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 내가 당했을 수도…" 언론학자들 성토, 왜?

한국언론학회·한국방송학회·한국언론정보학회 공동주최 긴급토론회 '종편 재승인 심사제도와 학계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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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누가 방송사 재승인 심사위원으로 들어가려고 하겠느냐” “학회가 학문적 자존심과 객관성을 갖고서 추천한 심사위원들에 대해 이런 형태(감사원 감사, 검찰 압수수색 등)로 나타난다는 것에 대해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감사원이 지난 2020년 종합편성채널 재승인 심사에서 일부 심사위원이 TV조선에 의도적으로 점수를 낮춘 정황을 포착했다며 관련 자료를 검찰에 넘기고, 9월23일 검찰이 방송통신위원회와 해당 심사위원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인 것을 두고 언론학자들이 이같이 성토했다. 15일 한국언론학회·한국방송학회·한국언론정보학회 공동주최로 열린 긴급토론회에서 언론학자들은 학계 추천으로 재승인 심사에 참여한 동료들이 의혹의 대상이 된 것을 지켜보며 정치권력으로 인해 미디어 전문가들의 독립적인 판단이 부정당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3일 서울대 인문사회계멀티미디어강의동에서 한국언론학회·한국방송학회·한국언론정보학회 공동주최 '종편 재승인 심사제도와 학계의 역할'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한국언론학회 가을철 학술대회에 편성된 이번 토론회는 이례적으로 3개 학회가 공동주최한 자리였다. 재승인 심사과정과 심사위원에 대한 전격 조사와 수색은 지금까지 전례가 없던 상황인 만큼 학계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긴급토론회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앞서 한국언론정보학회와 한국지역언론학회는 학계 추천 심사위원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해 규탄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종편 재승인 심사제도와 학계의 역할’을 주제로 서울대 인문사회계멀티미디어강의동에서 열린 3개 학회 주최 공동토론회에선 각 학회가 추천한 언론학자 6명이 이번 사태에 대한 우려와 재승인 심사제도 개선 등을 논의했다.

토론자들은 당시 재승인 계획부터 심사회의, 재승인 의결까지 기록이 담긴 방송통신위원회 ‘2020년도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 방송채널사용사업자 재승인 백서’에 주목해달라고 했다. 백서에 나와 있는 심사 과정을 살펴보면 심사위원들이 정성 평가라도 개인적인 고의를 갖고 평가를 하기에는 어려운 구조라는 설명이다.

김민정 한국외대 교수는 종편 출범 이후 세 번째 재승인 심사였던 당시 새로 도입된 시청자 의견 청취 방식인 ‘국민이 묻는다’를 들었다. 심사위원들은 종편에 대한 시청자 의견을 취합해 방송사업자에게 대신 질문하고, 이를 항목별 비계량 평가에 반영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김 교수는 “3만2300건이 의견이 접수됐는데 그 중 1만7000건이 TV조선에 관한 것이었고,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의견이었다”며 “다른 방송사업자에 비해 TV조선이 공정성에서 시청자들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는 건 누구나 합의할 수 있는 사실관계다. TV조선이 중점 심사항목 중 방송 공적 책임 항목에서 과락된 점이 문제인건데 국민이 묻는다가 최초 도입되면서 시청자 의견을 반영해야 되는 측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성평가이지만 절차적으로 살펴보면 항목들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세부 기준이 아주 구체적으로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이 자의적으로 판단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컸다고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희경 미디어미래연구소 연구원 또한 “백서를 보면 2018년부터 재승인 제도개선 연구반을 구성해 심도 있게 심사 항목에 대한 논의들을 많이 했다. 이럴 거면 AI가 심사를 하라고 할 정도로 너무나 촘촘하게 심사했다”며 “실제로 재승인 심사 논의과정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고 심사위원들 대화 내용까지 속기화된 걸 보면 이들이 점수를 고칠 때 주관성이 반영됐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3일 서울대 인문사회계멀티미디어강의동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한국방송학회·한국언론정보학회 공동주최 '종편 재승인 심사제도와 학계의 역할' 긴급토론회

재승인 과정을 감사하고 검찰에 관련 자료를 이첩한 감사원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정준희 한양대 교수는 “감사원이 방통위 재승인 심사 과정을 감사하는 게 이례적인지, 일상적인지 질문하고 싶다”며 “현재 정부와 방통위원장 또는 방통위원회 구성이 정치적으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비롯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도 “감사원이 방통위를 감사한 건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려는 제도를 기관이 ‘치트키’를 발휘해 날려버릴 수 있다는 위험한 선례를 남긴 것”이라며 “여야 정당에서 선임하는 방통위 위원들과 공영방송사 이사들을 뛰어넘는 권력이 직접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토론자들은 이번 사태를 통해 가장 상처 입은 건 학자의 양심과 전문성이라고 입을 모았다. 압수수색까지 당한 동료 학자를 보며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타냈다. 이정훈 신한대 교수는 “학자들은 내가 가진 전문적인 지식과 양심에 따라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판단을 한다. 그 판단이 필요해 국가가 (재승인 승인 때) 쓰는 것”이라며 “내 전문성이 범죄일 수 있다는 얘기가 된 거다. 학자의 양심과 생각이 전면적으로 부정당하고 존재가치에 대한 압박으로 다가올 때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말했다.

정준희 교수도 “어떤 집권자가 나타나 당신은 왜 점수를 높게 줬느냐 낮게 줬느냐, 공무원과 공모가 없었냐고 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심사위원들은 점수를 변경할 때 아마 손이 덜덜 떨릴 것”이라며 “내 전문적 판단이 부정당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고 인신 구속까지 모멸적인 상황을 겪게 된다면 앞으로 심사위원에 안 들어가는 게 맞다. 그럼 그 자리는 누가 채워질까. 아마도 당파적으로 동원된 사람들이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최용준 전북대 교수는 “심사 점수는 독자적인 전문성을 가진 심사위원들의 권한이고, 전문가들이 체계적으로 만들어 놓은 기준으로 점수를 수정하는 게 과연 무슨 문제인지, 정황 증거만으로 몇 분에 한해 (수사)타깃이 되는 것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이번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분들은 학회를 대표해 갔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학회에서 어느 정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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