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은 수익이 안 될까요? '본질'은 그 안의 콘텐츠"

[인터뷰] 창간 10년 로컬 매거진 'iiin' 고선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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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독이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해외 출장을 많게는 한 달에 다섯 번씩 다녔다. 마감은 고됐다. 제 돈 들이지 않고 여행 다니며 월급도 받는 여행기자는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뭘 모른다며 깔깔 웃었다.

고선영 기자는 여행‧레저 전문지 두 곳에서 일한 지 10년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서울에서 가장 먼 곳으로 도망갔다. 2014년 4월, 제주에서 호기롭게 로컬 매거진 ‘iiin’(I’m in island now, 인)을 만들었다. ‘망할 거’라던 iiin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지역 잡지가 됐다. 이달 창간 10주년을 맞았다. 5일 고선영 대표를 제주도 서귀포시 산방산 아래 사무실에서 만났다.

고선영 iiin 대표. 2014년 4월에 나온 창간호를 들고 있다. /고선영 제공

제주가 몰랐던 제주 이야기

“제주 사람들도 저희 매거진을 읽고 신기해해요. 지역 사람이 모르는 지역 이야기가 많거든요. 어느 지역이나 같아요. 저는 서울에 살면서 한강 유람선을 타본 적이 없어요. 평생 서울에 살았더라도 63빌딩 수족관에 가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iiin은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주제가 뭘까 굳이 고민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들이 궁금했던 이야기를 담는다. 제주는 놀랍고도 숨은 이야기가 가득했다. 종적을 감춘 ‘토종’ 흑돼지 종자를 찾아 나섰고, 폐업하고 잊힌 유원시설을 다루기도 했다. “있는지 없는지도 몰라서 몰랐던 이야기, 그걸 찾아서 알려주는 역할을 해요.”

iiin은 계절마다 나온다. 한 부에 130쪽, 1만 부를 찍으면 완판된다. 창간 첫해부터 그랬다. ‘육지’와 제주에서 절반씩 팔린다. 이미 제주에 사는 사람도 읽는다는 뜻이다. “저도 아직 제주를 여행하는 ‘여행 생활자’라고 생각해요.” 제주에서 살거나 살지 않는, 여행하거나 정착한 모두 iiin의 독자다.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있는 '사계생활'. 옛 지역농협 건물을 개조한 이 건물 2층에 iiin 사무실이 있다. 1층에 운영하던 카페는 정비공사 중이다. 왼쪽에 있는 작은 건물은 iiin의 로컬푸드 체험 프로그램 공간. /사진=박성동 기자

준비된 제주, 대표 매거진 된 ‘iiin’

이만큼 성장한 건 ‘운’이라고 고 대표는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승부를 볼 ‘때’는 알고 있었다. 고 대표는 2013년 창간 준비를 시작했다. 연간 제주 여행객이 1000만명이 되던 때였다.

“여행 기자를 했기 때문에 1000만명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었죠. 하와이나 오키나와 방문자가 800만명 정도였거든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송객을 나르는 항공기 노선이 ‘김포-제주’에요.”

제주는 준비가 돼 있었다. 이때쯤 올레길이 유명해지면서 마을 구석구석의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걷는 여행’이 대세가 됐다. 제주의 문화와 역사, 사람과 삶이 ‘콘텐츠’로 변모할 준비가 됐다. 작은 마을에도 곳곳에 작은 서점들이 들어섰고, iiin의 판매 통로가 되어줬다.

경쟁지도 없었다. 고 대표는 해외출장 때마다 그 지역에서 나오는 출간물을 살폈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소도시라면 그곳을 대표하는 매거진도 있기 마련이었다. 제주에는 그런 매체가 없었다. 10년 동안 iiin이 제주의 대표 매거진이 된 셈이다.

iiin 지난해 겨울호. 40번째 매거진인 올해 봄호는 4월 중 출간한다.

10년 수익 가능케 한 ‘본질’은 매거진

iiin에는 광고가 없다. 앞표지부터 뒤표지까지 예쁜 그림과 사진만으로 방해받지 않고 산뜻하게 읽을 수 있다. 한 부 가격도 6900원으로 인쇄비용을 조금 넘는다. 매거진을 팔아 수익을 내진 않는다.

“보통 돈이 안 되면 매거진에 투자를 안 하는데요, 저는 본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고 대표는 매거진에 나온 이야기를 ‘만질 수 있는 무언가’로 활용했다. 기사로 다룬 식재료로 밀키트나 술을 만들고 체험 상품도 마련했다. 좋은 상품을 위해 ‘본질’인 매거진의 내용에 더 충실해야 하는 것이다.

2020년 봄호에서 다룬 ‘한림수직’은 인기상품이 됐다. 한림수직은 아일랜드에서 온 선교사 임피제(맥그린치) 신부가 1959년 세운 회사였다. 성당에서 만든 목장에서 양을 길렀고, 일자리가 없던 여성들에게 양털을 주고 집에서 스웨터 짜는 법을 알려줬다. 재택직원이 한때 1300명까지 늘었지만 중국산 모직에 밀려 2005년 문을 닫았다.

iiin을 통해 다시 상품이 된 한림수직 스웨터.

한림수직을 추억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참에 전국 각지에서 고이 간직한 한림수직 상품을 모아 전시회를 열었다. 이듬해에는 목장과 협업해 아예 회사를 되살렸다. 손뜨개 스웨터는 내년 생산분까지 예약판매가 완료됐다.

iiin은 앞으로 1년에 2회 발행하고 분량은 두 배로 늘린다. 한 이야기에 더 깊게 들어가겠다는 뜻이다. 해외 판매를 위한 영문판도 만들 계획이다. iiin은 여전히 콘텐츠가 최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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