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TV 새 사장, 파견감독관 될건가 TV 리더 될건가"

노조, 25일 사옥에 대자보 게시
인력 퇴사, 처우, 자금유출 등 지배구조 문제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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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말 하나 없다. 신문에서 온 분들은 TV매체를 위한 비전을 제시해 왔나. 내부거래나 계열사 광고집행 등으로 TV매체에 쓰일 자금이 큰집으로 넘어가는데 안타까웠다.” “허리층 기자와 PD 탈출 러시에도 손 놓고 있다.” “TV인력을 열등하게 보는 구태적 시각이 여전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경제TV지부(지부)가 3월25일 사옥 3층에 붙인 대자보를 통해 대주주인 한국경제신문과 현 지배구조에 대해 성토한 뒤 나온 내부 반응이다. 3월22일 주주총회에서 현승윤 한국경제신문 전무이사(경영지원실장)가 한국경제TV 새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신문에서 사장을 정하는 구조에서 누적된 여러 문제를 거론한 이날 성명은 부정적인 사내 정서를 전하며 “신임 CEO는 앞선 CEO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경제신문에서 온 파견 감독관이 될 것인가, 한국경제TV의 '참된 리더'가 되고 싶은가” “작금의 착취 구조를 지양하고 한국경제TV와 한국경제TV 직원들의 성장과 더 나은 내일에 우선 전념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라고 물었다.

한국경제 홈페이지. 주요 계열사 한국경제TV가 소개돼 있다.

A 기자는 “새 사장이 구조적인 문제를 알아야 하고 관계설정을 새로 해야 한다는 요구”라고 성명을 평했다. 그는 “돈을 못 버는 회사가 아닌데 복지나 처우 개선은 후순위로 밀리고 회사가 번 돈은 계열사를 우선순위로 쓰인다. 회사가 어느 방향으로 갈지 답을 못주고 나는 어떻게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구성원들이 회사 비전을 보긴 어렵고 결국 줄줄이 퇴사하는데 이건 조직 영속성에 위기”라며 “경영진이 장부를 보며 느끼는 것과 일선 직원들의 느낌은 다르다. 신임 사장은 물론 권한을 지닌 김정호 한국경제신문 사장도 그룹 차원에서 전향적으로 봐야할 문제”라고 했다.


실제 성명은 현 지배구조 하 오랜 기간 쌓인 문제를 담았다. 2020년 3월부터 ‘신방 시너지’, ‘경영상 판단’을 사유로 한국경제TV의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사옥 입주가 추진됐고, 한국경제TV는 보유한 상암 사옥으로 이전을 계획하다 결국 “중림사옥 공실을 막기 위해 우리 집 두고서 임대료 비싼 사옥으로 이전”하게 됐다. 이후 시청률이 강조되고 제작비 감축한 기조는 이어졌다. 출연진 내려꽂기 등 제작자율성 침해도 비일비재했고 직원 처우개선 노력은 미진했다는 비판도 담겼다. 특히 지난해 매출 813억원, 영업이익 50억원 등 성과를 거두고도 전년보다 영업익(83억원)이 감소했다는 이유로 임·단협에선 “직원들의 희생만을 강하게 요구”하고, 반면 주주 배당은 역대 최대로 책정한 행태가 거론됐다.


계열사 플랫폼 광고 등 내부거래비용이 연 20~30억원에서 80~90억원까지 늘어난 “모회사의 착취”를 언급하며 지부는 성명에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고 했던가. 이쯤 되면 우리 한국경제TV는 한경미디어그룹의 현금 자판기인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며 “사내유보금 또한 계열사 지원에는 수백억 원 성큼 내어주면서도 정작 우리 자신을 위해서는 단 한 푼 쓰이지 않고 있는 현실 또한 개탄할 노릇”이라고 비판했다.

한국경제TV 홈페이지.

구성원 개인 단위에서 이는 ‘탈출’의 형태로 실현됐다. 최근 3~4년 새 다수 기자·PD가 타 매체, 기업홍보팀으로 이직했고, 5~10년차 인력의 자리를 2~3년차가 채우며 공채 몇몇 기수는 아예 증발한 게 현재다. B 기자는 “처우 문제가 본질적이겠지만 기자로서 한계를 느끼는 게 크다. 투자·돈 버는 콘텐츠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걸 중심으로 가다보니 ‘내가 기자인가’ 혼돈이 오고, 경제의 잘못된 부분을 꼬집는 것엔 박한 평가가 나오니 성장한 자신이 안 보이는 것”이라며 “방송 이해도가 떨어지는 경영진이 ‘신문 기자는 매일 발제하는데 뭐하나’, ‘영상기자는 회사 앉아있다가 30분 인터뷰 따는 거 아니냐’는 인식을 보이는데 이 시대에 TV에서 배울 생각 없이 가르칠 대상으로 보는 게 답답하다”고 했다.


C 기자는 “회사가 25년 됐는데 TV출신 대표가 없었고 신문에서 꽂는 방식이 이어져왔다. TV 이해도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1~2년은 그냥 흐르고 모르는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제일 무서운데 그 반복이었다. 전임대표 땐 경제매체에서 부동산부를 없앴다가 1년만에 다시 부활시키는 일도 있었다”며 “대표들 개입이 적었을 때 TV가 제일 잘 됐고 ‘인볼브’ 안 하는 게 도와주는 거란 게 일반적 정서”라고 했다.


노조는 현재 진행 중인 임·단협, 새 사장과 상견례 자리 등 지속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기조다. 임상우 언론노조 한국경제TV 지부장은 “대자보를 통해 여러 문제와 정서를 전했고, 신임 대표와 ‘좋은 방향으로 바꿔나가자’는 인사 정도를 나눈 상황”이라며 “저희는 오픈돼 있고 대화를 이어 나가겠다는 거고 회사가 제시하는 발전적 플랜에서 할 몫이 있으면 하겠다는 입장이다. 향후 심도 있는 얘기가 오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국경제TV 사측은 2일 이에 대해 “방송 미디어 환경 급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TV본사 사옥을 신문사 빌딩으로 옮기면서 사용 면적이 늘었고 그에 따라 불가피하게 비용이 증가함에 따른 것”이라며 “TV에 대한 모회사의 착취는 노조의 일방적 주장”이란 입장을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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