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만연한 언론계 조직문화, 변화해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최근 퇴사한 4년 차 연합뉴스 기자가 직장 내 괴롭힘을 고발하는 사내 글을 남겨 화제가 됐다. 기자는 “폭언, 욕설, 인격모독. 전근대적 직장 내 괴롭힘 문화가 우리 회사에는 지금도 만연하다”며 “정신과 약을 처방받아 먹으며 다니는 동료들이 있고, 괴롭힘으로 우울증을 진단받았다거나 진지한 자살 충동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여럿에게 들었다”고 썼다. “이 회사는 더는 좋은 회사가 아니다”는 뼈아픈 지적도 있었다. 연합뉴스 내부를 향한 일침이었지만 다른 언론사 소속 기자들도 상당히 공감했다는 후문이다. ‘우리 회사 이야기인 줄 알았다’는 자조적 반응이 줄을 이었다.


언론계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빈번하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공치사일 수도 있겠지만, 언론이야말로 사회 곳곳에 숨은 괴롭힘과 갑질을 끈질기게 공론화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이끌어낸 주역 중 하나다. 당장 포털에 검색만 해봐도 모욕과 폭언을 일삼은 금융기관장을 직격 비판한다거나, 직장 내 괴롭힘 신고자를 되레 파면 조치한 공공기관을 꾸짖는 사명감 넘치는 기사들이 즐비하다. 지금도 많은 기자들이 기업은 물론 정부부처·공무원 조직, 교육·체육계, 정치권 등을 넘나들며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성역 없는 취재를 이어가는 중이다.


하지만 그토록 날카로운 펜 끝도 우리 안을 향할 때면 속절없이 무뎌진다. 외부의 사건에는 공분하면서 정작 내 옆자리의 동료, 심지어 본인이 괴롭힘의 대상이 되어도 함께 싸우기보다는 침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연공서열에 따른 상명하복 조직 문화가 단단히 뿌리내린 언론사 안에서는 개인의 의견도 자칫 항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사실, 나아가 징계 등 더 큰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우리를 침묵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불안과 침묵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동료도 최근 있었다. 슬프고 안타깝다.


이렇게 직장 괴롭힘이 위험 수위까지 치달았는데도 언론사들의 대응은 미온적이기만 하다. 최근 젊은 기자들의 줄지은 퇴사가 화두가 되면서 직장 내 괴롭힘의 온상으로 꼽히는 조직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반복적으로 나온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이런 종류의 문제 해결은 결국 경영진이나 조직 상급자의 강한 의지가 핵심 동력이라는 사실을 고려해볼 때 이제는 이런 질문을 해야 할 시점 같다. 혹시 많은 선배 언론인들은 후배들의 문제 제기를 그리 시급하게도, 중요하게도 여기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쩌면 후배들의 아우성을 그저 ‘MZ 세대의 흔한 불만’쯤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이제는 우리가 함께 근본적인 변화를 고민해야 할 때다. 리더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사후약방문 식의 단발성 제도 도입이나 개선보다는 잘못된 조직 문화를 전면적으로 들여다보고 재정비하려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언론 내부의 수직적 권력 구도가 유지되는 한 제 힘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별 구성원들의 의식 변화도 따라야 한다. 조직 문화를 바꿔 가는 일이 한두 사람의 노력으로 하루아침에 풀어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예컨대 중요한 취재를 한다는 이유로 자행됐던 수많은 무례함과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는 모욕적 언사, ‘까라면 까’라는 고압적 방식은 반드시 버려야 할 악습이다. 그와 더불어 구성원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노력도 해나간다면 좋겠다. 선배 기자는 존중받는 환경 속에서 성장해온 MZ 세대의 높은 감수성에 눈높이를 맞추고, 후배 기자는 선배의 업무적 엄격함을 열린 태도로 받아들인다면 서로 간의 불필요한 갈등도 해소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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