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 음모론' 동원된 KBS 뉴스? 기자 얘기 들어보니…

"전자개표 해킹위험" 2023년 KBS 기사 제목 현수막에
당시 기사 지시·보도 과정 의문… "그때부터 부정선거 믿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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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대선을 앞두고 부정선거 음모론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들어 전국 곳곳에서 내일로미래로당이라는 정당명으로 게시된 현수막을 확인할 수 있는데, ‘채용비리 선관위를 믿는다고? 사전투표 NO! 오직 대만식 수개표!’ ‘엄마! 개표기 재부팅하니 득표 숫자가 달라졌다는데요?’ ‘지금 한국은 6·25 이후 최대 위기 이대로 가다간 중국의 노예가 된다’ 등 혐오·허위 주장이 담겨 있다.

서울 서대문구에 설치된 내일로미래로당 정당명의 현수막. KBS의 기사 제목이 현수막 문구로 내걸렸다. 이 단체는 각종 부정선거 음모론, 중국혐오 표현을 현수막 게시를 통해 유포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박지은 기자

심지어 이 단체의 현수막 문구 중엔 KBS의 기사 제목을 넣은 내용도 있다. ‘독일·프랑스·대만·스웨덴 등 선진국도 수개표 “전자개표는 해킹 위험”(2023.12.27. KBS 뉴스)’ 문구의 현수막인데, 부정선거 음모론에 KBS 보도가 활용되는 셈이다.

문제의 현수막에 언급된 기사의 정확한 제목은 2023년 12월26일 ‘뉴스9’에 보도된 <독일·프랑스 등 선진국도 수개표…“전자개표는 해킹 위험”>이다. 당시 KBS는 선거관리위원회가 내년 총선(22대)부터 개표 절차에 수작업 개표를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를 첫 리포트로 전한 다음 차례로 3건의 관련 기사를 배치했다. 해당 보도는 국제부에서 작성한 것으로 수개표를 진행하고 있는 해외 사례를 정리했다.

해당 기사엔 “프랑스는 2017년부터 일부 선거구를 제외하곤 기표소 직접투표와 수개표로 전환했다. 러시아 등 외부 세력의 해킹 우려가 정보기관에서 제기됐기 때문”이라며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소프트웨어 하자와 결과 조작 여부를 유권자가 알기 어렵다며 전자 투개표 시스템 사용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고 나와 있다.

2년 전 보도가 이번 현수막 게시로 소환된 건데, 이미 지난 총선부터 선관위가 수개표 제도를 도입했음에도 현수막 내용만 보면 마치 전자개표로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또 이후 수차례 여러 언론에서 극우 유튜버 등이 주장하는 방법으로는 선관위 해킹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검증했지만 여전히 전자개표에 해킹 위험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기사 내용 자체로는 사실 관계가 틀린 건 없지만, 당시 해당 보도가 나오기까지 과정은 석연치 않았다. 해당 보도를 한 기자는 자발적인 발제가 아닌 김성진 당시 방송주간의 지시를 받아 작성한 기사라며 보도 당시에도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2023년 12월 당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한 박민 사장이 취임한 이후다. 당시 국제부장은 현재 이재환 보도시사본부장이다. KBS 기자들은 지난해 12월 당시 보도본부 간부진 취임 이후 KBS 보도에 대해 “이대로 가다간 KBS가 내란의 공범으로 몰려도 할 말이 없을 정도”라는 내용의 성명을 내어 최재현 보도국장 사퇴를 촉구한 바 있다.

2023년 12월26일자 KBS '뉴스9' 리포트들. /KBS 홈페이지 갈무리

해당 기사를 작성한 공웅조 KBS 기자는 “당시 KBS만이 유일하게 선관위의 수개표 검토 관련 뉴스가 네 꼭지나 들어갔고, 그 전 주에도 비슷한 뉴스가 나가기도 했다”며 “타사는 이 정도로 보도가 나가질 않았고, 편집표를 보며 이런 뉴스가 9시 뉴스에 나갈 정도의 가치가 있나 싶었다. 당일 저녁 갑자기 국제부에 콕 짚어 해외 사례를 넣어보라는 지시가 나온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기사 자체로는 틀린 내용은 없다. 하지만 맥락을 봐야 될 텐데, 해킹 위험 때문에 수개표를 도입한다는 비중이 많다. 억지로 끼어 넣기 위해 해외 사례를 넣은 것”이라며 “보도본부 수뇌부들은 그 때부터 부정선거라는 신념을 계속 가져왔던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후 언론노조 KBS본부 지역부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공 기자는 올해 1월 노사 공정방송위원회에서 해당 보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날 공방위에서 노조 측은 12·3 비상계엄 부실 보도 문제를 지적했으나 이재환 본부장 등 사측 공방위원은 “취임하기 이전 과거 내용에 대해 발언하거나 판단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공 기자는 “국제부장이었던 이재환 본부장이 당시는 본인이 보도본부 간부가 아니었다며 노조 지적에 대해 아무 말을 하지 않아 제가 그 기사를 뽑아가서 직접 읽어 내려갔다”며 “당신이 사인한 이런 음모론적인 기사가 9시 뉴스에 버젓이 방송됐고, KBS에만 유일하게 나온 이 기사로 우리 뉴스가 시청률, 신뢰도가 추락했다고 문제제기했다”고 말했다.

'애국 현수막 달기' 홈페이지. 현수막 설치는 후원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윤 어게인! 사전투표 NO’라는 현수막을 게시하기도 했던 이 단체는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자들로 구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수막에 표시된 ‘애국 현수막 달기’ 사이트에서 현수막 설치 후원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 단체 운영자는 “선거일까지 부정선거에 대해 국민들을 깨우는 현수막을 끝까지 게시하려 한다”며 “8일 중앙선관위에 전화로 확인한 결과, 후보를 내지 않는 정당의 통상적인 현수막은 선거운동기간에도 합법적으로 달 수 있다고 한다. 특히 부정선거 관련된 문구라 할지라도 통상적인 정당활동으로 판단 받았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같은 허위 주장, 혐오 표현이 담긴 현수막이 교묘히 법망을 피해가며 내걸리는 문제를 지적하는 여러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다. CBS 노컷뉴스는 관련 보도에서 “4월22일 기준 총 719개의 '애국 현수막'이 '내일로미래로' 정당명과 함께 게시됐다. 이 현수막들은 정당명과 연락처 등을 표시하면 '정치적 현안에 대한 표현'으로 보호받는다는 점을 이용해 법적 제재를 피하고 있다”며 “감시·제재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와 지자체 측은 속수무책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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