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 멀어지는 YTN 인수전, 결국 '쩐의 전쟁' 되나

[핫 이슈] 한전KDN 이사회 매각 의결
부동산·유보금 고려땐
지분 2000억에 사들여도 '남는 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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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1대 주주인 한전KDN이 지난 23일 이사회를 열고 YTN 지분(21.43%) 매각 안건을 의결했다. 지난 8월 한전KDN의 ‘계속 보유’ 의사를 산업부 공공기관 혁신TF는 ‘합리적이지 않다’며 사실상 반려했고, 결국 한전KDN이 정부 방침을 수용하면서 YTN 지분 매각은 지난 11일 ‘공공기관 자산 효율화 계획’에 최종 포함됐다.


한전KDN은 2021년 기준 매출액이 6733억원, 영업이익만 710억원에 달하는 흑자기업이다. 취득 원가(590억원) 기준으로는 한해 영업이익보다 적은 YTN 지분을 팔아 당장 재무개선에 나설 필요성이 없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지난 23일 이사회에서 일부 이사들은 ‘YTN 경영이 정상적인 궤도에 올라 배당금도 주고 성장성이 좋은데 지금 팔면 안 된다. 반드시 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매각 대금 사용처도 명확지 않은데 이런 식으로 졸속 매각하면 안 된다’ 등의 의견을 내며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찬성 쪽 이사들이 ‘정부 지침이고 공공기관 효율화 방안에 따라 팔아야 한다’는 뜻을 고수하면서 찬성 4, 기권 2, 반대 1로 ‘출자 회사 정리 방향’ 안건은 의결됐다. 이제 YTN 4대 주주인 한국마사회(9.52%)도 같은 절차를 밟고 나면 지난 25년간 공기업이 보유해온 YTN 지분 30.95%는 새 주인을 찾게 되고, 이에 따라 YTN은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맞게 된다.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와 한전KDN 노동조합이 29일 남산 서울타워 앞에서 ‘YTN 사영화 저지’ 입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YTN 사영화는 언론장악의 외주화”라며 “‘공공성 파괴’ 막는 건 국회의 사명”이라고 주장했다.


매각이 결정됐으니 남은 것은 인수자를 찾는 일이다. 매각 주간사를 설정하고 회계법인 등에 의뢰해 YTN 지분 가치를 평가, ‘적정가’를 제시한 매수자를 최종 선정하는 데까지 길게는 1년 정도 걸릴 것이라 보는 시각이 있다. YTN 지분 매매가 ‘블록 딜’(주식 대량 매매)로 이뤄지면 새 매수자가 YTN의 최다액 출자자가 되는 만큼 최종적으로 방송통신위원회의 변경승인을 거쳐야 하는데, 내년 말쯤이면 관련 절차가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YTN측이 주시하는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다. YTN의 가치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는가, 그리고 매수자가 언론사를 인수할 자격이 있는가. 한전KDN은 YTN 지분 900만 주를 평균 6500원 정도에 사들였다. 따라서 이 금액 이하로 지분을 매각할 경우 ‘헐값’, ‘배임’ 등의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지난 9월 민영화 이슈가 처음 제기된 뒤 등락을 거듭하던 YTN 주식은 29일 기준 6000원대 초반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 1년간 최고 상한가는 8730원이었다.


물론 YTN의 가치는 시가 총액으로만 따질 수 없다. YTN은 24시간 뉴스채널 외에 뉴스테인먼트채널 YTN2, 사이언스TV 등의 방송채널을 갖고 있고, 지상파 라디오·DMB 사업자이며, 마포구 상암동 본사 건물인 뉴스퀘어와 남산 서울타워를 소유해 임대사업도 하고 있다. YTN의 지난해 매출액은 1452억원. 그중 임대사업 매출은 198억원으로 약 14%의 비중을 차지한다. 여기에 1000억원이 넘는 막대한 유보자금 등을 고려할 때 항간의 소문대로 ‘프리미엄’을 붙여 1000억~2000억원 수준에 YTN 지분을 산다고 해도 소위 ‘남는 장사’인 셈이다.

YTN 지분에 여러 언론사와 기업이 관심을 보이는 건 바로 이런 이유로 해석된다. 그러나 사고 싶다고 다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방송법은 신문·통신사업자와 대기업의 보도채널 지분 소유를 30% 이내로, 지상파는 10%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유력한 인수자로 거론되는 한국경제신문은 현재 YTN 지분 5%를 보유 중이므로, 최대 25%까지만 추가로 지분을 사들일 수 있다. 가령 한전KDN 지분은 살 수 있지만, 한국마사회 지분은 부분 매수만 가능하다는 의미다. 한국일보를 소유한 동화기업이나 서울신문 대주주이면서 대기업집단인 호반건설도 30%가 넘는 공기업 지분을 다 살 수는 없다. 소유제한이 10% 이내로 엄격해지는 지상파 사정은 또 다르다. 한국경제든, 동화기업이든, 호반건설이든 YTN 지분을 인수할 때 YTN 라디오와 DMB를 분리 매각하거나 방송권을 반납해야 할 수 있다. YTN 자회사인 라디오와 DMB 종사자들의 고용 불안이 커질 수 있는 상황이다. 또한, 사이언스TV는 연간 약 50억원의 공적기금(과학진흥기금 등)을 지원받아 운영되는데, 민간 기업 또는 대기업이 대주주인 신문에 매각되면 공적재원을 받는 것의 타당성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방송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만든 각종 시스템이 폐기되거나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공기업이 대주주로 참여하는 YTN의 ‘준공영’ 구조는 ‘낙하산 사장’과 ‘정권의 보도개입’ 우려에서 때때로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사장과 보도 책임자 선임 과정에 종사자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구조다. YTN은 사장을 선임할 때 주주사 추천 3인, 노동조합 3인, 시청자위원 1인으로 구성한 사장추천위원회에서 후보자를 추천하며, 보도국장 임명동의제, 공정방송추진위원회 등의 제도도 시행 중이다. 이 같은 제도들이 대주주가 민간자본으로 바뀐 뒤에도 그대로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 공기업의 YTN 지분 매각 취지가 ‘공공기관 자산 효율화’를 명분으로 하는 이상 “돈을 많이 부르는” 인수 희망자가 낙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와 한전KDN 노동조합이 29일 남산 서울타워 앞에서 ‘YTN 사영화 저지’ 입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YTN 사영화는 언론장악의 외주화”라며 “‘공공성 파괴’ 막는 건 국회의 사명”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는 지분 매각 과정에서 생략된 ‘방송의 공적책임’과 ‘공공성’ 논의의 불씨를 살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29일 ‘YTN 사영화 저지 입법 촉구’ 기자회견을 서울타워 앞에서 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YTN지부는 기자회견문에서 “(서울타워는) 대한민국의 대표 전파탑인 동시에 주요 방송국들의 송신 시설이 설치된 공적 시설”이라며 “‘전경련 신문’이나 건설 자본, 투기 자본이 가져간다면 서울타워의 공공성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들은 국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현재 국회엔 공공기관이 보유한 자산을 처분할 때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등의 법안이 발의돼 있다. 자산 처분 절차의 투명성을 강화하려는 취지다. 고한석 YTN지부장은 “이 퇴행적인 신자유주의를 막을 방법이 이젠 국회밖에 없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역사적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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