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보도할 때 'OO이 사건'으로 부르지 말아요"

현직 기자 등 참여해 제정한 '아동학대 언론보도 권고기준'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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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예방의 날을 하루 앞둔 18일 현직 기자 등이 참여해 만든 ‘아동학대 언론보도 권고 기준’이 제정, 공표됐다.

한국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 아동권리보장원은 올 초 현직 기자, 교수, 변호사 등 17명이 참여하는 ‘아동학대 언론보도 권고기준 제정위원회’를 구성하고 여러 차례 회의와 감수 등을 거쳐 이날 확정된 기준을 발표했다. 제정위원장을 맡은 송경재 상지대 교수는 앞서 지난 17일 기자협회 주최로 열린 ‘2022 사건기자 세미나’에서 세부 내용을 공개한 뒤 “아동 인권 국제표준에 맞는 언론의 자율적인 권고기준”이라고 설명하며 “강제 규정이 아니라 바람직한 기준을 마련해 아동인권 확대에 앞장서달라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8일 서울 마포구 가든호텔에서 열린 제16회 아동학대 예방의날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이날 기념행사를 통해 아동학대 언론보도 권고기준이 공표됐다. (사진=보건복지부 제공)

아동학대 언론보도 권고기준은 전문과 본문, 아동학대 예방 증진 권고문으로 구성된다. 전문에선 “언론은 보도 과정에서 아동을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부모의 소유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또한, 피해 아동과 그 가족, 신고자, 학대행위 의심자에게 2차 피해를 줄 수 있거나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보도를 하지 않는다. 이들이 2차 피해를 당해 구제를 요청하면 언론은 이에 적절하게 대응한다”고 명시했다.

이를 토대로 본문에선 세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예컨대 민법상 자녀에 대한 부모의 징계권이 폐지됐으므로, 부모가 자녀를 학대하거나 폭행하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는 ‘훈육’, ‘체벌’ 등의 표현은 쓰지 않아야 한다. 이런 말은 ‘교육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또한, 피해 아동이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경우엔 보도하기 전에 아동의 동의를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이때 친권자와 대리인의 의견이 피해 아동의 의사와 다를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2차 피해 예방 또한 중요하다. 권고기준은 “피해 아동과 그 가족, 신고자는 물론이고 학대행위 의심자로 지목된 사람도 보복이나 2차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유의한다”고 밝힌다. 아동학대 장면을 묘사하는 CCTV 영상 등은 “필요한 범위에서 최소한으로 사용”돼야 한다.

사건명에 피해 아동에 이름을 붙이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전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던 ‘정인이 사건’은 비록 가명이지만 피해 아동의 이름으로 사건을 명명했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송경재 교수는 “가해자는 아무런 죄의식이 없고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데 가명이라도 이 내용이 보도될 때 가족과 주변인 등 2,3차 피해는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동학대 언론보도 권고기준에 포함된 아동학대 예방 증진 권고문(안)

사실 기반 보도도 중요하다. 이는 모든 사건 보도의 기본이기도 한데, 권고기준은 “학대행위자로 지목된 사람의 행위를 섣불리 판단하거나 추측하지 말아야 하며,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선정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단일 사건의 내용뿐 아니라 해결 방법, 아동학대 사건을 예방할 수 있는 대안 등을 종합적으로 다뤄야 한다”고도 제안한다.

또한, “아동 주변인(친권자·보호자·대리인 등) 간 갈등·원한 관계에 기인한 아동학대 신고·제보가 늘어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악성 신고나 제보가 아닌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권고기준은 아동학대 신고와 상담에 관한 권고문도 제안한다. 자살 사건 보도에서 하단에 ‘자살예방 상담문구’를 제안하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송경재 교수는 “아동학대 언론보도 권고기준은 1.0으로도 제대로 잘 돼서 (자살보도 권고기준처럼) 2.0, 3.0이 굳이 필요 없어지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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