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은 힘들다

[언론 다시보기] 양재규 변호사·언론중재위원회 조정본부장

양재규 변호사·언론중재위 조정본부장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대해 쓰려는 것이 아니다. 저널리즘 윤리 중 하나인 ‘투명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일단, 사례부터 살펴보자.


#1. BBC가 제작 중인 히틀러 다큐멘터리에 인공지능(AI)으로 만든 히틀러의 목소리를 사용할 수 있을지에 관해 내부 구성원의 의견을 물었다. 59%의 사람들은 반대했고, 32%는 잘 모르겠다거나 판단을 보류했으며, 9%의 사람들만이 사용에 찬성했다.


월간 <신문과방송> 2024년 8월호에 실린 이윤녕 BBC 선임기자의 글에 나오는 내용이다. 디지털 시대에 강조되었던 투명성은 AI 시대에 더욱 중요시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기자협회를 비롯한 6개 언론단체가 제정에 참여한 ‘언론을 위한 생성형 인공지능 준칙’에도 투명성 조항이 자세히 담겼다. 준칙에 따르면 뉴스 생산에 AI를 활용한 경우, 그 사실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AI로 생성한 기사나 사진, 영상에는 워터마크 등의 표시를 달아 인간 기자의 작품으로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무슨 AI를 썼는지, 입력한 데이터와 프롬프트 등도 필요하면 공개할 수 있어야 한다. 모두 투명성에서 비롯된 요구 사항이다. 그런데 BBC 구성원들은 AI 활용에 좀 더 보수적인가 보다. 우리 언론계의 입장이 투명성을 준수한다는 전제하에서 AI 활용 범위를 제한하지 않는 것이라면 BBC는 AI 활용 자체에 매우 신중히 접근하고 있다. 이미 대세가 된 AI의 활용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 맞는 방향인지 의문이 들면서도, 오히려 이러한 입장이 보다 현실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디지털 시대로 접어든 시점을 인터넷신문이 언론매체 범위에 편입된 2005년으로 잡는다면 벌써 20년이 지났다. 이 말인즉, 투명성 개념이 우리 언론계에 알려진 지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는 뜻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이라든가 2021년 제정된 언론윤리헌장에는 기사와 광고 구분 표시, 기사 수정 이력 표시, 외부 지원 및 후원 사실 표시, 취재원 선정을 비롯한 취재 과정에 대한 설명 의무와 같은 다양한 투명성 관련 의무 사항이 명시되어 있다. 이것을 보면 투명성이 저널리즘 윤리로서 이미 우리 언론계에 충분히 수용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현장에서 투명성을 적극 실천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불필요한 익명 취재원 사용의 문제가 지적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방송 뉴스에서 자주 사용되곤 하는 자료영상 표시도 미흡한 실정이다. 표시가 부실하니 기자가 촬영한 영상인지, 외부 제공 영상인지, 외부 제공 영상이라면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의도로 촬영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현실이 이러한데 AI 시대가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준칙에서 정한 투명성 조항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2. 병원 치료를 받던 초등학생이 사망했다. 부모로서 당연히 의료사고는 아닌지 의심해 볼만하다. 하지만 의료진의 과실 유무를 밝히는 일이 비전문가인 부모에게는 무척 버겁기만 했고 그 지난한 과정을 <오마이뉴스>에 담담히 적어 내려갔다. 이 기사에 병원이나 의료진의 이름은 없다. 독자들이 사건 당사자들이 아닌, 의료사고 시 입증의 어려움을 겪는 구조적인 문제에 집중해달라는 뜻으로 익명화했음을 기사 첫머리에 썼다.


왜 투명성은 실천되지 않는 것일까? 다양한 분석이 가능할 테지만, 투명성의 개념과 취지를 우리 언론인들이 잘 모르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흔히 투명성이라고 하면 취재원 실명 표기 문제를 떠올릴 수 있으나 투명성은 그 이상의 문제다. 위 사례에 언급된 기사는 의료사고가 발생한 병원과 의사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익명으로 보도했으니 이 기사는 투명성을 실천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다. 익명으로 보도한 이유가 분명했고,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기사를 읽는 대다수 독자는 익명으로 보도한 이유에 충분히 공감했을 것이고 보도의 의도를 오히려 의심하지 않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사야말로 투명성의 가치를 십분 실천했다고 본다.


투명성을 요구받는 것은 기사에 대한 신뢰가 당연했던 시대가 지나갔음을, 그리고 기사를 왜 신뢰해야 하는지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과거의 언론이 진실을 알고 있는 권위자였다면 현재의 언론은 그저 수많은 정보 생산자 중 하나일 뿐이다. 예전의 기자들은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기자들은 아는 것만 알고, 모르는 것도 있는 사람이다. 이 모든 상황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단어가 ‘투명성’일 수도 있다. 그러니 투명성이 저널리즘의 윤리로서 부상한 이 시대, 기자들은 겸손해야 하고 정직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겸손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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