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저연차 줄퇴사… "정신과 약 처방 받기도"

[2018년 이후 입사자 11명 떠났다]
내부 "폭언·욕설·인격모독 만연"

조합원 성희롱·괴롭힘 설문 결과
72명 "유경험", 61명 "퇴사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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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께서 직시하셔야 할 것은 이 회사가 더는 좋은 회사가 아니라는 거다. 조직문화로 보나 처우로 보나 업계 최고가 아니고, 좋은 회사는 더더욱 아니다.”


지난달 31일 연합뉴스 노조 홈페이지 사원게시판에 올라온 한 퇴사자의 글로 연합뉴스 내부는 한동안 들썩였다. 만 3년 동안 연합뉴스 기자로 치열하게 일했지만,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게 된 이유를 털어놓은 글이었다. 해당 기자는 “폭언, 욕설, 인격모독 등 전근대적인 직장 내 괴롭힘 문화가 만연”하다며 “정신과 약을 처방받은 동료들도 있고, 괴롭힘으로 인해 우울증을 진단받았다는 이야기를 여럿에게 들었다”고 했다. 연합뉴스 구성원 50여명은 게시글에 ‘공감’ 버튼을 누르며 그의 심정에 동감했다. ‘응원한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회사의 문제’라는 댓글도 줄을 이었다.


지난달 30일 발행된 연합뉴스 노보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입사자(신입 공채 기준) 가운데 11명이 연합뉴스를 퇴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기자직은 9명이다. 기자 이직·퇴사는 모든 언론사가 안고 있는 문제이지만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 폭언 등 조직문화가 연합뉴스 저연차 기자들을 떠나게 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9월 연합뉴스 노조의 ‘직장 내 성희롱·괴롭힘’ 설문조사를 통해 비슷한 문제가 드러났다. 조사에 따르면 조합원 194명 중 72명이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고, 이로 인해 61명은 퇴사를 생각했다는 결과였다. 앞서 지난해 8월 당시 팀장급 기자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견책 징계를, 그 다음달 또 다른 기자가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으로 정직 6개월 징계를 받은 일도 있었다.


“마음의 병이 생긴 채” “견디다 못해” 떠나는 동료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연합뉴스 주니어 기자들은 남의 일만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연합뉴스 저연차 A 기자는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 공식적인 문제 제기는 하지 않고 부서장에게만 가해자로부터 분리를 부탁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얼마 전 타부서의 경우 회식 자리에서 부장이 기자에게 ‘버릇이 없다’ ‘인사를 제대로 안 한다’ 식으로 언성을 높인 일도 있었다”며 “업무 중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선배로서 더 나아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게 맞지만, 그 방법이 많이 잘못됐다. 굉장히 비아냥거리고 비꼬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저연차 B 기자는 상사에게 심한 모욕감을 겪기도 했다. 그는 “데스크로부터 투명인간 취급, 다른 팀원들 앞에서 공개 저격을 당한 일이 있었다”며 “30분이면 송고되는 기사를 별 다른 이유 없이 4시간 동안 잡고 있는 일도 괴로운 기억”이라고 말했다. 이어 “퇴사한 기자의 글 내용처럼 운에 따라 힘든 선배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했다.


통신사 특성상 속보·단독에 대한 높은 압박감, 타 언론사에 비해 센 업무 강도 등도 주니어 기자들이 회사를 떠나는 또 다른 이유다. 저연차 C 기자는 “사실상 출퇴근 없는, 주 52시간제에 맞지 않는 근무를 하게 된다”며 “그런 점을 계속 강조하고 있는 듯하고, 그러면서 점점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A 기자는 “동료들 사이에선 이직 고민이 팽배해진 분위기”라며 “이제는 연합이 평생직장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최근 MBC로 이직한 기자가 상징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5~6년 전만 해도 연합뉴스가 업계 최고 연봉이었겠지만 임금을 10% 인상하고, 상여금 수천만원을 지급했다는 타 언론사 소식을 들으면 박탈감마저 든다”며 “통신사 기자라는 사명감을 강요하는데 기자가 모든 걸 다 처리하는 기사 공급 시스템은 개선 없이 수십 년째 그대로”라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주니어 기자들의 목소리를 ‘요즘 세대의 특성’ ‘나약하다’ 등으로 치부하는 인식이다. 고질적인 언론사 조직문화 문제가 다시금 떠오른 시점에서 연합뉴스뿐만 아니라 언론계 전반에서도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중간 연차인 D 기자는 “기사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해 지적을 하는 건지, 개인적 감정이 섞인 폭언인지는 연차를 떠나 누구라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잘못이 고쳐지지 않고 반복되는 건 기수, 공채 중심 문화가 강해 문제를 일으켜도 적당히 봐주고, 처벌하는 잣대도 애매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B 기자도 “이번 일을 계기로 퇴사한 기자가 특이한 케이스라고 낙인찍을게 아니라 조직을 위해 뼈아픈 얘기를 해준 것에 감사하게 여기고,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한다”고 말했다.


연이은 주니어 기자들의 퇴사에 사측도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연합뉴스 관계자는 “퇴사 원인이 단순히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 과정에서 조직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고, 일부 사원들이 공감한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며 “사원들과 소통의 폭을 넓혀 조직문화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면밀히 파악해 개선책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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