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 400명 대량 해고, 오세훈의 '약자와의 동행'

[언론 다시보기] 강혜민 비마이너 편집장

강혜민 비마이너 편집장

중증발달장애인 희자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노동자다. 이 사업은 2020년 7월, 서울시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탈시설한 최중증장애인, 노동 경험이 없는 중증장애인을 우선 고용하는 일자리다. 이들은 세 가지 직무(권익옹호, 문화예술, 인식개선)를 통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홍보하는 일을 해왔다.


한평생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살다가 마흔 살에야 탈시설한 희자는 한글을 더듬더듬 읽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그의 장애는 이 일을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증발달장애인인 자신이 여기 있음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그의 노동이기에 그는 생애 처음으로 존재 그 자체를 부정당하지 않고 환대받을 수 있었다. 그는 악기 연주, 춤, 노래 등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나갔다. 다양한 사람과 만나면서 사회적 관계를 확장하고, 여러 무대에 서서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로 장애인의 권리를 외쳤다.


그는 주 20시간을 일하고 매달 100만원 남짓한 월급을 받는다.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되는 장애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임금’인 최저임금이 그에게 주어졌다. 그 덕에 탈시설한 이후 희자의 삶은 제법 만족스럽고 윤택하다. 자신이 쓸모 있는 노동을 한다는 생각에 자존감도 많이 올랐다.


변한 건 희자만이 아니다.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그 시간을 만들어가는 비장애인 강사와 조력자도 점차 깨달아 갔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비발달장애인 중심의 언어 소통을 강요하며 발달장애인의 존재를 삭제해왔는지 말이다.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활동하는 창현이 말했다. “일자리에 참여하는 분들의 인생이 달라지고, 변화된 삶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며 성취감을 느껴요. 퇴근하면 저도 지역사회에 사는 일반 시민이 되는데, 시민으로서 이 사회가 다양하게 채워진다는 게 좋더라고요.”


이 일자리의 탁월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자본의 이윤 창출이 아닌, 사회적 가치 창출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이들은 “우리는 권리를 생산한다”면서 “세상을 바꾸는 노동을 한다”고 말한다. 언뜻 낯설어 보이지만 우리 사회에 언제나 존재해왔던 일들이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중심사회에 맞서 지하철을 가로막아 엘리베이터와 저상버스를 만듦으로써 우리 사회는 진일보하지 않았던가. 그러한 공적 가치 창출을 노동으로 인정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책임지는 것이 바로 권리중심공공일자리다.


이는 지난 4년간 장애계가 집중해서 알려온 주제였지만 출근길 지하철 투쟁만큼 이슈가 되지 못했다. 단, 오세훈 서울시장과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때면 보수언론지에 몇 차례 오르내렸다. 기사의 외피를 입은 허위사실들이 진실인 양 행세하며 인터넷을 돌아다녔고, 최근 서울시는 “그것이 여론”이라며 내년에 일자리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노동자들의 직무가 집회·시위·캠페인에 치중되어 있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서울시는 대신 ‘장애유형 맞춤형 특화일자리’를 도입한다고 했지만, 여기에 최중증장애인이 할 수 있는 직무는 없다. ‘일할 수 있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보건복지부 장애인일자리의 재탕일 뿐이다.


내년에 희자와 같은 중증장애인 400명이 일자리를 잃는다. 이것이 오세훈 시장이 말하는 ‘약자와의 동행’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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