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이는 이중 매듭, 단칼에 끊어내야

[이슈 인사이드 | 경제] 오찬종 매일경제신문 뉴욕특파원

오찬종 매일경제신문 뉴욕특파원

고르디우스 왕이 지배하던 고대 프리기아엔 전설적인 밧줄 매듭이 있었다.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를 지배한다는 예언에 따라 많은 이들이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로부터 200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경제에 이 매듭이 다시 등장했다. 도저히 풀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얽힌 밧줄이 한국 경제의 숨통을 조여 오고 있다.


매듭을 이루는 한쪽 밧줄은 환율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급등락을 반복하며 한 달 새 폭이 80원에 이르렀다. 국제적 불확실성이 국가 경제의 근간인 화폐까지 덮친 상황이다.


외신들은 한국이 대만과 유사한 환율 리스크에 노출됐다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이달 초, 대만 달러는 단 이틀 만에 9% 넘게 급등하며 37년 만에 가장 큰 변동 폭을 기록했다. 이 같은 혼란이 한국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을 짓누르고 있다.


물론 환율 하락은 수입 물가 안정과 같은 일부 긍정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는 악재에 가깝다.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 단가가 올라가고, 주요 산업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된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 소비자들이 한국산 대신 경쟁국의 제품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등 주력 품목은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만큼 환율 변화에 민감하다. 수출이 흔들리면 내수 기반이 약한 한국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번 환율 급락의 배경에는 미국의 정책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무역적자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강달러는 미국 제조업에 부담이 된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약달러 유도를 위한 정책 압박을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5일 밀라노에서 열린 한미 재정 당국 간 회동 소식은 이 같은 시각을 더욱 부각시키며 시장을 자극했다.


이처럼 꼬인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밧줄은 관세 정책이다. 관세 협상에서 미국이 예상보다 큰 청구서를 내민다면 우리 수출 실적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환율과 관세 압박에 묶인 한국 경제는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같은 복합 위기에 직면했다. 어느 하나만 푼다고 해서 전체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운 국면이다. 실제로 정부가 환율 관련 최근 논의와 관세 협상은 별개라며 수습에 나섰지만, 혼란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제2의 플라자 합의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일본 엔화는 3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절상됐다. 그 여파로 일본은 장기 침체에 빠졌다.


기원전 333년 고르디우스 매듭은 결국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풀렸다. 그는 복잡한 매듭을 푸는 대신 단칼에 잘라버리며 문제를 해결했다. 이후 그는 실제로 아시아를 지배하며 예언을 실현했다.


지금 우리 차기 정부에도 알렉산더 대왕의 발상 전환이 요구된다. 복잡하게 얽힌 리스크들을 개별 대응이 아닌 통합 전략으로 풀어야 한다. 환율, 관세, 수출, 산업 정책이 하나의 틀 안에서 조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부처 간의 유기적 협업은 물론이고 현장에 있는 기업들과 소통도 필수다. 위기를 기회로 바꿔 이 매듭을 풀어낸다면 한국은 경쟁국보다 더 유리한 고지에서 아시아 시장의 강자로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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