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생태계가 급격히 변화하는 가운데 위기에 처한 한국 언론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살아남고자 한다면 어떤 혁신을 해야 할까. 1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언론의 위기와 혁신방안’ 세미나에선 한국 언론의 생존을 위한 다양한 혁신 방안이 논의됐다. 세미나 참가자들은 한국 언론의 위기를 크게 ‘뉴스콘텐츠 품질 양극화’, ‘언론사 혁신의 위기’로 진단하며 언론이 고품질 뉴스를 생산·유통·소비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혁신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박영흠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점점 더 심화하고 있는 뉴스콘텐츠 품질의 양극화를 우려했다. 박영흠 교수는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 지금 언론의 현실”이라며 “좋은 뉴스는 서구 저널리즘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나쁜 뉴스들의 경우 저널리즘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만큼 대단히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좋은 뉴스는 극소수고 나쁜 뉴스는 대량 생산되고 있다. 저품질의 뉴스가 압도적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그래서 뉴스 고관여자가 아니라면 좋은 뉴스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기도 어렵고 나쁜 뉴스에만 집중적으로 노출되기도 한다. 이것이 뉴스 회피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익 위한 기사라 여기는 것들, 정말 수익에 도움될까"
박영흠 교수는 품질 양극화의 원인에 대해선 언론계와 뉴스룸, 기자들의 이원적 인식을 원인으로 꼽았다. 박 교수는 “언론계의 경우 종이신문에 게재하는 기사와 인터넷에 올리는 기사가 다르다는, 무의식적인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며 “뉴스룸 내에서도 수익을 위해 쓰는 기사와 저널리즘의 성취를 위해 쓰는 기사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언론인으로서 쓰는 기사와 회사원으로서 쓰는 기사를 다르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술 혁신의 저주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뉴스 이용자 △언론사 수익구조의 딜레마 등을 저품질 뉴스 양산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언론사가 유통, 소비, 생산의 영역에서 고품질 뉴스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좋은 뉴스를 소비자들에게 더 많이 전달하기 위해선 뉴스 유통과 노출 방식을 바꿔야 한다”며 “그러나 그동안 플랫폼에서 벗어나거나 알고리즘의 투명성을 강화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하거나 충분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장기적으로 플랫폼의 알고리즘 기준을 상업적인 측면에서 저널리즘 중심으로 바꿀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선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통해 기사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좋은 뉴스를 생산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유대근 한국일보 기자는 “AI를 기사를 쉽게 제작하기 위한 툴로써만 활용하는 건 안 되겠지만 양질의 기사를 쓰는 데 도구로써 활용한다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한편 경영진이 기사를 수익과 저널리즘으로 이원화해 인식하고 있는데, 과연 우리가 수익을 위한 기사라고 여기는 것들이 정말 수익에 도움이 되는지도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제 생각엔 상당 부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김현지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사업전략팀장도 “AI를 통해 생산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 같다”며 “이와 함께 신뢰성을 확보하고 독자 ‘인게이지먼트(engagement·관여)’를 높이는 것도 뉴스콘텐츠 양극화를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관여라는 게 기업이 고객과 직접적으로 의미 있는 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하기 위한 모든 활동을 말하는데, 언론사가 독자들을 좀 더 신경 쓰고 고민해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뉴스룸, 사실 수면 아래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이날 세미나에선 2014년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 이후 다양하게 시도됐던 언론사 혁신이 지금은 잘 논의되고 있지 않다는 데 대한 우려도 나왔다. 조영신 미디어산업컨설턴트는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 이후 다양한 시도들이 있어왔지만 팬데믹을 거쳐 오면서 그 소재가 조금씩 사라지고 줄어들었다”며 “지금은 언론 혁신에 관련된 다양한 논의들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채 10년도 안 되는 그 짧은 기간 내에 언론을 바꿔보겠다는 열정과 갈망이 사라졌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되돌아보면 수없이 많은 혁신을 시도했음에도 매출액이 감소하고 구독자는 떨어지고 시장은 멀어지면서 우리의 자존감이 하나씩 사라지고 없어졌을 것”이라며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AI 혁명으로 넘어오면서 기자는 누군지, 신문은 무엇인지 존재의 이유를 물어야 하는 세상이 됐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뉴스가 무엇인지에 대해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박사는 그러면서 “우리가 기대하는 뉴스는 무엇인지, 왜 뉴스 사업을 해야 하는지 그에 대한 대답이 있지 않으면 혁신을 하기는 어렵다”며 “월급쟁이로서 여전히 나는 기사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것이 이 시대에 어떤 의미와 맥락이 있는지,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제공해야 하는지 대답이 확립돼야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 뉴스의 정체성이 확립돼야 혁신이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토론자들은 조 박사의 전제엔 공감하면서도 언론사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김민성 한국일보 혁신총괄 미디어전략부문장은 “언론사 혁신은 지난 15년 동안 무수히, 쉼 없이, 조금씩,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예전의 혁신은 콘텐츠 혹은 서비스라는 눈에 보이는 구조였다면 모바일이 나오고 알고리즘이 침투하기 시작한 이후부턴 뒷단에서 작용하고 있기에 잘 안 보이게 됐을 것이다. AI의 시대에도 저희는 여전히 원천 데이터의 제공자이고 그 검증자 역할을 계속해 나갈 것으로 생각하며 그 비정형 데이터들을 기자들이 지금 이 순간도 모으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희욱 한겨레신문 미디어전략실 미디어전략부 팀장도 “바깥에서 바라보면 언론사가 대체로 관성적이고 변화에 뒤처진, 고루한 이미지에 가까워 보일 거라 생각한다”며 “그런데 그 평온하고 안정된 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뉴스룸은 사실 수면 아래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고 있다. 언론사가 만약 한 마리 늙고 게으른 짐승처럼 보인다면 그 끊임없는 사투가 나름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다만 “AI 시대 들어 언론사 내부에서 ‘우리는 뭐 할 거 없어?’라는 얘기를 가장 많이 듣는다”며 “언론사가 AI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어보기 전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먼저 정의한 후 그 도구 중에 하나로 AI를 적극 활용했으면 한다. 그것이 바로 언론사의 핵심 가치, 곧 AI 시대 저널리즘의 가치에 대한 질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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