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위협'을 감당해야 하는 시대

[언론 다시보기]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1988년 7월, 노태우 대통령은 정기승 전 대법관을 대법원장으로 지명했다. 하지만 우리 국회는 이 임명에 동의하지 않았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순간이었다. 그가 유신정권 및 제5공화국 아래 보여준 군사정권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가 문제가 되었다.


정기승 전 대법관 지명은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는데, 지명 한 달 전인 6월에 민주적인 사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소장법관들의 서명운동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민사지법의 법관들이 중심이 되어 “민주화 열기의 와중에서도 사법부가 아무런 자기반성의 몸짓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국민이 사법부를 신뢰할 수 있도록 대법원을 개혁하자는 성명서를 낸 상황이었다.


거의 모든 평판사 직급의 법관이 참여한 이 성명은 충격을 넘어 법조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혁신적 사건이었다. 이에 김용철 대법원장은 평판사들을 탓하는 대신 이들이 만들어갈 미래를 격려하며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임명된 이가 군사정권에 헌신한 전력이 있는 정기승 전 대법관이었으니 큰 반발을 살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이 사태를 지켜본 중앙경제신문 사회부장 오홍근 기자는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라는 칼럼을 ‘월간중앙’ 8월호에 게재했다. 오 기자는 이 사건이 군사문화에 뿌리를 둔 권력이 사법부와 입법부를 대하는 시각을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군사문화에서 보자면 대통령이 임명권을 가진 대법원장 자리를 두고, 평판사들이 서명운동을 벌이고 국회가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주장이었다.


1988년 8월7일, 오 기자는 출근길에 습격을 당했다. 두 명의 청년이 ‘회칼’로 오 기자를 난자했다. 다행히 목격자인 아파트 경비원 덕분에 목숨을 잃진 않았다. 목격자의 진술에 따른 경찰 조사 결과 범행을 저지른 이들은 정보사령부 소속의 군인들이었다. 군사정부 아래, 권력이 ‘회칼’이라는 조폭이나 씀 직한 도구로 언론인을 습격했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35년이란 시간을 훌쩍 넘어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이 사건을 다시 불러냈다. “MBC는 잘 들어. 내가 정보사 나왔는데 1988년에 경제신문 기자가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허벅지에 칼 두 방이 찔렸다.” 지난 14일, 방송사 기자들과의 점심 식사 자리에서 MBC 기자들을 향해 쏟아낸 말이다. MBC 기자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아니 함께 식사 자리에 있던 다른 방송사 기자들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MBC 기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라 여겼을까?


흔히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말한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며, 정치가이기도 했던 에드워드 불워-리턴(Edward Bulwer-Lytton)이 자신의 희곡 ‘리슐리외’에서 쓴 말이다. 실제 불워-리턴은 언론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진정 펜은 칼보다 강할까?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말의 힘은 폭력 앞에 무력하다’고 단언한다. 폭력은 사람들을 침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 용기를 가지고 말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특히, 그런 폭력의 사용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일수록 말은 힘을 잃는다.


이런 이유로 아렌트는, 정치가 서로를 설득하는 일이라면 폭력이야말로 가장 반정치적이라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에 폭력이 설 자리를 내주게 되면 공론 영역이 망가지게 되고, 공론 영역이 망가진 곳엔 억압을 동반한 어둠의 시대가 찾아온다고, 전체주의는 그런 공론 영역이 완전히 사라진 곳이었다고 말이다.


실제 불워-리튼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했을 때, 그 맥락은 “전적으로 위대한 사람들의 지배하에서는”이란 전제조건이 달려 있었다. 그러니까 “전적으로 위대한 사람들의 지배하에서는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다.


과거 ‘군사정권’을 뒷받침했던 전력을 가진 ‘검사들의 정권’이어서일까? 언론이 본연의 임무인 권력의 감시와 비판을 수행하려면 다시 펜이 칼의 위협을 감당해야만 하는 시대가 왔다. 언론인들은 이에 맞서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더하여 이런 언론인과 함께 하는 ‘위대한 사람들의 시대’가 다시 빛을 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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