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 '매우 우수' 평가했던 방통위, 해킹 사태엔 '침묵'

발생 열흘째 보도자료·스미싱 예방 등 안내조차 없어

  • 페이스북
  • 트위치

2022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에피소드에선 방송통신위원회가 ‘피고’로 등장한다. 온라인 쇼핑몰 해킹으로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건과 관련해 방통위가 부과한 과징금이 과하다며 해당 쇼핑몰 측이 방통위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주된 내용이다. 사실 개인정보 보호 관련 업무는 2020년 8월5일부터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 이관됐기 때문에 방통위가 과징금을 매기고 역으로 소송까지 당한다는 설정은 잘못됐지만, ‘국민 드라마’를 통해 방통위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효과만큼은 톡톡히 거뒀다고 할 수 있다.

방통위, 지난해 SKT에 이용자 보호 ‘매우 우수’ 평가

유영상 SK텔레콤 사장이 4월25일 오전 서울 중구 SK텔레콤 T타워에서 유심 해킹 피해 사태 관련 언론설명회를 열고 고개숙여 사과를 하고 있다. /뉴시스

그런데 최근 실제로 벌어진 해킹 사고에선 방통위가 존재감을 전혀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이번 SK텔레콤(SKT) 유심 해킹은 SKT 스스로도 “역대 최악”이라고 인정한 초유의 사건이다. 유심정보 유출도 문제지만, 이후 SKT측 대응에 이용자 불만이 쏟아지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그러나 방송·통신 이용자 보호 등을 주 업무로 하는 방통위는 해킹 사실이 알려진 지 열흘째가 되도록 관련 보도자료 하나 낸 사실이 없다. 4월22일 SKT 내부 시스템에 해커가 침입했다는 언론 보도(이데일리)가 나오고 한 시간쯤 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개인정보보호위가 SKT측으로부터 신고를 접수받고 조사에 즉시 착수했다고 밝힌 것과 대비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4월27일 “이번 사건에 따른 국민들의 불편과 불안이 조속히 해소될 수 있도록 해당사업자의 조치(유심보호서비스 가입, 유심교체 등)의 적정성을 면밀히 점검하고, 과기정통부를 중심으로 방통위, 개보위 등 관계부처는 조속히 국민 불편 해소에 전력을 다하기 바란다”고 긴급 지시했으나, 역시 방통위는 무슨 조치나 점검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밝힌 바가 없다.

방통위는 전기통신사업법상 이용자 보호 의무를 지는 기관이다. 해마다 전기통신사업자의 △이용자 보호 업무 관리 체계의 적합성 △피해 예방 활동 실적 △이용자 의견 및 불만 처리 실적 등 이용자 보호 업무를 평가하는 것도 방통위 업무인데, 올 3월 공개된 2024년도 조사에서 SKT는 이동통신 3사 중 유일하게 ‘매우 우수’ 등급을 받았다.

해킹 사고와 관련해 국회 과방위 회의가 열린 4월30일, 방통위는 이진숙 위원장이 미국 출장 중 브랜든 카 미국 연방통신위원장을 만나 공공안전·이용자 보호 방안 등을 논의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방통위

그런 SKT가 해킹 사고를 막지 못한 것은 물론 후속 조치에서도 미흡한 대응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데, 방통위는 해킹 사실이 알려진 다음 날 아무 일 없는 듯 ‘2025년도 전기통신사업 이용자 보호업무 평가계획’을 심의·의결했다. 이날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플랫폼과 인공지능 등 급속한 기술 발전으로 우리 삶이 편리해진 동시에 새로운 유형의 이용자 피해 발생 가능성도 높아졌다”면서 “이용자 보호업무 평가를 통해 이용자가 안전하게 디지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매우 우수’ 평가를 받은 SKT의 해킹 사고로 속출하는 이용자 불만에 대해선 언급도 없었다.

해킹 사태 언급 없이 위원장 미국 출장 보도자료만

심지어 이진숙 위원장은 한덕수 권한대행이 ‘국민 불편 해소 전력 대응’을 지시한 다음 날 예정대로 미국 출장을 떠났다. 그리고 28일과 30일, 이 위원장의 미국 출장과 관련해서만 두 건의 보도자료를 냈다.

30일 SKT 유심 해킹 사태 등을 다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회의에서 최민희 위원장은 주무 부처 수장인 이진숙 위원장이 미국 출장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은 것과 관련, 유감을 표명하며 “해외 출장 나가시기 전에 SKT 사태가 터졌다. 사실 이것은 해외에 있다가도 들어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예정된 출장을 취소하기 어렵다면, 출국 전까지 대처는 어땠을까. 해킹 사실이 알려진 지 나흘째인 25일, 유영상 SKT 대표이사가 사과 기자회견을 열어 ‘전 고객 유심 무상 교체’를 약속한 그날 저녁, 이진숙 위원장은 페이스북에 ‘아직도 세월호?’라는 제목으로 서민 단국대 교수가 일요서울에 기고한 글 전문을 게재했다. 얼마 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세월호 참사 당시 MBC 보도본부장이었던 이진숙 위원장에 책임을 물은 것을 두고 MBC 등 ‘좌파’를 비판하며 쓴 글이다.

이 위원장은 그보다 나흘 전엔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속보를 2분 만에 페이스북에 공유하기도 했다. 그 사이 SKT 해킹과 관련해 공유하거나 작성한 글은 없었다.

SKT가 해킹 사고 사과 기자회견을 연 25일, 이진숙 위원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물론 방통위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건 아니라고 한다. 김태규 방통위 부위원장은 30일 국회 과방위 회의에 나와 “65세 이상의 유심보호서비스 강제 가입과 관련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과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통위 관계자도 “과기정통부 중심으로 범부처 차원의 대응을 하고 있고 저희가 할 일들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역시 이번 사태의 피해자인 국민에게는 전달된 사항이 없다. 위약금 면제 문제는 물론 스미싱 등 관련 범죄 예방을 위한 안내조차 이뤄진 게 없다. 4월10일 과기부, 통신 3사 등과 함께 불법스팸 문제를 점검했다고 보도자료를 낸 거나, 산불 특별재난지역의 피해 가구가 위약금 없이 초고속인터넷을 해지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고 알렸던 것과 다른 행보다.

임기가 열흘 이상 남은 KBS·방송문화진흥회 이사 후임을 뽑는 게 “중요한 일”이어서 취임 당일 한 시간 만에 지원자 83명의 서류를 검토해 추천·임명까지 속전속결로 처리했던 이진숙의 방통위. 2300만 이용자가 불안에 떠는 “역대 최악”의 이 해킹 사태에 대해 이진숙 위원장은 귀국 후 어떤 말을 내놓을까.

김고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