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손배와 노란봉투법

[이슈 인사이드 | 노동] 전혜원 시사IN 기자

전혜원 시사IN 기자

2013년 12월, 곧 세 아이의 엄마가 되는 배춘환씨는 시사IN에 보도된 한 기사를 보고 편집국장 앞으로 편지를 썼다. 쌍용차 노조가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다는 기사였다. “해고 노동자에게 47억원을 손해배상하라는 이 나라에서 셋째를 낳을 생각을 하니 갑갑해서, 작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고 싶어서입니다. 47억원… 뭐 듣도 보도 못한 돈이라 여러 번 계산기를 두들겨봤더니 4만7000원씩 10만명이면 되더라고요.” 편지에는 현금 4만7000원이 들어 있었다.


2014년 신년호에 이 사연을 실었다. 독자들이 4만7000원을 넣은 봉투를 보내왔다. 현행법상 언론사는 일정액이 넘는 모금을 주관할 수 없다. 아름다운재단에 의뢰했다. 모금 사이트가 오픈했고, 가수 이효리씨의 동참 편지가 공개됐다. 그렇게 한 사람이 4만7547명이 되고, 4만7000원이 14억6874만1745원이 됐다. ‘노란봉투 프로젝트-우리가 만드는 기적 4만7000원’ 얘기다(쌍용차 노동자에게 전달된 해고통지서가 ‘노란봉투’에 담겨 있었고, 예전에는 월급을 노란봉투에 담아 주었던 데서 착안했다).


손배 피해자들을 긴급 구제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관련 법을 정비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이어졌다. 그간 논의가 지지부진했는데, 최근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 파업으로 사측이 8100억원대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노란봉투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노란봉투 캠페인 때 외국도 파업에 손배를 청구하는지 취재했다. “사용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했다고 보고된 마지막 사례는 1959년이고, 그 전 사례는 1927년이다”(키스 유잉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교수). “노동조합이 손해배상을 청구받는 일은 매우 드물고 법원이 사용자를 지지하는 판결을 내리는 경우는 더 드물다. 대부분의 사례가 1950년대 것이다”(볼프강 도이블러 독일 브레멘 대학 교수). 외국에서 파업에 대한 손배는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잘 일어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파업이 불법인 경우가 별로 없다.


한국에서는 주체·목적·절차·수단 중 하나라도 위법하면 불법 파업으로 손배 청구가 가능하다. 정리해고 반대 파업은 대부분 나라에서 합법이지만 한국은 경영권을 침해해 불법이다. 사실 ‘불법 파업’이란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평화적으로 노무 제공을 거부하는 행위로서의 파업은 언제나 합법이다. 계류 중인 노란봉투법들은 대체로 손배 청구액이나 대상을 제한하는 내용인데, ‘합법 파업’이어야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구조가 문제다. 파업에 손배 청구를 할 수 없고 폭력·파괴행위에만 할 수 있게 하는 내용도 있는데, 비슷한 법이 프랑스에서 위헌 결정이 났다.


한국처럼 파업권을 헌법적 권리로 보장한 프랑스는 이후 판례로 원칙을 세웠다. 첫째, 형법상 범죄행위나 파업권 행사로 볼 수 없는 행위가 아니면 손배 책임이 발생하지 않는다(사실상 위 법률을 받아들인 내용이다). 둘째, 개인의 불법행위와 손해의 인과관계를 회사가 입증해야 한다. 핵심은 ‘불법 파업’에서 ‘불법’과 ‘파업’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파업 중 불법이 일어났다고 해서, 파업권만 행사했어도 발생했을 통상적 손해까지 모두 배상시킨다면 파업 그 자체를 처벌하는 것과 같다. 애초에 파업을 업무방해죄 같은 형벌로 다스리는 민주국가는 한국뿐이다. 다시 국회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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