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부터 자르는 게 김유열 사장이 말하던 '혁신'인가"

EBS 청소노동자 해고 한달째, 지지·연대 기자회견 열려…"노조와 대화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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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고용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용역업체가 바뀌어 고용 승계를 요구한 것뿐인데 해고했다.”


“EBS가 사회적 약자인 미화노동자 임금으로 경영적자를 얼마나 충당하려는지 궁금하다.”

경영적자를 이유로 청소노동자를 해고하고 부당노동행위를 방치하는 EBS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8일 일산 EBS 사옥 1층 로비에서 열렸다. 이날은 EBS에서 6년을 일해온 미화노동자 3명이 해고(고용승계불가) 통보를 받은 지 꼭 한 달째 되는 날이다. 이들은 일방적인 인원 감축 등에 반발해 노조(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지부 EBS분회)를 만들고 집행부(분회장·부분회장·사무장)를 맡은 지 하루 만에 일터에서 쫓겨났다.

공공운수노조와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공동 주최한 EBS의 청소노동자 해고 규탄 기자회견이 8일 오전 일산 EBS 사옥 1층 로비에서 열렸다. (언론노조)

노조 집행부는 해고되고, 남은 노동자들은 줄어든 인력과 근무시간에 동일한 업무범위를 소화하느라 더 힘들어졌다고 호소한다. 그럼에도 이들 20여명 미화노동자들은 매일 점심시간 식사도 거른 채 1층 로비에서 함께 피켓을 들고 인원감축 철회와 전원 고용승계를 촉구하며 한 달째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은 지지와 연대의 의미를 담아 공공운수노조와 전국언론노동조합, 지역 시민사회 등이 공동으로 주최, 참여해 마련됐다.

“노조 탄압하는 교육방송, 국민이 원하겠느냐”

이날 발언에 나선 해고 노동자인 김민숙 EBS분회 부분회장은 “6년 동안 오를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임금 동결에도 묵묵히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해왔는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이런 고통을 주는지 분노하게 만든다”면서도 “지금 우리 상황을 꽃샘추위라, 곧 끝날 추위라 말하고 싶다. 우리는 해낼 것이고, 이겨낼 것”이라고 말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세계테마기행’, ‘다큐프라임’ 등을 성공시킨 유능한 PD이자 기획자 출신인 김유열 EBS 사장의 저작 <딜리트>를 언급하며 운을 뗐다. 윤창현 위원장은 “책에는 혁신하려면 기존 관행을 깨야 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새로 만들면서 내세웠던 광고에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는 문구를 썼던 게 기억난다”면서 “그런데 김유열 사장은 EBS가 맞닥뜨린 경영 위기에 닳고 닳은 악덕 기업이 행하는 뻔한 수법을 썼다. 가장 약하고 낮은 곳에 있는 노동자의 목줄을 쥐고 잘라내는 뻔한 수법으로 EBS를 혁신하겠다는 것인가. 그게 혁신인가”라고 물었다.

이어 “그래서 적자 해소가 안 되면 그다음엔 누구를 자를 거냐. 당신과 제작 현장에 같이 있던 또 다른 동료의 목을 칠 것인가”라며 “본인의 글과 말을 배신하고 있는 김유열 사장이 지금 같은 경영 방침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자기 스스로를 EBS에서 딜리트(delete·삭제)할 시간이 곧 다가올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BS 사옥 앞 도로변을 따라 EBS의 청소노동자 해고를 규탄하는 현수막 수십개가 걸려 있다. (언론노조)

김영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장도 “경영지표 악화와 정권의 언론 탄압 속에서 방송사의 노동자들이 불안을 느낄 수 있지만 가장 약한 노동자, 취약한 노동자부터 잘라내고 몰아내는 게 구성원의 위기 대처 방법이 될 순 없을 것”이라며 “시청자들은 더 좋은 방송을 만들려는 노력을 응원하지, 우리 사회 투명인간인 청소노동자를 자르고 교육방송조차 노조 탄압을 하는 걸 원하진 않을 거다. 해고를 철회하고 노조와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고양시 공공기관 노조를 대표해 발언에 나선 백영범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노동조합 위원장은 “EBS는 공영방송이자 무너져가는 공교육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수많은 시간 많은 사람이 쌓아 올린 EBS의 명성이 소수 사람의 잘못된 판단으로 무너지는 걸 지켜볼 수 없다”며 “상식대로 잘 해결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청소노동자 다음은 또 다른 노동자가 표적이 될 것”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EBS 사내 구성원들의 손메모들. (김고은 기자)

그러나 EBS 사측은 청소노동자 감원은 경영상 필요에 따라 ‘최소한’으로 이뤄졌고, 해고가 아닌 계약 만료이며, 모든 것은 용역업체 소관이라고 책임을 미루고 있다. 청소노동자들과의 협상이 다른 용역업체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타협은 어렵다는 의사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정부가 공공부문에 준수를 권고한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에는 “용역근로자 고용규모가 감소되지 않도록 유의”하라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이를 근거로 공공운수노조와 언론노조는 “정부 100% 출자기관인 공영방송 EBS는 정부의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을 지켜 기존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를 보장하라”고 주장하며 즉각 ‘원청-용역업체-노동조합’과의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투쟁이 길어질수록 EBS 경영진의 무능은 만천하에 가감없이 드러날 것”이라며 “청소노동자 3명 해고로 재정악화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다음은 또 다른 노동자가 표적이 될 것이다. 끝까지 투쟁해 재정악화의 근본 책임자에게 그 책임을 묻는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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