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 기자들에겐 “무력감”, “허무함”만이 남은 2주였다. 6·3 대선이 약 한 달 앞으로 다가 온 상황이었다. 1일 대법원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파기환송 후폭풍을 시작으로 국민의힘 대선 후보 단일화 충돌과 후보 교체 소동이 일어났다. 결국 서울고등법원이 파기환송 재판 일정을 대선 뒤로 연기하기로 하고, 김문수 후보가 곡절 끝에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확정되면서 12일 공식 선거 운동이 시작됐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 ‘단일화 논란’ 등 발생 이슈에만 묶여있던 기자들은 공약 검증, 후보들 간 정책 대결 보도는 사실상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대선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정치부 데스크, 기자들은 이번 대선 보도에 대해 사회, 정책 의제가 실종됐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종합일간지 민주당 출입 A 기자는 “정책이고 뭐고 대결구도 자체가 안 만들어져 인물의 대결이든 정책의 대결이든 나란히 세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대선 보도라는 게 아예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다른 종합일간지 국민의힘 출입 B 기자도 “대선은 미래 지향적 선거이고,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하는 숙제에 대해 다수결의 판단을 받는 건데, 어떤 특정 후보에 대한 과도한 악마화, 당권 다툼으로만 어우러져 미래가 하나도 안 보이는 게 이번 대선”이라며 “대선 때마다 굵직한 어젠다가 나와 이슈를 주도해 나가려는 시도들이 있어 왔는데 지금은 그런 노력이 없다”고 토로했다.
방송사 C 정치부장도 이번 대선 보도 상황에 대해 “통상적으로 정치권 취재가 정무 현안 취재, 정책 현안 취재로 나뉜다면 후자보다 전자의 비중이 유달리 많은 형국”이라며 “실질적인 공약 대결이 11일 이후(국민의힘 단일화) 가능한 상황에서 민주당의 공약, 정책 기사만 쓰자니 균형 문제 때문에 어려움이 있어 고민이 많았고, 독자나 시청자들의 갈증을 언론이 잘 풀어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12일 공식 선거 운동 개시 이후에야 각 후보들의 1호 공약, 메시지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통령 탄핵으로 갑작스럽게 실시되고, 짧은 기간 치러지는 대선이라고 해도, 같은 이유로 이뤄진 2017년 조기 대선과 비교하면 뒤늦게 관련 보도가 나오는 편이다. 2017년의 경우 민주당, 국민의당, 자유한국당, 정의당 등의 후보가 경선에 통과되자마자 후보 인물 분석, 검증 기사가 나왔다. 대선까지 한달여 남은 시점부터는 주요 언론사에선 자체 여론조사 발표, 대선 후보 인터뷰와 함께 후보별 공약 분석·검증 보도가 나왔다. ‘대선 후보들의 4차 산업 공약’(동아일보), ‘문재인-안철수 경제 노선 시각차’(한겨레), ‘가족 부양의무 폐지에 대한 각 후보 공약 비교’(중앙일보) 등의 주요 기사는 공식 선거 운동 개시(2017년 4월17일) 일주일 전부터 보도됐다. 선거 26일 전인 그해 4월13일엔 대선후보 첫 TV토론도 열려 당시 최대 관심사로 부상한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에 대한 입장이 치열하게 논의되기도 했다.
종합일간지 D 정치부장은 “어느 때나 대결 구도나 인물에 관심이 많고 상대적으로 공약, 정책이 주목을 덜 받는 건 사실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전 국민적으로 관심 있는 정책, 시대정신이라는 화두가 있었다”며 “대선 때마다 북한 문제가 뜨거웠는데 이젠 관심이 없다. 세태 변화가 보이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3정당의 존재가 없는 것도 있다”며 “2017년엔 정의당 등 진보정당이 있어서 어젠다를 던지고 양대 정당에서도 거론이 되며 진보 이슈를 논의하는 장을 만들었는데 그게 안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만큼 이번 조기 대선에 대비해 정치부 기자들이 하고자 했던 기획, 공약 팩트체크 등도 지난 대선에 비해 적어진 상황이다. 종합일간지 국민의힘 출입 E 기자는 “직전 대선에도 일했지만 지금은 정책 기사를 쓴 기억이 아예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주일 동안 국민의힘에서 그렇게 난리를 쳤는데도 5월3일(전당대회 후보 선출)로 다시 돌아간 건데, 허탈하고 허무하다”며 “대선 땐 공약 팩트체크도 하고, 이전과 말이 달라졌는지 등을 봐야 하는데 갈등만 매일 보도하다 보니 독자들에게 뭘 보고 선택하라고 해야 할까 싶다”고 말했다.
B 기자도 “2030세대가 60대 이상보다 적어진 첫 선거가 지난 총선부터라 그 영향들에 대해 분석하는 기획들을 냈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종류의 품이 많이 들어가는 기획을 하기가 쉽지는 않다”며 “지금 상황에선 사람들이 그런 기획을 잘 안 보기도 한다. 관심이 갈등으로만 흘러갈 수밖에 없어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했다.
뒤늦게 후보들의 공약 발표가 이뤄지면서 언론사들도 각자가 주목한 의제와 관련 보도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D 정치부장은 “본선 시작 이후 후보 간 토론이 되고 하면 정책 얘기를 안 할 수 없을 거다. 결국 민생경제에 관심이 많으니 부동산, 감세 문제 등에 주목할 것”이라며 “각 부처 담당 기자와 협력하고, 전문가 힘도 빌려 이런 얘기들이 나오게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A 기자도 “이 상황에서 좋은 선거보도는 판도를 잘 보여주는 기사라고 본다”며 “경제민주화 같은 경우처럼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선거의 프레임 구도를 정확하게 보여줘야 할 텐데, 내란세력 척결이란 화두가 있겠지만, 경제문제에 집중할 거고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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