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수사' 이창수 사의... KBS는 '세 문장' 단신 처리
20일 '29초' 단신, 검찰총장 입장 등 후속도 없어
신문들 1면 등 일제히 주요 뉴스로 보도한 소식
언론노조 KBS본부 "보도 외면, 이해하기 어려워"
29초. ‘중앙지검 지휘부 초유의 동반 사의’(서울신문, 5월21일) 뉴스를 KBS가 전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과 조상원 4차장검사가 20일 동반 사의를 표명했다. 이날 오후 5시46분 JTBC 단독 보도 이후 연합뉴스를 시작으로 관련 소식을 전하는 속보가 그야말로 쏟아졌다. 대선을 2주 남기고 ‘전격’, 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안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한 지 두 달 넘게 지난 시점에서 ‘돌연’ 사직을 결심한 배경을 두고 여러 보도가 나왔다.
그런데 이날 KBS 메인뉴스인 ‘뉴스9’는 이 소식을 29초짜리 단신으로 보도했다. 지상파와 종편을 통틀어 이 뉴스를 단신 처리한 곳은 KBS가 유일하다. MBC ‘뉴스데스크’는 이날 관련 뉴스를 4번째로 전했고, SBS ‘8뉴스’는 이 지검장과 직접 통화해 사직 이유 등을 들어 8번째 소식으로 보도했다.
KBS는 이 단신을 11번째 순서에 배치하며 단 세 문장으로 압축했다.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과 조상원 4차장검사가 나란히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이 지검장 등은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검이 김 여사를 무혐의 처분한 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돼 100일 가까이 직무가 정지됐습니다. 두 사람은 지난 3월 헌법재판소의 전원일치 기각 결정으로 업무에 복귀했습니다.” (5월20일, KBS 뉴스9)
이 지검장 등이 지휘했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사건 수사가 부실 수사 논란이 있었던 것이나, 최근 서울고검이 재수사를 진행 중이란 사실 등은 KBS 뉴스에서 확인할 수 없다. 이 지검장이 말한 “건강이 나빠졌다”는 이유 등도 KBS 뉴스에선 빠져 있다. 이날 오후 늦게 알려진 소식이라 취재할 시간이 없었던 걸까. 하지만 KBS보다 1시간 넘게 일찍 뉴스를 시작한 MBC, SBS, 종편 등에선 모두 별도의 리포트로 이 뉴스를 다뤘다.
KBS의 이 같은 뉴스 가치 판단이 얼마나 ‘이례적’인지는 다음 날 신문을 보면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21일 10대 종합일간지 중 7개 신문이 이 뉴스를 1면에 보도했고, 그중 두 곳(경향·서울신문)은 1면 머리기사로 다뤘다. 서울신문은 정치권 반응까지 종합해 아예 3면 전체를 중앙지검 지휘부 동반 사의 소식으로 채웠다.
서울신문은 1면 기사에서 “전국 최대 규모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 지휘부가 동반으로 사의를 표명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법조계 평가를 전했다. 조선일보도 1면에 이어 10면에 <이창수, 대선 직전 사표 내 논란> 제하의 기사를 싣고 “이날 법조계에서는 다음 달 3일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를 얼마 남기지 않고 전국 최대 검찰청 수장이 사의를 표명한 게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1면에 이어진 8면 머리기사에서 “두 사람 사의의 표면적 이유는 탄핵 과정의 건강 악화지만 대선 이후 새 정부에서 특검 수사나 보복 감찰 등으로 고초를 겪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결정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고 했다.
전국 최대 검찰청인 중앙지검이 사실상 지휘부 공백 사퇴에 놓이고 검사들의 ‘줄사직’ 가능성까지 제기되며 검찰 안팎은 크게 술렁였다. 이에 심우정 검찰총장이 21일 “검찰은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림 없이 역할을 수행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날 KBS ‘뉴스9’에선 이 내용이 아예 보도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도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KBS본부는 21일과 22일 발행한 대선보도 모니터 보고서에서 거듭 이 문제를 지적했다. KBS본부는 “심우정 총장이 입장을 밝히고 이재명 후보도 코멘트를 하는 후속 보도할 거리가 있었음에도 의도적 무시에 가까운 흐름이 이어졌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서울중앙지검 지휘부가 나란히 사의를 표한 건 초유의 사태인 데다가 앞으로 김건희 소환 등 검찰 수사에 차질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권력 감시’ 의무를 진 공영방송이 보도를 외면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고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