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을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결국 언론의 포토라인에 서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은 12일 오전 9시54분쯤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입구에 도착했다. 이날 자신의 형사재판 세 번째 공판에 출석한 윤 전 대통령은 차량에서 내린 뒤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법정으로 걸어들어갔다. 법원에 들어가기까지는 2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기자들이 “군부정권 이후에 첫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인데 여전히 스스로 자유민주주의자라 생각하느냐”,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사과할 마음이 있느냐”는 등 질문했지만 윤 전 대통령은 정면만 응시하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경호원이 질문하는 기자의 팔을 잡아끌며 가까이 붙지 못하게 제지하는 장면도 포착됐다.
윤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 12·3 비상계엄에 대해 반성이나 사과한 적이 없다. 윤 전 대통령의 의견 표명을 기대한 기자들은 언론을 무시하는 태도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한 사회부 기자는 “윤 전 대통령이 SNS를 통해서 국민의힘 당내 경선에는 계속 입장을 냈고 ‘전한길 뉴스’를 통해서도 발언했는데 정작 자기 문제에는 입을 닫았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큰 기대는 안 했지만 그래도 ‘재판 마치고 얘기하자’는 정도는 말할 줄 알았는데 이조차 하지 않았다”며 “윤 전 대통령이 임기 초반에는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도 했었는데 오늘은 취재를 제약하는 경호도 너무 심했고 언론을 무시하는 태도에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유감이었다”고 말했다.
서울지법 청사를 관리하는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두 번의 재판과 달리 이번엔 윤 전 대통령에게 지하 주차장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포토라인에서 취재할 수 있는 기자를 출입기자단으로만 한정했고 이마저도 더 소수로 구성된 1기자단에게만 촬영을 허용했다. 법원은 서관 출입을 완전히 통제했고 서관 안에도 경찰 수십 명이 배치됐다.
2기자단 소속 한 기자는 “촬영이 허용된 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불리한 판결을 한 조희대 대법관을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법원을 향한 여론이 나빠진 데 따른 것 같다”며 “왜 세 번째 재판 만에 허용했는지 법원이 충분한 설명도 내놓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법부가 여전히 눈치만 보고 있고 공정성에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서관 앞에는 윤 전 대통령 지지자 100여명이 모여들어 과열 분위기가 형성됐다. ‘윤 어게인’ 구호가 적힌 손수건을 챙겨온 지지자들은 “윤석열, 대통령” 구호 제창을 미리 여러 차례 연습하기도 했다. 법원은 정문에서 출입자들의 가방을 열어 집회 물품이나 위험물이 있는지 확인했지만 지지자들은 옷 속에 물품을 숨기는 등의 방법으로 검색을 피했다.
기자들이 지지자들에게 이유 없이 공격받는 일도 벌어졌다. 기자들이 주변에서 휴대전화로 메모하는 모습을 보자 지지자들은 “어디 기자냐”거나 “여기가 어디라고 오느냐”, “좌빨 기자, 인민 민주주의 기자 꺼져라”를 외치며 취재를 방해했다. 지지자들은 이들을 MBC 기자로 오해했다가 소속을 밝힌 뒤에도 “어디든 똑같은 놈들”이라며 공격을 이어갔다.
결국 지지자들은 주변에 있던 경찰들이 제지한 뒤에야 수그러들었다. 공격을 받은 기자는 “처음에는 대응을 안 했는데 우리가 아무 말도 안 하니 그걸 가지고 또 화내며 위협했다”며 “한두 사람이 ‘이 사람들 기자래’ 하더니 이목이 몰리면서 점점 과열됐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비상계엄 사태가 이제 재판 국면으로 넘어왔는데 언론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가 아직 남아 있구나 싶어 놀랐다”며 “지금까지도 언론을 ‘적’으로 보는 과열 양상이라면 앞으로도 취재 안전을 장담하지 못할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지지자들이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캠코더로 촬영해 채증했다. 현장을 지키고 있던 경찰은 지지자들을 윤 전 대통령 응원을 위해 일시적으로 모인 시민들로 보고 불법 집회로 판단하지 않았다. 지지자들은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며 이날 재판이 끝날 때까지 서관 앞에서 시위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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