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역대 두 번째 원정 16강 진출이란 성과를 거둔 대한민국 대표팀. 조별 리그 두 경기에서 1무 1패로 16강 진출 가능성이 희박했던 대표팀은 마지막 경기에서 포르투갈을 상대로 2대1 역전승을 거두는 동시에 16강행 티켓까지 거머쥐며 그야말로 드라마를 썼다. 정규 경기 시간이 끝나고, 모두가 패배를 예상한 순간에도 무너지지 않고 투혼을 발휘해 끝내 역전 골을 성공시킨, 이 감동의 드라마에 제목을 붙인다면 아마 ‘꺾이지 않는 마음’이 되지 않을까. 16강행을 확정 지은 우리 선수들의 손에 들려 있던 태극기에도 선명히 쓰여 있던 이 문구는 이번 월드컵을 넘어 올 한 해를 대표하는 명언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미 여러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진 대로 이 문구는 이번 월드컵에서 처음 화제가 된 게 아니다. 나무위키는 이렇게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은 리그 오브 레전드 2022 월드 챔피언십을 보도한 기사의 제목에서 유래된 유행어로, 줄여서 ‘중꺾마’라고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2022년 연말 대한민국을 가장 크게 강타한 유행어로 평가된다.”
바로 그 ‘기사’를 작성한 주인공이 쿠키뉴스의 문대찬 기자다. 문 기자는 지난 10월 일명 ‘롤드컵’이라 불리는 LoL 월드 챔피언십 첫 본선 조별 리그 경기에서 석패한 DRX팀 주장 김혁규(데프트) 선수를 인터뷰한 뒤 유튜브 채널 쿡깸(쿠키뉴스 게임)에 올린 영상과 기사에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제목을 썼다. 인터뷰에서 데프트 선수가 했던 말은 정확히는 “오늘 지긴 했지만, 저희끼리만 안 무너지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다”였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부상과 부진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해온” 데프트의 여정을 알고 있던 문 기자는 경기에서 졌는데도 오히려 여유로워 보이는 그에게서 “마음이 단단해졌다”는 인상을 받았고, “홀린 듯”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표현을 떠올린 것이었다. 이 말이 주문처럼 작용했을까. ‘언더독(underdog·상대적 약자)’ DRX는 이후 쟁쟁한 팀들을 차례로 꺾으며 역전 드라마를 썼고, 마침내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렇게 기적의 서사가 완성되며 ‘꺾이지 않는 마음’은 DRX와 데프트를 대표하는 말이자 언더독의 도전과 성공 신화를 상징하는 말로 e스포츠 팬들뿐 아니라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번 월드컵에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덕분에 ‘원작자’인 문 기자도 여러 커뮤니티와 기사 등에서 언급되며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문 기자는 “연락이 안 되던 지인들에게도 연락이 오고, (월드컵) 경기가 끝난 뒤 유튜브 채널에 와서 성지순례 왔다고, 고맙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많다”며 “얼떨떨하고 꿈같은 기분”이라고 전했다.
누군가는 이 말을 두고 “우리네 인생 메시지 같다”고 댓글에 썼다. 문 기자는 많은 사람이 공감을 표하는 이유에 대해 “어떤 의미에서 저희 모두가 언더독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돈 많고 성공만 하는 사람은 드물고, 대부분 실패를 겪어 본, 데프트 선수처럼 항상 언더독으로 여겨졌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말에 공감하는 게 아닐까요.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계속 나아가면 된다고, 누구나 가졌을 법한 생각을 함축적으로 정리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는 말 자체의 힘보다 중요한 건 “서사”라고 했다. “데프트 선수가 10년 동안 꺾이지 않고 나아간 것, 모두가 포르투갈에 패배할 거라 예상할 때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고 뛴 것” 그런 서사와 맞물려 힘을 얻고 공감을 얻었으리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드라마가 여기서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데프트 선수와 카타르월드컵에서 뛴 태극전사들이 보여줬던 마음들이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키워드를 통해서 좋은 생각만 하고 단단한 마음만 가지고 모두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자주 꺾일 때가 많거든요. 마음을 다잡으면서 힘든 상황들을 잘 이겨나갔으면 좋겠습니다.”
2017년 기자 생활을 시작해 스포츠와 e스포츠를 쭉 담당해온 문 기자는 “이번에 e스포츠가 가진 힘을 많이 보여준 것 같아” 다행스럽다.
“한낱 게임이 아니라 슬픔, 환희가 있는 스포츠와 다를 바가 없거든요. 똑같이 드라마가 있고, 거기서 비롯된 밈(meme)과 서사가 공감을 받았잖아요. e스포츠나 게임에 대해 긍정적 인식으로 바뀌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도 오래 취재하면서 업계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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