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당연한 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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