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9일로 취임 100일을 맞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자 통신기록 수색, 출입기자단 배제, 방송사 면허 취소 압박 등 전방위적 언론 길들이기에 나서고 있다. 1기 행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비판적인 언론엔 노골적인 통제와 탄압을 강화하면서 미국 언론 자유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자신에 비판적인 언론사들에 대대적인 보복 조치를 감행했다. 시작은 미 국방부였다. 국방부는 1월31일 ‘연례 언론사 순환 프로그램’을 시행한다며 뉴욕타임스, NBC, NPR, 폴리티코 등 주요 언론사들에 기자실 퇴거를 통보했다. 대신 이 자리를 타블로이드지인 뉴욕포스트와 케이블 방송사 원 아메리카 뉴스 네트워크, 인터넷 매체인 브레이트바트 및 허핑턴포스트로 채운다고 밝혔다. 허핑턴포스트를 제외한 3곳은 소위 ‘친 트럼프 성향’이라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2월20일엔 백악관이 AP통신에 출입금지 조치를 내리는 일이 벌어졌다. ‘멕시코만’을 ‘미국만’으로 부르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AP통신이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AP통신은 이후 백악관 오벌 오피스는 물론 전용기 에어포스원 취재까지 제한 당했고, 결국 소송을 제기해야 했다. 4월8일 워싱턴DC 소재 연방지방법원은 수정헌법 제1조를 위반한 조치라며 백악관이 즉각 출입금지 조치를 해제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백악관은 항소를 제기하며 언론 통제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백악관의 출입기자 탄압은 AP통신에 그치지 않았다. 2월25일엔 기자단을 현대화하겠다며 백악관 기자협회 대신 공동취재(풀·pool) 기자단을 직접 선정하겠다고 나섰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어느 매체가 정기적으로 대통령을 가까이서 취재할지 백악관 공보팀이 결정할 것”이라며 “기존 매체가 빠지고 일부 스트리밍 서비스가 풀기자단 그룹에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은 이미 1월29일부터 ‘1인 미디어’ 등에 출입 및 브리핑 취재를 허용한 바 있다. 백악관은 이에 더해 4월15일 AP, 로이터, 블룸버그 등 주요 뉴스 통신사들의 풀기자단 자동 배정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예산 삭감에 VOA 직원 무더기 휴직·해고... 방송사 면허 박탈 주장도
트럼프 행정부는 취재 배제뿐 아니라 예산과 면허 등 언론사의 근간을 약화시키는 조치도 시행했다. 3월14일엔 반미 선전을 퍼뜨리는 미국의소리(VOA) 등을 해체하겠다며 이들을 관할하는 미국글로벌미디어국(USAGM)을 사실상 폐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로 인해 1000여명의 기자를 포함 1300명 이상의 VOA 직원들이 휴직 또는 해고를 통보받았고 개국 83년 만에 처음으로 방송이 중단되기도 했다. 트럼프는 이에 그치지 않고 NPR과 PBS에 대한 예산 지원 중단 및 AP, AFP, 로이터 등 주요 통신사와의 계약도 중단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은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산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규제 압박도 가하고 있다. 4월14일엔 CBS의 프로그램 ‘60분(60Minutes)’이 자신을 비판하는 내용을 방송한 데 격분하며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면허를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FCC는 몇 달간 CBS, ABC, NBC 등 트럼프에 적대적인 언론사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이런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4월22일엔 CBS의 베테랑 프로듀서 빌 오언스가 자진 사임하는 일도 벌어졌다. 빌 오언스는 “프로그램과 시청자에게 옳은 것이 무엇인지 독립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며 “프로그램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물러난다”고 언급했다.
정부 비판 기자에 "즉각 해고" 주장... 제보자 색출 위해 기자 통신기록 조회도
트럼프 대통령은 개별 언론인과 언론사를 대상으로 한 공격성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2월7일엔 정부 비판 칼럼을 쓴 워싱턴포스트 기자를 향해 “즉각 해고돼야 한다” 주장했고, 3월14일엔 CNN과 MSNBC를 향해 “그들은 정말 부패했고 불법”이라며 강한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4월28일엔 ABC,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보도를 두고 “가짜뉴스 언론사에서 나온 가짜 여론조사”라며 언론에 대한 불신감을 조장했다.
우려스러운 점은 이런 적대감이 단순 발언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자 개인에 대한 수사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 법무부는 4월25일 언론사가 민감한 내용을 보도할 경우 제보자 색출을 위해 기자들의 통신 기록을 조회할 수 있다는 공문을 하달했다. 1기 행정부 때도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 기자들의 전화 사용 기록과 메일을 수색해 제보자 색출을 시도했는데 이를 부활시킨 것이다.
미국 언론은 즉각 반발했다. 맷 머리 워싱턴포스트 편집총국장은 성명을 통해 “정부의 기자 소환 및 통신기록 수색 시도는 독립적 언론에 필요한 헌법적 권리를 위협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언론 자유를 위한 기자위원회’의 브루스 브라운 대표도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보도는 기자들이 기밀 취재원의 신원을 보호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기자 보호 조치는 단순히 기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 국민 전체를 위한 것”이라고 반대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언론 탄압 조치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언론 탄압 방식이 단순한 개별 사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패턴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트럼프 행정부의 언론 정책이 어떻게 전개될지, 이에 대한 미국 언론계와 시민사회, 사법부의 대응이 미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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