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가 자사 공동주최 마라톤 행사를 비판한 고정 필진의 칼럼 게재를 거부하면서 검열, 통제에 민감하게 맞서야 할 언론이 비판 목소리를 가로막았다는 지적이 언론·시민단체로부터 나왔다. 당초 칼럼은 커플을 ‘남녀’ 혼성 등으로만 한정한 마라톤 참가대상 기준이 차별적이라며 개선을 요구했었다.
경기지역 시민단체들이 모인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한 경기도 만들기 도민행동’과 언론개혁시민연대(이하 도민행동)는 4월29일 <경인일보, 화성효마라톤 ‘차별’ 감추려 비판의 목소리마저 ‘통제’ 하는가>란 공동성명을 냈다. 5월10일 개최가 예정된 ‘제26회 화성효마라톤대회’의 마라톤 참가 기준에 대해 시민단체와 언론보도 등에서 잇따라 지적이 나온 게 시작이다. 해당 대회는 참가신청 대상을 ‘커플런’은 남녀로, ‘가족런’은 3~5인으로 규정했는데 한부모 가족, 동성 연인 등 “다양한 가족 형태와 커플 관계는 (중략) 참가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 셈”이란 비판이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경인일보가 해당 행사 등을 비판한 고정 필진의 칼럼을 싣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화성시체육회, 경인일보, 화성시육상연맹이 주최·주관하고 화성특례시, 화성서부경찰서, 화성도시공사, 화성시자원봉사센터가 후원한 해당 마라톤대회에 대해 2022년부터 경인일보에 ‘안은정의 문득, 인권’ 코너 연재를 해온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가 비판칼럼(28일자 예정)을 보냈는데 게재가 거부된 것이었다.
안 활동가는 4월30일 본인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참가 대상의 규정이 누군가를 배제하고 차별적인 요소가 있기에 문제를 제기하는 기고글을 작성했다. (중략) 기고글에 경인일보와 주최하는 마라톤 행사의 명칭이 있다는 이유로 게재되지 못했다”고 경위를 전했다. 원고 송고 후 경인일보 측으로부터 ‘경인일보’, ‘화성효마라톤’을 ‘경기지역 어느 언론사’, ‘한 마라톤’으로 수정하면 어떠냐는 제안이 있었지만 이를 거절하자 “편집국 논의 끝에 개재가 어렵게 됐다. 다만 지적해주신 부분은 내년 행사 때 검토 하도록 하겠다. 모쪼록 양해부탁드린다”는 답을 받았다는 설명이었다.
안 활동가는 위 글에서 “저는 언론사가 사회적 약자, 소수자, 몫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더 깊이 듣고, 차별과 혐오를 멈추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인일보는 오히려 차별을 외면하고, 검열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저는 이런 경인일보의 방식에 문제제기 한다”며 앞으로 기고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도민행동은 앞선 성명에서 “경인일보와 주최하는 화성 효 마라톤의 차별적인 부분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자의적으로 검열하고 통제한 것”이라며 “검열과 통제에 가장 민감하게 맞서야 할 언론사가 오히려 자유로운 비판의 목소리를 가로막고 있는 상황이다. (중략) 경인일보는 지역사회의 여론 형성에 기여해야 하는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비판적인 여론을 차단하고 입맛에 맞는 목소리만 수용하는 것이 경인일보의 입장인가”라고 비판했다.
조영상 경인일보 편집국장은 4월30일 통화에서 “그런 문제가 있단 걸 기고문을 통해 알게 됐다.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다 제 판단 하에 ‘경기도 한 언론사로 바꾸면 안 되겠냐’ 제안을 했고, 담당 데스크를 통해 어렵단 얘길 들었다. 당일(일요일) 오전 편집 마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단은 보류하자 했는데 안 넣은 게 됐다”고 설명했다.
조 편집국장은 “회사 행사를 비판할 수 있지만 외부 기고로 먼저 되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회사 내에 자정 능력이 있고 통상 민실위나 독자위원회 등을 통해 하게 되는데 당장 마감을 해야 했고 논의가 어려운 일요일이었다. 일반적으로 편집국장 혼자 (회사 행사를 비판하는 기고를) 그렇게 내보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고 본다”고도 했다. 이어 “기자협회장, 노조위원장 등을 저도 해본 입장인데 왜 소수자나 인권 문제에 대해 모르겠나. 그걸 무시한 차원이 아니라 마감을 앞두고 급박한 상황에서 하루이틀 생각해보고 결정하자 판단을 한 건데 결과적으로 이렇게 돼 저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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